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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껍질을 깨고 나온 거문고 음악의 아름다움

거문고앙상블 <라미> 제5회 정기연주회, 용인 문화예술원 마루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거문고 고악보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금자악지통야 고군자소당어야(琴者樂之統也 故君子所當御也)”라는 글귀가 있다. 그 뜻은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고 하여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악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 백악지장의 악기 거문고, 조선시대 선비라면 누구나 옆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즐길 줄 알았던 그 거문고는 이제 연주자도 만나기 어렵고, 쉽게 연주를 접하기도 어려운 악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기 남성 연주자도 아닌 여성 연주자들이 꿋꿋이 그 거문고를 보듬고 연주하고 있다. 바로 어제 경기도 용인시 문화예술원 마루홀에서는 “시선, 초월하다”라는 이름의 거문고 앙상블 <라미(藍人)> 제5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이날 연주회는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말고는 모두 창작음악이어서 청중들에겐 어려웠을 수도 있었지만 사회를 맡은 고려대 유영대 교수가 중간중간 무대에 올라 자신의 느낌을 담은 알기 쉽고 맛깔스런 해설을 들려주어 청중들이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맨 첫곡으로 이선희 편곡의 거문고 삼중주가 그 문을 연다.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대표적인 기악곡으로 꼽히는 ‘영산회상’ 중 뒷풍류 부분만 오늘날의 감성에 맞게 편히 들을 수 있도록 3중주곡으로 편곡한 것이라는 해설이 달려있다. 곡의 이름답게 줄을 통해 조화로움을 이끌어내는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있다.

 

이어서 정대석 작곡의 “거문고로 그리는 풍경”을 이아람이 독주한다. 너무나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가을과 맞닿아 있단다. 아직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고추잠자리가 수놓을 가을 하늘을 상상하며 청중은 다음 계절로 훌쩍 뛰어넘는다.

 

그런데 청중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온 건 다음곡인 Wang A mao 작곡의 “TUNES FOR TWO”다. 유영대 교수가 적벽대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며, 오나라의 명장 주유와 당대 으뜸 전략가인 제갈량이 어떻게 심리대결을 벌이는지 또 그것을 거문고는 어떤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감을 잡아보라고 한다. 역시 깔끔한 해설은 청중들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후 7인의 앙상블로 연주한 Jared Redmond 작곡의 “초월(Transcend)”과 장은경 독주의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가 이어졌다.

 

 

 

 

그런데 청중들을 더욱 집중하게 만든 음악은 이아로 작곡의 “균열”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알프락사스”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람은 자기만의 아집과 편견과 고정관념의 껍질에 둘러싸여 있는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바로 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란다.

 

오른손은 술대로 내리치거나 뜯어 올려 연주하는 동안 왼손으로 스르륵 스르륵 자릴 바꿔가면서 줄을 짚어내거나 줄을 튕기며 7인의 연주자가 화려한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저 손가락 끝으로 빚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우리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안내를 하고 있음이렸다.

 

용인 상갈동에서 왔다는 전성영(47, 교사) 씨는 “남성도 아닌 여성 연주자들이 ‘백악지장’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거문고의 미래를 짊어졌음이 아닌가? 공연의 이름처럼 시선을 초월하여 꿋꿋이 연주해내려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곡을 빼고는 모두 창작곡으로 채워 소화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문고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한 두곡은 일반인의 귀에 익숙한 가요나 팝송을 곁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거문고앙상블 라미는 “고정된 시선을 탈피하고 초월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음악, 우리의 악기 거문고!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시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감흥의 경계를 초월하는지 이번 공연에서 음악을 통해서 들려주고자 했다.”고 공연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거문고 앙상블 <라미(藍人)>는 거문고 음악의 전통성과 현대성, 대중성을 동시에 아우르고자 결성된 거문고앙상블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람(藍)과 사람 인(人)을 합친 뒤 연철 (連綴)시켜 <라미>라고 이름했는데 이는 거문고 음악이 세대를 아우르고 시간이 갈수록 더 짙은 예술의 혼이 우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라 고한다. 그들은 머지않아 거문고로 짙은 쪽빛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같게 한다.

 

“내가 자식의 병으로 근심 중이었는데 강세황이 와서 거문고를 연주해 주었다. 그의 음악은 근심하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병든 사람은 소생하게 하는 듯 했다. (중간 줄임) 어쩌면 그렇게 소리가 맑아서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이는 성호 이익의 《성호전집(星湖全集)》에 나오는 글이다. 거문고앙상블 <라미>는 한 여름날 맑은 거문고 소리로 조선시대 강세황처럼 청중들을 기쁘게 하고 감동으로 이끌고 있었다.

 

사진제공 민경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