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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우리가 나서서 한민족의 바른 역사를 되찾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적도를 지나는 태양의 고도에 맞추어 땅의 열기가 높아가는 무더운 날 2016년 6월 26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국회 주변 대부분 상가도 철시하고 쉬는 날 우리의 뿌리 역사가 왜곡되었다며 이를 바로잡는데 힘이 되고자  나선 2천여명의 국민들이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 가득 모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더운 여름 시원한 산이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을 좋아할 때인데, 이들은 무엇 때문에 더위를 피하여 산과 계곡으로 가지 않고, 또 1주동안 쌓인 피로를 집에서 편히 쉬면서 충전하지 않고, 피곤한 몸으로 한적한 국회의원회관 큰 회의실을 가득 메운채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일까?


기자는 범상치 않은 모임이 무척 궁금하여 1주동안 피로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찾아보았다. 국회의원회관에 가보니 이 모임의 이름은 약칭"미사협"이라는 모임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중장년의 인사들로 우리의 바른 역사를 알고자 각자의 위치에서 틈틈히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미사협"을 다시 풀어쓰면 "미래로가는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협의회"로 한겨레의 바른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움으로써 훌륭했던 조상의 슬기를 이어받아 밝은 미래 한민족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줌으로써 후세들도 떳떳한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새역사를 창조하자는 의미가 있다.

 

개회와 더불어 식순에 따라 이어진 행사는 흥겨운 국악으로 시작하여 그동안 어떻게 미사협이 설립되었는지 경과보고가 있었다. 이어서 상임대표를 맏은 허성관 전장관의 인사말과 각계에서 온 인사들의 축사와 격려사가 이어지고, 자라는 청소년을 대표하여 어린 학생들이 "우리의 다짐"을 발표하였다.


이들의 다짐이란, 자신들의 조상을 왜곡 폄하하여 온 역사대신 제대로된 우리의 뿌리역사를 배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어 2부에서는 현재 역사책을 기술한 지금까지의 역사책에 대한 비판과 아들이 유지해온 우리 역사에 대한 그릇된 시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올바른 역사를 다시 서술하는데 모두가 역사의병대가 되어줄 것을 다짐하며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미사협"을 구성하고자 모여든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여든 역사에 관심을 둔 단체들로 그 단체의 수 만도 100개가 넘었다. 이들 단체는 작은 단체의 경우에는 회원수가 수 십명에서 큰 단체는 회원 수가 수 천명까지 이르는 사람들로, 각 단체의 회원들은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틈틈히 국내 국외자료를 뒤지며 스스로 공부하고, 그 공부한 것들을 회원들이 나누어 토론하고 학습하며, 자료로 얻은 지식을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검증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밝히기 위해서 공부하는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실제로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있었고, 또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관심을 둔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는 역사책부터 뒤지고, 발굴하여 한민족의 역사와 관련있는 각국의 다양한 사료를 검토하고 연구하며 더 나아가 자비를 들여서 멀리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현지 답사를 통하여 그 자료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정열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기존 강단의 역사학자들 처럼 학문 인맥주의에 찌들어 학문적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아야만 행세할 수 있는 학문종속주의에 매인 사람들이 아니라 역사에 있어서, 늘 기존사료의 검증을 통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다양하게 해석을 함으로써, 그 역사해석이 잘못되거나 왜곡 고착화된 것을 발견하면 시정하여 새로운 이론으로 과감히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유연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이론을  맹목적 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뒤틀린 것을 찾아내 시정을 요구하고 잘못 기술된 사실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기존의 역사학계 인사들이 자신들의 학문적 혈통에 얽매여 선배들의 학문을 이어받고 추종만 할 뿐, 자신들의 잘못된 이론을 수정하거나 뒤집지 못하는 기성 역사학계 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학문으로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들도 있었고, 또 학문으로써 역사학을 하지는 않았지만 문화인류학 지리학 언어학 신화학 등 방계의 학문을 추구하다가 결국 그 본류인 역사학에 까지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역사서술이 너무도 터무니 없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학문적으로 다시 규명하게 된 이들도 많았다.


이들의 주장은 현재 우리가 일제강점기 이래로 정립된 것으로 인정받는 한민족의 역사서술은 그야말로 엉터리로, 이들은 한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잘라버리고 일본 식민지시대 일본인 식민학자들의 주장을 반복 재생산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확대하여 고착화 시킴으로써 한민족의 과거뿐아니라 그 미래까지도 암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아래 근래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야기된 한민족의 고대 주요 활동 무대였던 만주와 시베리아지역의 중국의 고대사로 편입하는 역사왜곡에 대항 할 수 있는 학문적 성과를 목적으로 만든 재단인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연구 성과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학자로서의 뒷받침을 하는 이상한 일들을 하는 것을 보고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울분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연합대회를 개최한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대부분 한국민은 민족사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식민사학자들이 기술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것이 바로 정통역사라고 강요받으면서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시험을 치렀으며, 이를 국 내외에 무수히 전파하였다.


