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그동안 유광남 작가 개인 사정으로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가 연재되지 못했습니 다.이제 다시 추스려 멋진 소설로 복귀합니다. 모구 큰 손뼉으로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알아내야겠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낱낱이 알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장예지는 광해군이 자신을 데려 온 까닭이 거기에 있음을 짐작했다. 분부를 내려 주옵소서. 아니, 난 어떤 명도 지금 내리지 않을 것이다. 옛? 광해군은 그녀를 외면한 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시선으로 정원에 만발한 봄꽃을 바라보았다. 그저 내 옆에 머물러라. 단지 그 말 뿐이었다. 화원을 가득 덮은 꽃향기이건만 그 냄새는 결코 향기롭지 않았다. * * * 선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대전은 휑하니 넓었고 그는 외로웠다. 왕좌를 지키기 위해 그가 몸부림쳐온 흔적이며 대가였다. 종적을 감췄다고? 강두명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하옵니다. 이순신은 수원으로 갔다. 김충선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면 필경 연유가 있을 것이다. 강두명은 왕의 용상을 감히 마주보지 못하고 계속 아뢰었다. 그 자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으나 역부족이옵니다. 은밀히 운영하는 인력의 한계가 있사옵니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스승님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광해군이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왕도에도 물론 신의의 귀중함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외웠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느니라. 왕도를 엄숙히 지켜야 하는 나도 못했거늘, 그 누가 신의를 지킬 수 있노라 자신 하겠는가? 장예지의 정혼자이던 익호장군 김덕령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을 말함이었다. 스승님을 신뢰하소서. 장예지가 위안처럼 내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김충선은 이순신과 더불어 내게 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방면된 직후 서애대감을 찾아갔다. 은밀히 새벽에. 광해군의 노기를 띤 음성에 장예지는 화들짝 놀랐다. 그...그렇습니까? 너도 놀라는구나? 나 역시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이 서애대감을 방문해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모두 들었다. ...... 장예지는 묵묵히 광해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그들의 말을 절대 신뢰할 수 없다. 광해군의 표정이 냉담해졌다. 장예지는 이순신과 김충선을 위해서 어떤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광해군 앞인지라 조심스럽게 의중만 짚을 뿐이었다. 스승님은 단지 이순신 장군님을 경외하실 뿐입니다. 광해군의 입 꼬리가 말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는 장예지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에 의혹을 지니고 있었던 터였다. 그것이 확인 되었다. 이혼이란 이름은 광해군의 이름이었다. 세자저하! 구대일은 그대로 땅바닥에 몸을 조아렸다. 말단 관직의 주서가 언제 세자를 만날 길이 있었겠는가. 구대일은 몸을 떨었다. 광해군이 그런 구대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예지에게 손짓했다. 그대는 나와 함께 가야겠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니라. 장예지는 오표의 냉정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따르겠나이다. 광해군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시위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오표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살인 병기들이 여러 종류가 숨겨져 있어, 자칫 하다가는 광해군을 노리는 간자로 오인 받을 수도 있었다. 만일 몸수색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꼼짝도 못하고 당할 판이었다. 대단히 운이 좋은 여인이다. 오표는 돌아서서 물러나면서도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장예지를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표는 청계천변을 걸으며 멀리 북쪽의 고향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진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밀명을 받고 고향을 떠나 온 지가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또 다른 방해자의 등장은 오표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평범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던 오표에게 이런 뜻하지 않은 대상들의 출몰은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빌어먹은, 운이 상당한 여자다? 장예지의 입에서도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저하? 그녀는 말을 하고는 황급히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대방의 신분을 그리 발설해서는 안 되는 법이 아니던가. 하지만 너무 놀라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왕세자 광해군이었다. 그는 세자의 복장을 벗어 던지고 갓과 도포 차림이었다. 일국의 세자가 변복을 하고 나선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으며 이렇게 장예지의 앞에 등장하는 것 또한 이변이었다. 우리는 범상치 않은 인연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 되었구나. 광해군은 기뻐하였다. 평범하지 않다. 오표는 직감적으로 상대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했다. 선비 복장의 광해군 배후에 기도가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저하라고 장예지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가 광해군이란 말인가? 궁궐에 머무르지 않고 변복을 한 채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을 시찰이라도 나 온 것일까? 오표는 일부러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으며 곁눈질로 광해군을 훑어보았다. 무군사 시절 먼발치에서 본적이 있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겉으로는 짐짓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장예지 역시 몹시 놀라운 상황이었다. 설마 이런 장소에서 이런 날에 김충선의 지기를 만날 줄이야. 구대일은 구대일대로 다음의 처신을 어찌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김충선과 그녀의 관계가 궁금했다. 낭자는 내 친구와 어떤 사이요? 장예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떤 사이던가? 김충선과 자신은 스승과 제자인가? 아니면 깊은 연모의 대상? 그도 아니면 이제는 생판 남남? 전에 조금 인연이 있었지요. 조금의 인연이란 말에 구대일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호, 다행이구려.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요. 혹 가까운 상대였다면 내 친구에게 큰 결례를 저지를 뻔 했지 않습니까. 대일은 넉살 좋게 말하였다. 비록 말은 그리 하였어도 여전히 켕기는 구석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조금 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인연입니까? 장예지는 이제 망설이지 않았다.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그 말인 즉, 현재는 전혀 미련이 없는 관계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 그런 것이 궁금하세요? 