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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최양숙 ‘가을 편지’, 대상도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16]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전 내내 햇살이 봄볕 같았다. 

강의가 빈틈을 이용하여 연못가 단풍나무 아래 자리 잡은 나는 장자끄 루소의 고백록을 꺼냈으나 못으로 떨어지는 단풍잎에 눈길이 갈 뿐 영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청룡상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불어온 삭풍에 은행잎이 날리어 하늘은 온통 병아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련해왔다. 대상도 없는 그 누군가가 그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수업을 빼먹기로 마음을 굳히고 상경대 강의실을 기웃거렸다. 한 동네 친구 수길이를 불러내어 막걸리 내기 당구나 치러 가자며 꼬드겼다. 

우리는 땅거미가 드리우기도 전에 벌써 얼굴이 벌개져서 버스에 올랐는데 많이 본 듯한 여성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옆집 봉님이었다. 우리는 반갑다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봉님이 옆에 또 한 여성이 있었다. 봉님이가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보니 탁구선수 정현숙과 많이 닮은 아가씨였다. 

포장마차에 들어간 우리는 밤늦게까지 소주잔을 부딪치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통금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술판을 근처 여인숙으로 옮겨 새벽까지 마셨다. 먼동이 틀 무렵이 되자 화장실에 간다던 수길이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지나 봉님이도 슬그머니 나가 역시 돌아오지를 않았다. 

   
▲ 최양숙 ‘가을 편지’ 수록 음반 표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술 냄새 가득 찬 좁디좁은 공간에 그 현주라는 아가씨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뱃고동만큼이나 크게 울려 퍼지고 숨이 가빠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나는 어디 가서 해장국이라도 먹자며 현주를 데리고 나왔다. 해장국을 절반정도 먹었을 때 내 눈치를 살피던 현주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자기는 현재 엄마와 다투고 집을 나온 상태여서 오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시작하여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해 보았으나 고집을 꺾을 길이 없었다. 또 다시 밤이 찾아왔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실 어머니 생각에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현주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자기 언니가 대구에 사는데 거기 가서 며칠 바람 좀 쏘이다 집으로 돌아갈 테니 여비를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얼른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고 서울역으로 가자고 했더니 굳이 자기혼자 가겠다며 돈이나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지를 나누기로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는 우체부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되었으나 그 가을에도 그 다음 가을에도 그리고 수십 번의 가을이 찾아왔어도 끝내 그 가을 편지는 당도하질 않았다. 

고은의 시에다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는 최양숙에 의해 1971년에 발표되었다. 서울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프랑스에 샹송유학을 다녀온 한국최초의 샹송전문가수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