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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들이

[화보] 도깨비 절로 유명한 안성 석남사















[신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석남사는 청룡사가 있는 서운산의 북쪽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문무왕때인 680년 담화스님이 창건한 1350년된 사찰로, 신라 후기 문성왕 18년(876) 염거화상이 중수하였다 하며, 이후 고려 초 광종때 왕사였던 혜거국사가 크게 중창하여 많은 스님들이 수도했다고 전한다. 혜거국사는 고려 광종의 아들로 고려를 불국토로 가꾸기 위하여 출가하여 고승이 되고 국가의 스승인 국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고려가 기울고 이후 조선조에는 유교국가로 옛 영화는 기울었으나 억불의 시대에 접어들었어도 석남사는 안성을 대표하는 사대부들도 조상들의 복을 구하는 사찰로 그 명성을 떨쳤고, 이런 명성에 세조는 석남사에 자신의 친필교지를 내렸다. 억불의 시대였던 당시 전국의 스님들에게는 출가란 지금처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며, 국가로부터 어렵게 출가를 허락 받았다 하더라도, 전국의 사찰들은 국가에서 할당한 각종 세금과 특산품 공납의 의무와, 매년 개개인 승려들은 국가의 각종 토목사업에 의무적으로 부역해야 하였다. 그런 조선사회에서 세조는 석남사의 스님들에게는 부역을 면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특혜 속에 유지되어오던 석남사이지만, 이 또한 한민족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을 피하지 못하고 절의 모든 전각들이 불타버렸다.  이후 빈 터로 수 십년을 지내오다 병자호란도 끝이난 뒤 1650년 경 효종때 석왕사 혜원스님이 청룡사의 옛터를 찾아내 다시 중건하여 그 명맥을 이었다.


가파른 서운산 북쪽 산비탈에 위치한 석남사이지만 석남사에는 많은 보물들이 있다. 그 중 석남사 영산전은  그 규머는 작지만 석남사내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보물 823호로 보호받고 았으며, 대웅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절 근처 200M 거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또한 고려시대 양식의 선각화로 오랜 세월 속에서도 선명한 윤곽에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훼손됨이 없이 보존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지금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앞으로 좀더 그 가치가 밝혀진다면 보물급 문화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찰 경내 영산전 앞에는 작은 3층석탑이 있는데, 이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절 아래 따로 세워져 있던 것을 1970년 대 석남사로 이전하여 세운 것으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남사를 찾은 날은 오랜 가뭄끝에 목마른 대지가 촉촉하게 젖은 날이었다. 간간히 내리는 빗속에 석남사를 탐방하는 것은 가뭄에 시달리던 산천초목이 오랫만에 내리는 단비에 생명의 기지개를 켜는 듯 싱그러운 일이었다. 산비탈을 깍고 다듬어 세워진 석남사 내 전각들은 큰 전각들이 없어 아담하기 이를대 없었고, 대웅전에 오르는 108계단은 석남사가 위치한 곳이 무척 가파른 산지임을 느끼게 한다.


석남사는 얼마전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사찰로 많이 알려졌는데, 이를 증명하듯 도깨비 형상의 고목이 절 입구 계곡가에 자라고 있어, 이제는 석남사의 명물로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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