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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한산섬 제승당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숨결을 느끼다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있던 곳,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制勝堂)에 가면 더욱더 충무공의 그때 그 심정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1593년 8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막료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는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이곳에 제 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40년 유허비(遺墟碑)를 세우면서 운주당 옛터에 다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 이름했는데, 지금 걸려 있는 "제승당(制勝堂)" 현판은 제 107대 통제사 조경이 쓴 글씨이다. 

충무공은 이곳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 삼아 당포승첩(唐浦勝捷)후 왜적과 세 번째로 접전하여 적군을 섬멸시키고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적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여 적의 사기와 전의(戰意)에 큰 타격을 준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당시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땅이름이 여러 개 전해지고 있다.

   
▲ 굽이길을 걸어 제승당으로 가는 길 바다색이 곱다

 제승당이 자리한 두억리(頭億里)는 당시 바다에 떨어진 왜군 목이 억 개나 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두억리 포구인 문어포(問於浦)는 황급히 도주하던 왜군들이 길을 물었던 포구라는 뜻이다. 또한 제승당 뒤편 개미목은 도주로가 끊긴 왜군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었던 곳이고, 한산도 북쪽 바다에 떠 있는 해갑도(解甲島)는 충무공이 갑옷을 벗고 잠시 쉬었던 곳이다.

 이곳은 이순신이 한산도에 진(陣)을 친 후 늘 여기에 기거하면서 휘하 참모들과 작전계획을 협의하였던 곳이며 집무실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노량해전도>. <사천해전도>.<한산대첩도> 등의 그림이 있으며, 경내에는 유허비. 기념비. 귀선각(龜仙閣). 한산정(閑山停). 대첩문(大捷文) 등이 있다.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사적지이다.

   
▲ 대첩문

 통영에서 배를 타고 이십 여분 바다를 가르고 달려야 다다르는 한산도는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충무공을 기리며 드나들고 있는데 경치 또한 아름답다. 특히 충무공이 한산도 시를 읊던 수루에 오르면 마치 충무공을 만난 듯 마음이 울렁인다. 한산도는 사계절 볼만 하지만 특히 깊어 가는 가을에 가면 운치가 더한 곳이다.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이 마셨다던 우물 한산정, 수루, 충무사 등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통영으로 나오는 배 안에서 한산섬을 바라다 본다.

 

   
▲ 수루에서 바라다 본 한산도 앞 바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死必卽生), 곧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을려고 하면 살 것이라는 각오로 위기의 나라를 건지다가 끝내는 전쟁터에서 장엄한 죽음을 맞이한 충무공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영원히 우리 가슴에! 한산섬 제승당에!

 

   
▲ 한산도 충무공 유적지 안내돌

   
 

   
▲ 충무공의 집무실 제승당

   
 

  유람선 운항 안내
- 통영 유람선 터미널(통영시 도남동 634), 055-645-2307
- 홈페이지 : www.uram.co.kr
- 운행시간 : 09:00 ~ 18:00 수시운항(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