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치고 ‘오은선’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 세계 여성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를 전부 오른 분이지요. 그리고 조금 더 아신다는 분이면 국내 여성 처음으로 세계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른 인물이라는 것도 알 것입니다. 그 오은선 씨가 자신의 등정기를 《오은선의 한 걸음》이라는 책으로 냈습니다. 저는 2011년도에 오은선 씨와 불암산을 함께 산행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월간중앙에 ‘오은선 대장과 불암산을!’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은선 씨가 책을 냈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14좌를 오르는 오은선 씨의 거친 숨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은선 씨는 너무 힘들어 어떤 때는 그냥 한 걸음만 절벽 쪽으로 내딛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면 1,000m 이상을 미끄러지며 그대로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절벽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싶었을까? 그 극한적인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합니다. 은선 씨가 오른 산 가운데 제일 힘들었던 산은 어떤 산일까요? 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의 도읍, 한양.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도읍지로 오랜 세월을 품어낸 한양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다. 수많은 이들이 오고가고, 살다간 땅의 역사는 풍부하고 깊을 수밖에 없다. 이 책 《한양 왕의 집 내집처럼 드나들기》의 지은이 이용재는 건축평론가로 한양 땅을 종횡무진 누볐다. 일요일만 되면 딸과 함께 서울 답사를 다니곤 했다. 5년 동안 함께 전국을 세 바퀴 돌았고, 서울 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이 책은 한양 도성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건축과 일제 강점기 전의 문화유적 가운데 19곳을 가려 뽑아 우리역사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책이다. 서울에 오래 살았어도 무심코 지나쳤거나, 보았더라도 그 뜻은 자세히 몰랐을 문화유적을 쉽고도 재밌게 알려준다. 가령, 창덕궁 연경당이 지어진 내막을 이렇게 설명한다. (p.60) 벼슬을 하면 대부, 벼슬 안 하고 초야에 묻혀 살면 사. 이 둘을 합쳐 사대부라고 하는 거죠. 1827년 순조 기자회견. “건강 때문에 여러 해 정사를 소홀히 하고 지체시켰다. 이제 세자가 총명하고 영리하니 대리청정을 시켜라.” 대리청정을 명할 때 효명세자는 19살, 순조는 38살. 효명세자는 창덕궁에 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구는 돈다. 세상은 움직인다. 우리들 모두도 움직이며 뭔가가 만들려고 분주하다. 이때 변하지 않고 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는 방법은 시간을 세우는 것이다. 아니 시간을 보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멈추어야 시간이 가는 것을, 지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 씹어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문득 나는 시간을 세우고 바라보는 드문 기회를 맛보았다. 보통 때 늘 고민하는 글쓰기를 이날 오후만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 마침 광화문 광장이다. 초여름이라고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의 포말들이 포장된 지표면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가운데 눈에는 저 멀리 광화문과 그 뒤의 근정전이 들어오는데, 핸드폰(우리 편집장님은 손말틀이란다)은 거기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텅빈 광화문은 요즘 바빠진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게 분주함과 시끄러움을 밀어내주고 조용하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내 발길은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갈아타야 할 버스를 한 번에 타려면 서대문쪽으로 가면 되기에 그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초봄부터 산과 들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시기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는 꽃 잔치가 요란하다. 도심 길가에도 어느 한 곳 빈 데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꽃길이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꽃과 사람! 꽃과 사람의 관계는 깊은 것임을 말해주는 것일까? 꽃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지, 사람이 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물음에 답을 내리기가 묘연(杳然)할 지경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꽃이 좋아 꽃을 탐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꽃의 처지에서는 꽃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꽃이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환심을 사고, 사랑을 얻기 위해서 아름답게 핀다고 보기보다는, 꽃들은 그들만의 꿈을 가지고 독특한 세계를 꾸미며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과 관계없이 그들만의 자유로운 세계에서 어느 곳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형상과 향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연과 순응하며, 생명의 생존법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보고 안 보고 상관없이 ‘아름답다’, ‘추하다’라는 분별과 차별에도 휘말리지 않고 그 어느 곳에서나 다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계절의 여왕 오월이 오늘이면 끝납니다. 오월은 대지를 따라 피어난 봄꽃의 향연이 끝나면서 화려한 장미 축제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그러니 봄은 꽃의 기억을 아름다움으로 소환하는 계절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꽃들과 만나게 됩니다. 주먹만 한 꽃도 있지만 깨알 같은 작은 꽃들도 있습니다. 꽃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각양각색으로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꽃 하나하나에 다양한 색상이 물들었을까? 꽃은 인간들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신들의 초자연적인 작품의 정수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장미의 계절입니다.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붉은 다발로 피어난 모습은 현기증 나도록 아름답습니다. 그런 장미도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화발극목(香花發棘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은 가시나무에서 핀다는 의미이고요. 또한 ‘화개병체(花開竝蒂)’라는 말도 있지요. 