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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일제강점기 YMCA가 이끈 다양한 민족운동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차가웠던 그 시절, 영맨들의 뜨거웠던 움직임」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에서는 올해 3․1만세운동 100돌을 맞아, 지난 3월 ‘민족운동의 산실, 천도교 중앙대교당’ 로비전시에 이어 기독교 대표단체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이끌었던 일제강점기 다양한 민족운동과 그 장소적 배경이 된 YMCA회관에 대해 소개하는 전시가 내년 1월 27일(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서울YMCA의 전신인 황성기독교청년회는 구한말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1903년, 개화청년 150여 명이 뜻을 모아 YMCA본부에 창설을 건의함으로써 창립되었다. 회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황성기독교청년회는 황실과 내ㆍ외국인의 지원으로 1908년 현재의 YMCA 자리에 그때로써는 최고층인 3층의 서양식 벽돌건물의 회관을 완공했다. 이후 황성기독교청년회의 규모가 더욱 커져 1914년 증축하였고, 이곳에 우리나라 첫 실내체육관이 들어섰다. 이곳은 당시 청년들의 만남의 장이자 서양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었고 이후 민족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YMCA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암울했던 시대를 변화시키고 그 시대의 청년들을 깨우치게 하려고 다양한 민족운동을 주도했다.

 

학관을 통한 애국계몽운동

당시 청년들을 일깨우기 위해 윤치호(尹致昊, 1865~1945)가 중심이 되어 1906년 청년학관을 열고 역사와 지리, 외국어, 기술, 상업 등 다양한 근대교육에 앞장섰다.

 

1919, 1926년 독립만세운동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는 YMCA 학관을 졸업하고 유학중이던 송계백(宋繼白, 1896~1920)이 주도하여 재일기독교청년회관에서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해 낭독하였다. 3월에는 YMCA 간사 박희도(朴熙道, 1889~1952)와 연희전문학교 학생YMCA 회장 김원벽(金元壁, 1894~1928)이 주축이 되어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926년 6․10만세운동에서는 YMCA 학관에 재학중이던 박두종(朴斗鍾, 1904~1967)이 을지로5가 경성사범학교(현 국립중앙의료원)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YMCA의 체육활동

구한말부터 YMCA에서는 서양의 여러 근대 스포츠를 소개하고 교육했다. YMCA야구단과 농구단, 축구팀, 유도부 등은 국내 처음으로 일본팀과의 나라밖 원정경기에도 출전하는 등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울분을 드러내고 결집할 수 있었다.

 

 

 

YMCA의 농촌운동

우리나라 농민에 대한 일제의 수탈이 심해지자 YMCA는 농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신흥우(申興雨, 1883~1959)를 중심으로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농사강습회를 열고, 농민수양소를 만들어 농업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6․25전쟁으로 불탄 YMCA회관은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재건되어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며 종로의 상징 건물로 남아있다. 이후 YMCA는 종교단체에서 더 나아가 사회운동단체의 모습을 보이며 현재까지 청소년운동, 시민운동, 환경운동, 교육 및 복지활동, 국제교류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전시는 무료 관람이며, 관람 시간은 평일 아침 9시부터 밤 8시, 토․일․공휴일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www.museum.seoul.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