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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강화도 암행어사 이건창 생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말 누란의 위기에 살았던 암행어사 이건창. 그는 1852 강화도에서 태어나 1898년 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도정치 하에서 각지방의 수령들에 시달리던 때, 관리들의 비행을 추적하여 이들을 벌주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1875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관찰사 조병식을 탄핵했다가 오히려 유배생활을 하게 된 후 벼슬을 포기하였다. 그러자 강직하고 청렴한 그의 성품을 알고 고종은 1880년 간곡히 청하여 다시 그를 암행어사로 임명하여 백성들의 민폐를 잘 해결해주어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관직은 오래 하지 않았으나, 1890년 한성부소윤과 승지를 역임하였으며 1894년 이후 관직에 나오지 않아 고종의 노여움을 사 전북지역 고군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는 학문적으로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조종하던 성리학보다는 이단시하던 양명학의 학풍을 따랐다.


그는 조선이 당파로 나뉘어 세월을 보냈던 세월을 정리한 당의통략(黨議通略)을 저술하여 조선시대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하여 후대의 당쟁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난뒤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있던 이건창 암행어사의 생가는 1996년 그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강화군에서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67-3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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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