꽃은 가시와 함께 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이쁜 것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씀이 있고 보면 세상엔 전적으로 다 좋은 것도 전적으로 다 나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남을 뿐이지요. 어찌 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86)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이불 속 눈물은 얼음장을 흐르는 물과 같아 밤낮으로 흘려도 그 누가 알아주나 - 여인의 정(閨情) - 이옥봉(李玉峰).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을 들어본 이는 많아도, 이옥봉은 퍽 낯선 이름일 것이다. 조선 천재 여류시인 이옥봉은 승지 조원의 첩실로만 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서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비운의 인물, 이옥봉. 장정희가 쓴 이 책 《옥봉》은 그녀의 신산했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소설적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섞어 쓴 작가의 필력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한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1630년(인조 8년), 사신단 일행으로 명나라를 찾은 조희일이 명나라 대신의 집에 초대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명나라 대신은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책 한 권을 꺼내온다. 바로 《옥봉 시집》이었다. 아버지 조원의 첩실이었던 그녀가 평소 시를 즐겨 쓰는 것을 모르지 않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습니다.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경 소프라노가(계속 김은경 소프라노라고 하려니까 호칭이 길어 앞으로는 그냥 ‘은경 씨’라고만 하겠습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하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찬양대 광고 시간 때 가끔 은경 씨가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일정이 안 맞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간 것도 제가 올해 찬양대장이 되는 바람에 명색이 찬양대장인데 가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라는 의무감도 작용한 것임을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번 공연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오페라단이지만, 1991년에 창단하였으니 우리나라로서는 역사가 있는 오페라단이네요. 잘 아시다시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춘희>를 오페라로 한 것이기에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뜻의 이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방학이 되어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집에 가면 전기가 없고 호롱불을 켰다. 그 뒤 백열등이 보급되면서 시골에서 호롱불이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환한 밤으로 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에디슨이 백열등 전구를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모우먼 린지라는 사람이 1835년에 전구를 처음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 전구는 수명이 너무 짧고 열이 많이 발생하여 상품으로 개발되지는 못했다. 에디슨은 탄소 필라멘트를 사용하여 전구의 수명을 늘리고 빛을 강하게 하여 1879년에 전구의 상품화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87년에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만든 전구를 사용하여 경복궁 내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에 처음 전등불이 켜졌다. 《승정원일기》에는 에디슨을 의대손(宜代孫)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전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의 냉각수를 향원지에서 끌어다 썼는데 연못의 수온이 올라가 잉어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그러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발전기는 물고기를 쪄 죽이는 기계라 하여 ‘증어기(蒸魚器)’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전기불은 묘한 불이라는 의미의 ‘묘화(妙火)’, 괴상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 하루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인데 요즘 하루하루 초록이 녹색으로 짙어지면서 그 푸르름을 보면 온종일 컴퓨터다, 손말틀(휴대폰)이다, 책이다, 무언가를 읽느라고 피곤해진 두 눈에 시원한 청량제를 받는 듯 상쾌하다. 나뭇잎이 무성해지면서 그 사이로 새들이 예전보다 더 자주 나오고 노래도 부른다. 꿩도 나와서 인사를 하고 한동안 못 보던 뻐꾸기가 아파트 근처까지 날아와 길게 우는 소리로 귀도 흥겨워졌다. 청설모는 아예 사람이 다가가도 떠날줄을 모른다. 며칠 전부터 부쩍 날도 더워져 어느덧 초여름인데 가만히 보니 24절기 상으로 소만(小滿)을 지났음을 알겠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는 봄이 오니 안 오니 하면서 입춘과 우수 경칩을 열심히 찾곤 하였는데 그만 봄이 오고 나면 24절기를 잘 찾지 않으니 소만이라고 하니 뭔가 갑자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이름 같은 생경함이 있는 것 같다. 절기상으로 보면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온다는 정도는 알지만, 이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고 산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0)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마루로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에서 공부하는 학자가 아니면 아무리 높은 관리라 하더라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해라.’ 조선 후기의 명군, 정조가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일하는 관원들에게 내린 지침이다. 쓱 훑어봐도 정조가 규장각 관원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뒤 창덕궁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한적한 곳에 2층 건물, 규장각을 지었다. 정조는 24년 동안 재위하면서 규장각 학자들과 151종류, 3,960권의 책을 펴냈다. 직접 펴낸 책 말고도 중국이나 외국의 희귀한 책을 구해와 보관하기도 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 규장각은 모든 종류의 책을 모아놓은 ‘조선의 보물창고’였다. 이 책, 신병주 교수가 이혜숙 작가와 함께 펴낸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는 규장각에 소장된 책들 가운데 잘 모를 법하거나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을 가려 뽑았다. 옛 규장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각종 국보와 보물, 옛 책과 문서, 지도, 정부 기록물 26만여 점 가운데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