2024.05.06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선비와 함께 한 악기, 거문고 이야기 2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거문고 연주도


과학이 만들어낸 거문고와 가야금의 아름다움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얼마 전 가야금에 대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울림통 위에 가루를 뿌린 뒤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이다. 그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을 눈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하며, 비중도 0.3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는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 부드럽다고 한다.  


또 울림통 재료가 되는 나무 무늬의 형태도 소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좋은 가야금과 거문고는 일반적으로 국수무늬 목재를 사용한 울림통이다. 국수무늬는 늙은 나무의 중심부를 긁어낸 목재가 아래로 쭉 뻗은 무늬를 갖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늙은 나무 층을 긁어내면 연주된 음이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 반사되기 때문에 공명 현상이 극대화되어 소리가 증폭되고 풍부한 연주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현악기들은 정밀한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울림통 구조, 재료가 되는 나무의 세포 형태, 국수무늬 등이 어울려 빚은 아름다움이다. 
 

선비들, 거문고를 통해 참 자기를 꿈꾸었다. 
 

   
▲ 보물 제957호 탁영거문고(조선 초기 탁영 김일손이 사용하던 거문고)


옛 선비들은 거문고와 함께 한 삶이었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시(詩)ㆍ서(書)ㆍ금(琴, 거문고)ㆍ주(酒)로 노니는 것을 풍류라 하여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았다고 한다. 선비들이 혼자 즐기는 풍류에서는 거문고가 으뜸이었고, 이 거문고 음악에 간단히 시를 얹어 읊곤 했다. ‘황진이’란 드라마에서도 벽계수 대감이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어째서 선비들은 이렇게 거문고를 끼고 살았을까?  


‘양금신보’를 비롯한 많은 고악보에는 “금자악지통야 고군자소당어야(琴者樂之統也 故君子所當御也)”라는 글귀가 있다. 그 뜻은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고 하여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악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동국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는 “거문고는 줄풍류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 쓰이고, 늘 합주를 이끌어 가는 구실을 한다. 또 실제 전통사회에서는 피리나 젓대를 하는 잽이들이 전문음악인이고, 거문고를 하는 풍류객들은 아마추어 음악인이었는데도 풍류를 할 때에는 거문고를 하는 선비가 이끌곤 했다. 거문고라는 악기가 합주를 이끌어 가도록 음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월하탄금도(이경윤)


중국의 악기 금은 고대 전설상 임금인 복희씨(伏犧氏)가 만들어서 그것으로 마음을 닦고 성품을 다스려서 하늘이 준 참 자기의 경지로 돌아가게 했다고 한다. 이 금이 한국에 와서는 거문고가 되어 그러한 목적을 추구했다. 즉, 선비들은 거문고라는 악기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문고의 규격도 우주를 축약해 놓은 소우주로 생각하였다.


속된 사람 대하면 거문고를 타지 않는다
 


조선 후기 학자 오희상(1763∼1833)은 거문고의 명인이었다. 그는 거문고를 탈 때 다음 다섯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 곧 "오불탄(五不彈)"이라 하여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할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는 절대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한곳을 바라보며, 생각은 여유롭게 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며, 운지법(運指法)을 바로 한(오능·五能) 뒤에야 연주했다. 오불탄과 오능은 거문고가 옛 선비들에게 사사로운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악기 이상의 악기’였음을 보여준다.  


거문고는 이제 거의 잊혀가는 악기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선비정신이 잊힌다는 것을 말함이다. 선비란 무엇인가? 선비라는 말의 말밑(어원)을 살펴보면 '어질고 지식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은 ‘선비에 대하여’란 글에서 “선비는 아래로 농부나 악공과 나란하고, 위로는 임금과 벗한다. 지위로는 차이가 없고, 덕으로는 바름을 추구하는데 한 선비가 독서를 하면 혜택이 온 세상에 미치고, 보람이 만세에 드리워진다.”라고 말했다. 또 선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기쁘게 지킨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긴다.  

 

   

▲ 거문고명인 김영재 연주 모습


선비는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기쁘게 함이다. 거문고를 타는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환하게 하는 악기가 거문고가 아닐까? 거문고를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한용운의 ‘거문고를 탈 때’ 중에서)

 

   

▲ 거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