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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신라 최초 선종사찰 가지산 석남사를 찾아서...

한국 선종의 시조 도의선사가 문을 연천년고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석남사(石南寺)는 울산의 외곽 가지산(迦智山)에 깃들어있는 절이다.

석남사의 창건은 신라 후기 헌덕왕(신라제41대憲德王 서기809-826) 때 중국의 선종을 받아들여 신라땅에 최초로 선풍을 일으킨 도의국사가 신라땅에 그 선풍을 일으킬 명당을 찾던 중 이곳 가지산에서 터를 찾아 세운 신라 구산선문 최초 가람이다.


도의국사는 당시 선불교를 꽃피운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스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불법을 물려받고 "도의"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도의는 헌덕왕 때인 821년 신라로 돌아와 신라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선종을 받아들여 한국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


당시 신라는 화엄종을 비롯한 부처의 가르침믈 책으로 기록한  것을 최괴의 교재로 공부하는 교종이 번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참선을 통하여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는다는 선종에 대하여는 낮선 상태였기에 선종에 대한 불교계의 이해가 깊어질 때를 기다리며 잠시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에 들어가 참선 수도하며 있다가, 3년 뒤 이곳 울산으로 내려와 구산선문 중 최초의 가람인 가지산파를 창립하고 석남사를 창건하여  신라 땅에 선종사찰을 개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여 선종이  한국땅에 뿌리를 내리게하였다


석남사에는  도의국사의 뒤를 이어  수많은 선사들을 배출하며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며 내려왔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쳤고 1592년 한민족 최대 수난기인 임진왜란에 이르러 일본군의 방화로 전소되고 말았다. 석남사는 임진왜란  이후 그 명맥조차 끊긴 뒤 80여년 지나고 1674년 조선 현종때 이르러 의철, 태주스님이 다시금 중창하였다.  하지만 조선조 억불의 시대를 지나면서 제대로 된 복원은 하지 못하는 기운 사세를 이어오다 또 다시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또 한국동란으로 포화 속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폐허가 된 석남사는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제삼차  중건을 시작하여 대웅전 극락전 등을 다시 짓고 이후 부속전각인 종각. 침계루. 심검당. 요사채 등을 중건하여 절의 면모를 이 만큼 이나마 갖추게 되었다.  석남사의 대웅전 앞에는 현재 삼층석탑이 있으나, 신라시대 도의국사가 세울 때에는 15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파괴되고 방치되었던 대웅전 앞마당에 1973년 스리랑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분양받아 삼층석탑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석남사의 대웅전 안쪽 높은 언덕 위에는 신라에 처음으로 선종을 도입한 도의국사의 승탑이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승탑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큰 손상이 없이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있었다.


봄 햇살을 맞으며 찾은 석남사의 경내는 차분하고 아름다왔다. 영겁의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부처님은 말했지만  이른 봄 석남사를 돌아본 소감은 전란과 억불의 상처속에서도 이만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하지만  전란과 억불의 역사를 알고나니 더 큰 아쉬움이  느껴진다. 


지금의 모습은 훗날 또 어찌 변할런지! 영겁의 세월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인간으로 뜬구름 지나듯 석남사를 들러 본다.


〈 주기>. 불교에서 교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경전(아함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을 부지런히 공부하여 부처님처럼 진리를 깨닫는다는 불교의 종파인 반면, 선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박에 깨달아 바로 부처님처럼 깨닫는다는 불교의 종파이다.


 따라서 교종은 경전을 위주로 공부하면서 참선도 하지만, 선종은 참선을 위주로 수도정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종의 시조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부처님의 선맥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고 하여 '이심전심'이라고도 한다.  그 마음을 전하는 예가 부처님 당시에도 몇 차례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다믐과 같다.


한 때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는 가운데 부처님이 옆에 있던 연꽃 한송이를 들어보였다. 이를 본 제자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였다. 그러나 가섭은 빙그레 웃어보였고, 이를 본 부처님은 자신의 선법을 제자 가섭에게 전해주고, 자신의 좌대의 반은 가섭에게 내어주며 가섭이 선법을 전해 받았다고 한다. 이때 가섭이 웃어보인 것을 '염화시중'의 미소다.


이렇게 부처님에서 처음 가섭으로 이어진 선법은 인도에서 28대 조사까지 이어오다가 인도에서 28대 조사인 '달마'가 서기 520년 경 중국으로 들어와 교종으로 번성하던 중국에 처음으로 선법을 전하게 되었다.  달마를 이어 혜가, 승찬, 도신, 홍인, 그리고 육조 혜능으로 오직 자신의 수제자 한사람에게만 이어오던 선법이 육조혜능에 이르러 누구든 깨달을 만한 사람이면 선법을 전수할 수 있다고 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는 서기 600년 대이다.


이렇게 번성하던 선법이 신라로 들어온 때가 서기 820년 도의국사라고 불교사는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법의 본거지가 신라에는 9곳이 있어, 이를 '구산선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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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