장예지의 질문에 구대일이 웃었다. 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친구가 충선입니다. 또한 그 벗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또한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오표는 제거해야 할 장예지의 등 뒤로 바싹 다가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막연한 시선으로 하천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 역시 젊은 특권이 아닐까. 오표는 스스로 위안을 했다. 그녀의 고통을 마무리하는 역할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오표는 침통에 숨겨진 오독침(五毒針)으로 그녀의 목덜미 양쪽에 자리한 천주혈(天柱穴) 중 한 곳을 찔러 버리고 그녀의 등을 슬쩍 밀어 청계천으로 밀어버리면 그만 인 것이다. 그녀는 포청에 의해서 단순 추락사로 기록될 것이었다. 혹시 우리 구면 아닌지요? 그 삶과 죽음이 엄숙한 순간에 불쑥 이방인 한 명이 끼어들었다. 갓과 도포를 착용한 선비가 장예지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오표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의외의 방해자로 인해서 노여움이 잠시 끓어올랐다. 동반하여 죽을 자? 선비는 넉살 좋은 생김새였다. 소생은 승정원 주서(注書)로 있는 구대일이라 하외다만. 장예지는 낮선 인상으로 접근해 온 구대일로 해서 잠시 혼란스러운 눈길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사람이 별로 머리가 영특하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오표가 장예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맑게 흐르는 청계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살구나무 가지에 꽃잎이 시름하는 모양을 보니 봄이 깊어가는 모양이었다. 그 분과 이곳을 거닐었다. 장예지의 가슴에 사부 김충선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람과 걸었던 수표교의 향취가 마지막 이란 생각이 들자 콧등이 시큰거렸다. 아니, 비단 청계천만이 아니고 이제 한성과는 작별을 고할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 번잡한 세속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고향의 산골짜기에 비구니들만이 모여 있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장예지는 그리 떠나고자 했다. 사부, 대업을 반드시 이루소서. 사부 김충선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기 위해 그녀는 추억의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표가 그녀의 행방을 뒤 쫒아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추적과 암살, 교란과 침투에 독보적인 훈련을 받은 전사였다. 사모하는 정인을 단념해야 하는 여인의 심리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반드시 그녀가 나타날 것이란 예측은 적중했다. 충분히 기다려 주겠소. 오표는 내심 중얼거렸다. 장예지의 가냘픈 몸매를 뒤 따르며 그녀의 손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난 5년간의 성과를 헤아린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기됩니다. 이회가 부친 이순신에게 아뢰었다. 이순신이 대답대신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김충선은 1592년 임진전쟁이 시작되자 바로 부하들과 투항하여 조선을 위하여 조총 기술을 전수하고 조선의 관군들은 물론이고 의병과 합류하여 무수히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충선은 어떤 면에서 이순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무관이면서도 역시 그는 학문적 성취가 남달랐다. 유학의 조예도 깊었으며 병서(兵書)를 풍부하게 섭렵하였고 두뇌가 비상하였다. 생각은 깊었으나 행동은 빨랐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을 선택하였고 까다로운 조선의 사회에 적응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 친구는 기필코 이루어 낼 것입니다. 이번에는 김충선과 동갑인 이울이 믿음을 드러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했지 않느냐. 이순신은 두 아들을 둘러보았다. 이회와 울은 동시에 대답했다. 아버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는 것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이 다시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단지 치열하게 투쟁했던 그들 오랑캐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거부하였다. 공연히 조정을 자극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이순신이 말한 조정이란 곧 선조를 일컫는 것이다. 왕은 지금 마지못해 방면한 이순신에 대해서 철저한 이중 삼중의 감시를 펼치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절대 자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때 이회가 머뭇거리다가 부친 이순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이회는 수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일행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지난 새벽에 감시자가 미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애 대감을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이번에는 어떤 연유로 곽장군을 피하시는 겁니까? 이순신은 아들 두 명을 둘러보았다. 서애대감은 결코 곤경에 처해질 분이 아니다. 하지만 곽장군은 다르지. 어떤 면이 다르옵니까? 이번에는 둘째 울이 물었다. 서애대감의 탁월한 지혜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어떤 위기에서도 서애대감은 흔들림이 없다. 그와의 관계를 공개 하는 것은 의심 많은 왕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다. 그러나 곽장군은 다르다. 그는 천생 선비이며 의병장이다. 술수를 모르는 담백한 대나무와도 같다. 오히려 조정에 의심이 가해진다면 곽장군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순신은 무장이었으나 웬만한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 자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김충선은 쉽사리 이순신의 곁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개벽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내가 이 어려운 시기에 종적을 감췄다면......? 어쩌면 그는 여진으로 날 찾아 떠났는지도 모르겠군. 오표의 안면에 놀라운 신색이 떠올랐다. 이순신과 김충선이 전일 새벽에 집을 나서며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는 것이...... 왜 아니겠는가? 만일 그들이 행동한다면 우리가 절대 필요할 터이지. 그럼 공주께서는? 마다하기에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오표! 깊이 들어와 버렸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러나 오표는 짐작하고 있었다. 칸께서 용남하시리라 생각하시옵니까? 일패공주는 서늘한 시선으로 오표를 응시했다. 용호장군이 반대하실 이유 또한 없으리라. 여진을 통일시킨 누르하치(愛新覺羅 努爾哈赤)는 명나라로부터 여진수령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용호장군(龍虎將軍)의 직함을 하사받았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여진은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루는 동안 부락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일사불란한 군대로 탈바꿈 시켰다. 또한 여진이란 호칭을 만주(滿洲)로 바꾸었다. 만주는 만주인 출신을 의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