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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서파 류필영ㆍ동산 류인식 부자의 학문과 독립운동

한국국학진흥원 ‘류필영ㆍ류인식 부자’ 학술대회 열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0월 26일 낮 2시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서파 류필영ㆍ동산 류인식 부자의 학문과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행사는 지역 출신 인물의 학문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널리 알리고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퇴계학맥을 계승한 부자 독립운동가, 서파 류필영과 동산 류인식

 

 

서파 류필영(1841~1924)은 정재 류치명의 제자로, 경상도 남쪽에는 곽종석, 북쪽에는 류필영이라는 뜻의 ‘남곽북유(南郭北柳)’라 불렸을 만큼 뛰어난 학자였다.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이끌었으며, 시와 예를 강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는 3.1만세운동 직후 137명의 유림이 일제의 국권 침탈을 세계에 알리고 독립을 요구한 청원서인 ‘파리장서’에 곽종석, 김복한, 고석진에 이어 4번째 서명자로 올려져 있다.

 

그의 아들 류인식(1865~1928)은 30대에 의병항쟁에 참여했으며, 성리학적 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 위해 안동 내앞마을에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이상룡, 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항일운동을 이어가다가 독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1912년에 국내에 들어왔을 때 일제에 체포되었다. 그가 저술한 11책의 역사서인 《대동사》는 왜곡된 민족 역사를 바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통치 아래에서도 일제 침략의 역사를 기록하여 저술을 통한 독립운동을 보여주었다.

 

격동의 시대에 살았던 부자의 삶과 학문, 학술대회를 통해 재조명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조선말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격동의 시대에 살았던 류필영ㆍ류인식 부자의 삶, 학문, 독립운동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다.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서파 류필영의 학문 연원과 가학 전승에 대해 기조강연을 하고, 이어 권진호 수석연구위원(한국국학진흥원)은 서파 류필영의 학문 경향과 시세계, 김순석 수석연구위원(한국국학진흥원)은 류필영의 현실 인식과 독립운동, 박걸순 교수(충북대)는 류인식의 《대동사》 저술과 한국 근대사학사의 위치, 박경환 수석연구위원(한국국학진흥원)은 동산 류인식의 시대 인식과 사상적 대응에 대해 발표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 60만여 점의 기록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역사 인물에 대한 주기적인 학술 활동을 통하여 선현들의 삶과 업적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