이에 따르면 한민족은 원시시대에서 부족국가로 발전하면서 국가의 형성도 되기 전에 북쪽에는 한나라가 통치한 한사군이 있어서 우리를 식민지로 지배 하였고, 또 남쪽에는 일본의 신공황후가 한반도의 남쪽지역을 점령하여 임나일본부가 있어서 우리를 지배하였다는 이상하고도 야릇한 역사를 강요하였다.


그러니 한민족은 남의 지배를 받아도 당연한 종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적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이 당연한 듯 스스로를 폄하 자조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민족성을 강요하였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역사속의 종속적 존재가 되기를 강요받았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적 역사관과 자기 비하적 심성을 갖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역사만을 전공하여 연구한 사람들이 왜곡시켜 놓은 패배주의 식민사관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혔다. 식민지주의 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역사를 독점하여 쓴 사람들이기에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던 많은 대중들에 대하여 전공했느냐를 가지고 따지면 이들은 더 이상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던 것이 현재까지 주류학계와 비주류 학계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정립된 현재 한민족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책을 많이 읽고 외운 사람들 일수록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우리는 역사의 시작부터 못난 선조의 역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음으로, 우리는 못난 선조를 둔 못난 후손이라는 열등감을 끊임없이 답습 반복한 결과 자기비하로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자조적 역사관을 가지고는 격변하는 세계현실 속에서 우리민족은 능동적으로 앞서나가지 못하게 되고, 늘 언제 불어닥칠 외세의 침략에 떨면서 미래에 과감히 도전할 의욕을 잃고 미리부터 겁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되어갔다.

 

그러나, 이제는 열린세상 다양한 정보통신을 통하여 그 어디에 있건 관심만 있으면 역사를 공부하고 옛문헌과 자료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시대로 변하였고, 이에 객관적으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우리의 조상이 남긴 수많은 훌륭한 자료를 통하여 훌륭한 조상의 자취를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지금까지 왜곡시키고 고착화시켜놓은 잘못된 현재역사책들의 아집과 오류에서 벋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제 누구나 역사에 관심만 있으면 구석 구석에 쳐밖여있었던 역사책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역사를 새롭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이제는 언제라도 관심만 있으면 한민족의 고대 강역이었던 중국대륙을 단시간에 드나들면서 살펴볼 수 있는 시대가 된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미사협에서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민족의 발원과 그 거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느냐 를 밝히는 것이며, 또 고대조선에 있었다는 한사군의 위치와 그 한사군의 실상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것에 가장 큰 촛점을 두었다. 이 두가지 문제를 고대 중국의 사서와 현재의 현장에서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누구나 당장 알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미사협을 대표하는 학자로 나선 이홍범, 심백강, 김정권, 이덕일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만리장성이야 말로 중국이 스스로 정한 중국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중국문명과 국가의 경계는 결코 만리장성 이남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한민족의 발원은 저절로 자명해지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다.


즉 중국의 만리장성 밖에서 엄청나게 발굴되고 있는 현재 홍산문화의 발굴지는 바로 한민족의 시원을 증명하는 것이며, 한민족이 활동했던 고대 강역은  만리장성 북쪽으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활동했던 지역이며, 그 영역은 만리장성이 끝나는 발해만 지역 동북방면의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와 고대조선의 전쟁으로 세웠다는 한사군이란 중국역사서에 기록된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현장의 유적과 요하지역의 지명으로 볼 때 한사군은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하고 고착화 시켜놓은 것 처럼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동반도의 서쪽지역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주류 사학계는 수많은 중국역사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들도 다 부정하면서 오직 자신들의 학문적 스승이라는 사람의 이론과 단정만을 금과 옥조로 섬기다 보니,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그 위치 조차도 스스로 해석을 하지 못하여, 오늘의 역사왜곡을 고착시켰고, 현재까지도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으며,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동북공정을 방지하기는 커녕 더욱 공고히 시켜주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역사학을 전공했던 많은 젊은 학자들과, 역사학의 방계학문을 했던 많은 학자들 그리고 순수하게 우리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100여개의 단체와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한데 모여 바른 역사를 되찾자며 나선 것이 오늘 미사협이다.


기자는 미사협 창립모임에 동참하며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한민족의 바른 역사를 밝혀낼 수 있을지 기대와 궁금증이 매우 커진다. 학문이란 반드시 그 학문을 전공해야만 이론을 전개하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역사나 철학등 인문학에 있어서는 사람의 지나온 길과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학문화 한 것임으로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하면 못할 바가 없는 것이다.  학문은 누구든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는 사람이 갈고 닦아서 이룩하는 것이고, 시대가 바뀌고 자료가 새롭게 나타나면 언제든 기존 이론은 뒤바뀔 수 있다는 것 이야말로 학문 발전의 과정이고 지금까지 학문발전의 노정이었다.

 

이제 미사협이라는 단체를 주축으로 새로운 학자들이 다방면에서 많이 나타나 우리의 올바른 뿌리역사를 확실하게 밝혀줄 날을 기대해본다.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