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오는 12월 27일(수)부터 29일(금)까지 사흘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송년공연 ‘나례(儺禮)’(연출 박동우)를 선보인다. ‘나례’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날 밤 궁중과 관아, 민간에서 묵은해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태평한 새해를 맞이하고자 고려부터 조선까지 700여 년간 행해졌던 의식이다. 궁중에서 펼쳐진 ‘나례’는 궁중 예인을 비롯해 민간의 으뜸 광대들이 함께한 잔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난장(亂場)의 날에는 사관도 입시(入侍)하였으나 기록하지는 않았다.”라고 할 만큼 자유로운 날이었으며, 연화대무,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말고도 민간에서 유행했던 각종 공연을 펼쳤다. 궁중 나례는 계급 간, 계층 간 벽을 허문 왕실의 연말 문화이자 새해맞이 의식이었던 것이다. 국립국악원은 이러한 궁중 나례의 의미를 담아 송년공연 ‘나례’를 무대에 올린다. 송년공연 ‘나례’는 2022년 무용단 정기공연으로 펼쳐진 ‘신 궁중나례’를 기본으로, 재담꾼과 가상의 역신을 등장시켜 나례의 연행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본래 궁중나례의 절차는 연향을 비롯해 각종 놀이에 참여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평창 진부면 동산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세조대의 회장저고리(回裝저고리)’가 있습니다. 이는 1973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문수보살상에 금을 다시 칠할 때 복장 안에서 발견되었지요. 함께 발견된 연기문과 유물의 형태로 보아 1463년(세조 9) 중창 때 수명을 축원하여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고리 뒷길 가운데에 쓰인 먹물로 쓴 ‘長氏小對(장씨소대)’라는 글씨가 있는데 왕실의 옷을 ‘의대(衣襨)’라고 표기한 관습으로 미루어 유물의 주인공이 왕실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세조비 가운데에 장 씨는 없어 총애받던 후궁으로 추정되지요. 그런데 이 저고리의 이름이 ‘회장저고리’입니다. 여성의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깃ㆍ끝동ㆍ겨드랑이 등에 다른 빛깔로 색을 넣어 꾸민 것을 회장(回裝)이라고 합니다. 흔히 노랑이나 연두 바탕에 자줏빛이나 남빛 회장을 달아 꾸미지만 깃이나 끝동을 다른 빛깔로 대는 경우는 반회장저고리라고 하고 곁마기(겨드랑이)를 더하면 삼회장저고리라고 하지요. 이 월정사의 회장저고리는 회장저고리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저고리의 크기는 길이 52.4㎝, 품 34㎝이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 11월 26일 낮 3시 삼성동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풍류극장에서는 중견 소리꾼들이 나서 <수궁가>를 연창하는 공연이 열렸다. 이는 2023년 전수교육관 활성화 사업으로 판소리 수궁가 사설 풀이 교육을 마치고 청중들에게 <수궁가>의 매력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판소리 5대목 곧 춘향가ㆍ심청가ㆍ흥보가ㆍ수궁가ㆍ적벽가 사설은 역사적, 인류사적, 문화적, 문학적, 예술적, 민족적, 민중적, 언어적, 전통적, 사회적인 내용이 총망라된 것으로 2003년 11월 7일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오른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형문화 자산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설의 뜻도 모르고 소리를 하거나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사)한국판소리보존회에서는 2014년 심청가, 2015년 춘향가, 2016년 수궁가의 사설 풀이교육을 하고 사설집을 펴냈으나 예산 부족으로 중단되었다가 2023년 전수교육관 활성화 사업으로 판소리 수궁가 사설 풀이 교육을 한 것이다. 먼저 판소리고법 ‘칠석고우회’ 김기중 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무대는 현 광주시립창극단 상임단원이면서 제27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명인부 대상을 받은 이서희 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밥 상 - 이정하 세상은 밥심으로 사는 게 아니라 너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 밥상을 마주하고 앉으면 갓 지은 밥에서 뜨거운 김 피어오르듯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게 그것 그래, 세상은 바로 그 힘으로 사는 거야 관가로 출장 다니던 소반이 있다. 바로 공고상(公故床)이 그것인데 옛날 높은 벼슬아치가 궁중이나 관가에서 숙직할 때 집의 노비들이 이 상에 음식을 얹어서 머리에 이고 날랐다. 지금처럼 구내식당이나 외식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번(番) 곧 숙직이나 당직을 할 때 자기 집에서 차려 내오던 밥상이라 하여 “번상(番床)”, 바람구멍을 냈다고 하여 “풍혈상(風穴床)”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밥상이 출장 가기도 했지만, 예전엔 온 식구가 같이 앉아 밥을 먹었다. 물론 양반들이야 내외가 안방과 사랑방에서 따로 밥을 먹었지만, 평민들은 같은 방 한 밥상에서 밥을 같이 먹는 게 예삿일이었다. 그러면서 함께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그로써 한 식구임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서로 정을 쌓고 힘을 보태주는 밥상이 된 것이다. 여기 이정하 시인은 그의 시 <밥상>에서 “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황장목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데 전 목사 김경항은 목재상과 결탁, 제멋대로 나무를 베도록 허락하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 죄를 논하자면 실로 극히 놀라운데 어찌 도배(徒配, 감옥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한 다음 유배를 보내는 형벌)에 그치겠습니까." 이는 《현종실록》 3권, 현종 1년(1660년) 11월 1일 기록으로 전 목사 김경항이 목재상과 결탁하여 황장목을 베도록 한 것에 대해 사헌부가 아뢴 내용입니다. 또 《세종실록》 3년(1421) 8월 24일 기록에 보면 왜구들이 배를 만들기 위한 소나무를 구하려고 조선 바닷가를 자주 침범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등 궁궐을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음은 물론 소나무는 임금의 관을 짜는 데도 쓰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수송수단인 배 만들 때도 쓴 귀한 나무였습니다. 특히 나무의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고 으뜸으로 쳤습니다. 