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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생동감 넘치고 관람객과 호흡한 민속전시

각계 각층 23만명이 본《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의 특별한 성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에서 2023년 5월 3일(수) 개막한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이 105일 동안의 장정을 마쳤다. 우리의 대표 물고기 조기ㆍ명태ㆍ멸치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찾고, 현재 우리 바다가 처한 상황까지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시였다. 국보나 보물 등 무게감 있는 유물이 없는 전시였음에도 문화예술계와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성황리에 전시를 마쳤다.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은 차분하게 유물을 감상하는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소란스럽고 비린내가 진동한 전시였다. 박물관 전시실이라는 느낌보다는 시장을 옮겨놓은 것처럼 연출했다. 기존의 전시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시도에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현장성을 살리면서 관람객이 경험할 수 있게 과감한 전시 연출을 시도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 냄새나는 전시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은 정숙하게 관람하는 전시가 아니라 삶의 현장을 느끼는 방향으로 기획됐다. 물고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현장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으뜸 소재를 비린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시실에 진짜 건어물을 펼쳤다. 박물관에서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 나무상자에 크기별로 담겨있는 멸치는 물론 북어, 북어채, 명태껍질, 굴비 등을 진열해 수산물 시장을 연상케 했다. 덕장을 재현한 곳에는 실제 황태 200마리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건어물은 약품처리를 했으나, 비린내는 그대로 살렸다.

 

 

개막 초기에 전시실 온습도를 담당하는 직원이 전시기획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조기를 최고 단계로 올려서 비린내가 희석되는 일까지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조차 생소한 전시였기에 발생한 우발사건이었다.

 

□ 시끄러운 전시

현장의 치열함을 표현하는 데에 소리만 한 게 없다. 상인과 경매사의 음성, 어로노동요, 대중가요, 죽방렴 말뚝 박는 소리와 어선 엔진소리 심지어 조기 울음소리까지 전시실은 왁자지껄했다. 전시에서 통상적으로 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해 소리와 소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일반 스피커를 이용해 소리가 혼재되도록 했다. 사람과 사람이 섞여서 살아가듯 소리도 섞여서 어우러진다. 정제된 음은 삶의 현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생업 터전에서의 소리는 살아가는 자들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아우성이고 박동하는 심장의 울림이다.

 

전시 개막 초기에 전시실 소리가 뒤죽박죽 섞여 있으니 서둘러 대책을 세우는 게 좋겠다는 민원도 있었다. 다음날 바로 아래와 같은 안내문구를 전시실 입구에 추가해 관람객의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눈으로 감상하는 전시를 넘어 삶의 현장을 냄새와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장 내부에는 약품 처리된 진짜 생선과 어시장 상인과 경매사의 소리, 어로 노동요, 조기 울음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생선 비린내와 왁자지껄한 생업 터전을 생생히 체험해 보세요.”

 

 

□ 성가셔도 노출 전시

진열장 속에 있는 유물은 관람용이다. 유리 장막은 전시품과 관람객을 갈라놓는 힘이 있다. 관람객이 만져서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복제품과 전시 보조자료까지 진열장에 넣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액막이북어를 시작으로 5첩 반상, 제사상, 각종 건어물, 황태 덕장, 굴비 건조과정, 죽방렴 제작 도구, 멸치잡이 그물 등이 노출 전시돼 있다.

 

오첩반상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은 수저를 들고 기념 촬영하는 명소가 됐고, 건어물 상점에서는 진짜 물고기인지 아닌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만져보는 관람객이 자주 목격됐다. 그물 털기 체험 코너에서는 그물 터는 체험을 넘어 그물에 매달려 있는 멸치를 모두 떼어내어 바구니에 담아놓는 적극적인 관람객이 많았다. 담당 학예사가 날마다 아침 떨어진 멸치모형을 그물에 매다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전시자료가 진열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학예사들은 대체로 꺼린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아이들이 생선상자 속에 들어있는 인공얼음에 관심이 많은 걸 확인한 뒤 담당 학예사를 불렀다. 아이들이 편하게 가져갈 수 있게끔 여분의 인공얼음을 생선상자에 넉넉히 넣어둘 것을 당부했다. 전시보조물을 가져가도 눈감아 줄 정도로 전시물과 관람객의 거리를 좁혔다. 노출할 수 있는 전시품은 진열장 밖으로 나오게 해 현장의 생생함을 살렸다.

