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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에드 포 ‘빗속의 여인’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34] 신중현 첫 록그룹 데뷔 앨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며칠 전 음악선배 한 사람이 이 칠칠치 못한 후배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명도가 낮지만 한 때는 내로라하는 유명밴드를 두루 거친 보컬리스트였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의 습성을 알고 있는 터라 자동차로 묵호등대를 찾았다. 

등대 앞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선배 역시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흡족해했다. 뒤이어 우리는 동해 조망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파도는 암전하여 간간이 밀려오는 잔물결은 학의 깃털이 날리는 양 평화로웠다. 동해항으로 들어가는 대형화물선도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고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여객선 꽁무니를 갈매기들이 떼 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일까. 영화의 한 장면일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다가 그 선배의 표정을 살피니 의외로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싶어 서둘러 내려오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선형 계단에 접어들자 식은땀을 소나기처럼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축하여 한참 만에 내려오니 그는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굴색이 제대로 돌아왔다. 

묵호항 근처 대폿집에서 회 몇 점에다 소주의 온기가 돌자 그는 조금 전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벌써 4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대왕코너 트라우마가 남아 있나봐.” 

그는 소주 몇 잔을 거푸 들이키더니 당시를 회고하기 시작했다. 1974년 당시 미8군무대가 사양일로를 걷자 그는 일반무대로 진출하였다. 그때 만난 이가 서정길이라는 대선배였다. 서정길은 신중현이 조직한 최초의 그룹 에드 포에서 빗속의 여인을 불러 히트시킨 스타였다. 서정길 밴드에 합류한 그는 대왕코너 6층에 있는 타임나이트클럽 무대에 섰다. 동부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타임은 인기가 높은 클럽이었다. 

초저녁부터 달아오른 열기는 밤이 깊어갈수록 고조되었다.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어떤 이들은 키스타임으로 알고 환호성을 질렀으나 그것은 화재로 인한 정전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연기가 밀려오자 그제서야 불이 난걸 알고 손님들은 아우성치며 출입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지배인의 지시로 문은 잠겨있었고 종업원들은 손전등을 켜고 술값을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불길은 삽시간에 거세지고 모든 것을 삼키기 시작했다. 

모두들 나를 따라와!” 

서정길은 그렇게 외쳤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따라갈 방법이 없자 그 선배는 청소용 창문을 퍼뜩 생각해내고 그리로 피신하여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있다가 구조 밧줄에 매달려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날, 우리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서정길은 화마를 타고 떠나가 버렸다. 

   
▲ 에드 포의 <빗속의 여인> 음반 표지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지금은 어데 있나
노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그날따라 정길이 형은 웬 하얀 턱시도를 입었는지, 그리고 생전 부르지도 않던 이별을 불렀는지 허허. 

그는 떨리는 입술로 소주잔을 가져갔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