또 나라에서는 '황장금표(黃腸禁標)' 등의 표식을 세워 보호하고 길렀으며, 이를 어긴 사람들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소나무를 귀하게 여긴 까닭은 나무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이 대표 공연 <묵향>을 오는 12월 14일(목)부터 17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2013년 초연 이후 나라 안팎 무대에서 흥행을 이어온 작품으로, 올해 10돌을 맞이한 대표 공연이다. 10년 동안 10개 나라에서 43회 공연하며 꾸준히 완성도를 쌓아온 <묵향>이 4년 만에 국내 관객을 찾는다. <묵향>은 정갈한 선비정신을 사군자를 상징하는 매ㆍ난ㆍ국ㆍ죽에 담아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낸 작품이다.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고 최현의 ‘군자무’에서 영감받아 안무하고, 간결한 양식미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온 정구호 연출이 세련된 무대미학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용ㆍ의상ㆍ음악 등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최대한 전통 양식을 유지하면서, 극도로 세련된 무대 미학으로 동시대 한국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춤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제시한 <묵향>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초연 6개월 만에 재공연했으며, 이듬해 세계 무대까지 진출하는 등 단숨에 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재명 의사는 일제의 침략 괴수들보다 같은 겨레로서 왜적에게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신을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비롯한 역적들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114년 전 오늘(1909년 12월 22일) 낮 11시 30분경 성당 문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거만한 모습으로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갈 때 비수를 들고 이완용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의 허리를 찌르고 이완용을 타고 앉아 어깨 등을 사정없이 찔렀지요. 그의 거사로 인력거 주변은 유혈이 낭자하였고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판단한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경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던 매국노 이완용은 불행히도 목숨을 건져 매국조약에 도장을 찍었지요. 이재명 의사는 1910년 봄 공판장에서 태연하고도 엄숙한 어조로 역적 이완용의 죄목을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그를 처단하였음을 역설하였으며, 일본인 재판장의 공모 여부에 대한 심문에 이천만 조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1월 21일(화) 기록유산 관리ㆍ보존시스템 선진지 견학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 교육문화연구기술부 공무원 연수단 40명이 방문하였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돌을 맞아 인도네시아 정부와 대구가톨릭대학교가 협력해 지난 9월부터 진행 중인 한국 문화산업 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된 자리다. 연수단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을 관람하고, 권진호 국학기반본부장으로부터 국내 가장 많은 민간기록자료 소장기관의 기록유산 관리ㆍ보존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추진 및 관리 방안에 대해 열띤 질의응답이 오고 갔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시행 중인 기탁제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국내 최다 민간기록자료 소장기관으로서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닌 비책을 인도네시아 공무원들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며, 이번 방문을 계기로 두 나라 사이 교류가 한층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인도네시아 공무원 기념사진을 보니 한국국학진흥원 간판이 한자로 되어 있는데 참으로 아쉬운 모습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구 름 - 홍정숙 어머니는 오늘도 하늘 가득 솜을 펴신다 고루고루 넉넉히 솜을 다지신다 딸 다섯 시집보내며 포근한 목화 솜이불 욕심껏 해주지 못해서 이 무더운 여름 한낮 어머니 사랑 한 켜 또 마음 한 켜 얹어서 색동이불 만드신다 이제 한 쪽 끝을 말아 쥐고 뒤집기 하시나보다 서쪽 하늘로 흰 속통 넘어가고 있다 여자 한복 가운데 ‘고쟁이’라는 속옷은 남자바지와 비슷하지만, 밑이 터져있고, 가랑이 통이 넓다. 이 고쟁이 종류 가운데는 ‘살창고쟁이’라는 것이 있는데 경북지역에서 많이 입던 여름용 고쟁이다. 살창고쟁이는 허리둘레를 따라 약 6㎝ 폭에 15~20㎝ 길이의 직사각형 구멍을 10개 이상 낸 다음 구멍의 테두리를 감침질로 정리하고 허리말기(치마나 바지의 허리에 둘러서 댄 부분)를 단 속바지다. 또 시집살이도 그렇게 구멍을 송송 낸 옷처럼 시원하게 살라는 바람이 있었으며,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비는 친정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또 살창고쟁이의 뚫린 구멍으로 신부의 흉이 새어나가 시집살이가 수월하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담겨있다고 한다. 이 살창고쟁이는 1930년대까지 입다가 이후부터는 앞이 막히고 뒤만 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갓이 비록 낡았더라도 그것을 바르게 정제하려 해야 하고 옷이 비록 거칠더라도 그것을 모두 갖추려 해야 한다.” 이는 선비의 윤리와 행실을 밝힌 《사소절(士小節)》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한 말입니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바로 격식을 갖추어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거나 사모관대를 차려입어 옷매무시를 바르게 하라는 “의관정제(衣冠整齊)”가 되겠지요. 실제로 조선 사람들은 의관정제를 모든 일의 근본으로 보았고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는 바탕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갓과 함께 갓을 보관하는 ‘갓집’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지요. 갓집의 형태는 보통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겉모습이 갓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추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진에 보이는 갓집은 덮개가 갓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밑바닥은 동그란 모양과 네모, 팔각, 12각형도 있지요. 1866년 한국에서 순교한 프랑스인 드브뤼 신부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 사람 방에 들어가면 윗자리와 아랫자리가 있는데 처음에는 이것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