 

□ 바닷물고기를 주제로 한 첫 전시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인 나라인데 바닷물고기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없다시피 했다. 바닷물고기를 그린 유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병풍, 도자기 등에 나타나는 물고기는 잉어, 붕어, 쏘가리, 메기 등 주로 민물고기다. 그래서 특정한 바닷물고기를 내세운 전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해양 관련 박물관에서조차 해양신앙, 수중 발굴 유물, 해양교류, 어시장, 용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으나, 정작 바닷물고기를 주제로 한 전시는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면의 현장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이번 전시 기획자가 다년간 어촌 현장을 누비며 해양문화를 조사해 20여 권의 해양민속지를 집필한 바 있다. 기획자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서 전시실에 현장성을 담아냈다. 우리 삶에서 조기ㆍ명태ㆍ멸치가 지닌 의미를 찾아 나선 여정이 관람객 앞에 펼쳐지도록 한 것이다.

 

□ 기획자가 전시자료가 된 전시

기획자를 적극적으로 전시 소재로 삼았다. 학예사가 빨강 앞치마를 두르고 영상물에 등장해 생선과 건어물을 설명하고, 프롤로그 영상에서는 만화 형식으로 캐릭터화된 기획자가 명태 유래담을 설명한다. 전시패널이 문자로 빼곡히 채워질 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기획자가 화면에 등장해서 해설하는 방식이 재미난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또한 담당 학예사가 빨강 앞치마와 장화를 착용하고 날마다 2~3회 전시해설을 해 현장감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상인 복장을 한 기획자와 기념촬영 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날마다 펼쳐졌다. 더불어 다양한 유튜브 영상에 기획자가 등장해 전시를 흥미롭게 설명함으로써 시청자가 전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 얘깃거리가 된 도록

교양서처럼 쉽고 재미나게 풀어낸 도록은 전시 개막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여분까지 바닥날 정도로 날개 돋은 듯 소진됐다. 보통의 도록과는 달리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로 13cm, 세로 19cm)와 가벼운 재질을 사용해 소설책처럼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유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기존 도록에서 벗어나 물고기 이야기와 현장감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 또한 민속학, 생물학, 수산학, 음식학 등 분야별 칼럼 12편을 수록해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기존의 무겁고 내용이 딱딱한 도록에 벗어나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 주효했다.

 

□ 문화예술 기관과 식품제조 기업 학습마당이 된 전시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은 문화예술기관과 식품업계의 학습마당이 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직원과 한양대 교직원 등은 워크숍을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관람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공립과 사립기관에서 다녀갔고, 모 식품 관련 기업은 팀별로 나눠서 4회에 걸쳐 전시를 관람하였다. 전시 관람이 쇄도하면서 기관방문자를 대상으로 한 전시해설만 122회(1,376명)를 진행하였다. 이밖에도 전시해설사의 해설은 운영기간 모두 68회(332명)가 이루어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킬러콘텐츠에 의존하는 방식의 전시로는 한계가 있다. 각각의 전시자료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드러내어 이야기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큰 물줄기를 전시실에 구현하려 했다. 관람객이 전시실에 입장해서 나갈 때까지 정적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민속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민속박물관은 민속박물관다운 전시를 했을 때 빛난다.”

 

□ 해양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한 전시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 떼를 따라 수천 척의 어선이 뒤따르고, 어선의 뒤를 또 수백 척의 상선이 줄짓던 ‘파시(波市)’는 50여 년 전의 풍경으로 화석화될 것이고, 명태는 더 이상 동해로 돌아올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동해의 명태와 조기 어획량은 ‘0’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량 수입된 명태를 말린 북어와 조기를 닮은 물고기를 제사상에 올린다. 해양생태의 변화는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우리 밥상의 미래가 그리고 제사상에 북어와 조기를 올리지 못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총 관람인원: 229,548명

□ 기획자 일일 평균 2.3회 해설

* 해설사에 의한 전시해설은 별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