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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이름모를 절에 당당했던 고려 금동보살좌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불교가 정착한 이래 한국은 전국 어디에나 명산 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절들이 들어섰다. 그런 불사는 신라시대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많은 절들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중심지였던 개경(개성)을 중심으로 중앙에 왕흥사등 큰절들이 있었고, 각 지방에는 지역의 호족들이 세력을 떨치는 곳마다. 방대한 절들이 있었다. 지방의 호족들은 그 절들을 중심으로 지방의 토호세력으로 지역정권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으로 지방 중심지의 절은 개경의 중심절과 별로 다르지 않을만큼 큰 규모에 당당한 부처님을 모셔왔기 때문에 지방이지만 중앙정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내보였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고려가 망한 뒤 조선조에 이르러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원주지방에 융성하던 절들이 수백년 억불의 시대를 지난 뒤에는 자취를 땅속에 묻은채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갔고, 고려멸망후 500 년 지난 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하나 둘 세상에 다시 그 흔적을 들어내었다. 이때 일본의 불교학자들은 역사적인 유적지를 뒤져 한국내 불교유적들을 발굴하고 땅속에 묻혀있던 수많은 청동제, 철제, 금동불보살들과 각종 불교용품 그리고 청자를 비롯한 각종 그릇들을 발굴하여 일본으로 아무런 제재없이 빼나갔다.


오늘 보여주는 금동보살좌상도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보살좌상으로 그 당당함이 조선시대 보살들과 크게 다른 모습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보살이 어느 절에 모셔져 있었던 보살인지도 모른채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유물전시관에 모셔져 있다.


본시 보살은 머리장식이 부처님과 다른 모습이다. 부처님은 백회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 있고, 머리부분이 작은 소라모양의  나발들이 가득한 모습이지만, 보살은 부처님처럼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솟아오른 혹 같은 것)와 나발 대신 보통 사람의 상투에 상투를 감싸는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보통은 보관을 쓰고 있기에  상투머리가 보이질 않지만, 이 보살상은 상투를 감싸던 보관이 없어졌기 때문에 특이하게 상투머리가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호{얼굴을 높여서 부르는 말)의 모습이 당당하고 미소짓늠 모습은 삼국시대 백제의 미소를 보는 듯 아름답다. 비록 제자리였던 원주근처 어느 사찰 전각으로부터 멀리떠나서 박물관에 모셔진 보살상이지만, 그 완벽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에 전시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