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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어니언스 - 편지 “하얀종이에 쓰여진 사랑가”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9]

[그린경제/얼레빗=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앵두 알 만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악수를 마친 교육대장이 한 발짝 옮겨서라는 손짓을 보냈는데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힘든 일주일이었다. 차라리 논산에서 한 달 더 훈련받는 게 낫지 ‘수경사 보충교육’은 정말 못 받겠다고 아우성들 쳤지만, 막상 퇴소식을 마치고 나니 그간의 고생은 간데없고 우리 모두의 흰 눈자위는 빨갛게 봉숭아 물감이 들어 있었다. 

퇴소 후 우리 동기들은 각 예하부대로 뿔뿔이 흩어지고 서너 명만이 나와 동행했다. 우리가 당도한 곳은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사령부였다. 나는 그 곳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근무할 처부가 정해지고 겨우 부대 내 건물의 위치를 알아갈 즈음 내가 DJ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처부에서 처부로 번져 나갔다. 

“나를 예쁜 아가씨라 생각하고 한 번 읊어봐.” “이 하느님께서 졸리시는데 잠 쫓는 멘트를 시작한다. 실시!” 

말년 병장들은 훈련과 근무에서 열외 되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주 좋은 소일거리였다. “너 연애편지도 잘 쓰지? 일과 끝나고 나를 알현한다. 알겠나?” 

나는 대장보다도 높다는 자칭 오성장군의 명을 받들어 저녁을 먹은 뒤 그를 찾아갔다. 그는 아까와는 사뭇 부드러운 태도로 나의 긴장을 풀어주며 말했다. 

입대 전부터 사귀던 애인이 있었는데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버려 이제 새로운 애인을 사귀고 싶다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위문편지를 보낸 한 여대생의 주소를 간직하고 있는데, 자기는 글 솜씨가 너무 형편없어 아직도 답장을 못 보내고 있으니 나더러 대필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의 명령에 따라야했고 예상대로 며칠 후 답장이 왔다. 편지의 왕래가 잦아질수록 그와 그 여대생 사이, 나와 그 여대생 사이에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와 나는 각기 그 여대생을 그리며 밤잠을 설쳤다. 

몇 달 후 그는 후배들의 전송을 받으며 전역을 했다. 나와는 미묘한 눈길만 주고받은 채. 나는 그녀에게 사실대로 모든 걸 털어놓으려 몇 번이고 결심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그 박 병장이 그녀와 결혼하였으리라 믿는다. <편지>를 들을 때마다 그와의 해후를 기대해 본다. 

이 땅의 50∼60대들에게 있어서 펜팔은 아련한 향수일 것이다.

 

   
▲ 어니언스 편지 음반 표지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
 

‘학원’ ‘여학생’같은 하이틴 잡지를 보면 어김없이 펜팔 난이 있고,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같은 잡지엔 펜팔전문업체의 광고가 빠짐없이 실릴 정도였다. <편지>는 그 펜팔 붐에 기름을 부으며 포크가수로는 처음으로 국민 전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그때가 1973년의 일로 임창제의 노래실력과 이수영의 귀티 나는 용모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이수영은 유지인의 데뷔작<그대의 찬 손>에 남우주연으로 발탁되며 황금기를 누렸다. 김진규, 문정숙 같은 톱스타가 조연으로, 신인이 주연으로 기용된 첫 사례였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