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깊어가는 가을, <송서ㆍ율창> 활짝 나래를 펴다

(사)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제3회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열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紅葉埋行踪(홍엽매행종)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 버렸으니

   山家隨意訪(산가수의방) 산속 집을 마음 가는 대로 찾아가네.

   書聲和織聲(서성화직성)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와 어울려

   落日互低仰(낙일호저앙) 석양녘에 서로 낮았다 높았다 하네.

 

이는 영ㆍ정조 때의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년~1793)가 지은 한시 「절구絶句」 이십이수(二十二首) 가운데 하나다.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버린 어느 가을날 남정네의 글 읽는 소리는 여인네의 베 짜는 소리와 어울려 우리네 가슴에 다가온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사마천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라고 말했다. 진사과란 합격자에게 성균관 입학 자격과 문과 응시 자격을 주는 과거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기》를 천 번이나 읽어야 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는 심지어 《사기》 백이전의 경우 1억1만3천 번 읽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 억(億)은 10만을 뜻한다고 하니 11만3천 번을 읽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과거가 신분상승의 유일한 기회이다시피 했지만, 이에 합격하려고 글 읽기를 목숨 걸 듯 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선비들은 소설도 시집도 아닌 저 어려운 역사서, 교훈서들을 어떻게 읽었을까? 바로 <송서(誦書)>라는 장르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송서를 부여잡고 전승해내고 있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유자 유창 명창은 (사)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해 어제 18일 아침 9시부터 세 번 째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을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었다.

 

 

 

 

이날 제전은 국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한국국악협회 후원으로 송서ㆍ율창 공연과 경연대회로 이루어졌다. 경연대회는 명인부ㆍ일반부ㆍ단체부ㆍ학생부ㆍ신인부로 나뉘어 열렸다. 우선 경연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겨우 글을 깨쳤을 유치원 어린이들의 앙증맞은 송서 경연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루마니아 사람인 김이환 어린이는 사촌 형제들과 함께 경연에 참가하여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경연대회는 모두 200여 명이 참가하여 명창부 대상은 김형주 씨가 받았고, 일반부 대상은 지윤구 씨, 단체부 대상은 윤현희 외 27명이, 학생부 대상은 김서정, 신인부 대상은 안진여 외 17명이 차지했다. 경연은 다른 경연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한 어린이가 사설을 잠시 잊고 머뭇거리자 사회자가 바로 격려를 해주며 계속해서 부를 수 있도록 해 지켜보는 이들이 따뜻한 경연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연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단국대 명예교수)은 “지난 2012년 지금은 ‘우리문화신문’으로 이름이 바뀐 ‘신한국문화신문에 여덟 번에 걸쳐 송서ㆍ율창을 조명하는 글을 올린 바있고, 이후 학술대회를 두 번이나 치렀다. 이후 몇 년 사이 이렇게 송서ㆍ율창 경연이 성황이 될 줄 몰랐다. 이제 나는 송서ㆍ율창이 국악계에 아주 넓은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추켜 올렸다.

 

또 그는 “이 행사의 이름은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이다 얼마나 멋있는 이름인가? 글 읽는 사람 곧 선비가 많는 나라가 잘 되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없어지는 선비의 자리를 여러분들이 송서ㆍ율창으로 다시 채워주시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연대회를 만들고 송서ㆍ율창의 전승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유창 명창은 “오늘 경연에 나이 어린 유치원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열정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참으로 감동이 밀려왔다. 이제 우리는 송서ㆍ율창이란 장르에 큰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서 감격스러워 했다.

 

경연 명인부에서 장원을 차지한 김형주 씨는 수상소감으로 “유창 선생님이 그 힘겨운 과정 속에서도 혼신을 다해 전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열심히 배워야 하겠다는 다짐으로 공부해왔는데 오늘 이렇게 장원을 하게 되어 감개무량하고 선생님께 정말 크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송서ㆍ율창이야말로 제게 있어서는 인생을 바꿔준 ‘소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깊어 가는 가을, 잊혀질뻔 했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송서ㆍ율창이 다시 힘껏 나래를 펼치는 모습을 청중들은 보았고, 또 기쁜 마음으로 큰 손뼉을 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