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 운동은 주로 개인의 소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각성’한 개인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를 알아보고 방문하여 물건을 사는 식이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소비행동은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으로 공정무역 운동의 질적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은 2000년 영국의 작은 마을 가스탱에서 시작됐다. 그 뒤 이웃나라들로 퍼져 지금은 세계 35개 나라에 2,030개의 공정무역 마을이 있는데, 유럽에 95% 이상이 몰려 있다. 독일이 687개로 가장 많고, 영국(425개), 오스트리아(207개) 등이 뒤를 잇는다.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달성하면 심사를 거쳐 공정무역 마을로 오른다. 심사의 기준이 되는 다섯 가지 기준은 1) 지방정부 및 의회의 지지 2) 지역 내 공정무역 제품 판매처 확보 3) 공동체에서 공정무역 제품 사용 4)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대중의 지지 5) 공정무역위원회 구성 등이다. 지방정부의 지지와 지역 내 주민들의 참여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순희 봉만호 서혜숙 신영란 오종실 이규석 최돈형 홍종배 모두 9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이날 걸은 평창강 제6구간은 평창읍 상리 평화길 입구에서 시작하여 평창읍 응암리 응암굴 앞 펜션에 이르는 11km 거리다. 이날 우리가 걸은 답사길이 속한 지명은 상리, 중리, 하리, 유동리, 약수리, 응암리 등인데 이들은 모두 평창읍에 속한다. 이날 걸으면서 평창읍 시가지를 통과하였다. 평창군은 1읍과 7개면으로 구성된다. 평창군지에 나오는 자료 등을 조사하여 평창군에 대해서 약간 자세히 알아보았다. 먼저 년도별 평창군 인구수를 조사하여 <표1>을 작성하였다. 평창군의 인구수는 1967년 1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이후 점점 줄어들어 2020년에는 4만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인구수 4만은 서울, 부산, 인천 같은 대도시의 1개 동의 인구수보다 적을 것이다. 도시의 팽창과 시골의 몰락은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평창군의 인구가 줄어든 가장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중간에 31번 도로를 건너지 않고 계속 남진하였다. 이 부근 평창강은 강폭이 매우 넓고 하중도(河中島, 강 한 가운데 있는 섬)가 보였다. 식생으로는 갈대와 버들이 많이 보였다. 조금 가다 보니 길이 좁아져서 차는 다닐 수가 없다. 조금 더 가니 이제는 사람도 가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나는 며칠 전 사전답사 차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지도상에는 길 표시가 없지만 갈 수는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계속 이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여만교 다리에 도달한다. 여만리는 이 구간 평창강의 동쪽 들을 말한다. 고려 때부터 양곡이 많이 나던 곡창지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만 명이 먹고도 남는다고 하여 ‘여만리(餘萬里)’라고 했다. 평창강가에 있어서 들이 넓고 길어서 ‘여마니’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여만교를 지나 둑방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강의 왼쪽 둑을 따라 걸어갔다. 강 건너편이 노산(魯山)이다. 노산의 높이는 해발 419m이지만 여만리 자체가 높은 지대라서 노산은 높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노산은 평창의 진산(鎭山, 관아의 뒷산)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길상 교수가 지난주 8월 19일에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즐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역사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라면서 “고종이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책에 썼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길상 교수는 천주교를 통해 한국에 커피가 들어왔을 거라고 본다.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인 베르뇌 주교가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다량의 커피를 주문한 기록이 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는 중남미와 동남아 포교에 커피를 활용했다. 베르뇌 주교가 주문한 커피가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이 1861년이었으므로 이때 주교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인으로선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길상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커피 역사는 160년이나 되는 것이다. 커피는 이제 전통차를 제치고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음료가 되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평창에서는 대부분 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교를 건너면 주진리이다. 《조선지지》에 주진리(舟津里)라고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다. 주나루라고도 부르는데, 나루 둘이 있으므로 두나루라 하던 것이 변하여 주나루가 되었다. 옛날에는 뱃터거리에서 나룻배로 사람과 우마차가 강을 건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1934) 주진교가 놓였고, 80년대 초에 새 주진교가 건설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이효석은 봉평에서 평창읍으로 갈 때 분명히 주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 것이다.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는 소년 이효석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작품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주진리에서 평창강 따라 동쪽으로 계속 걷다가 작은 하천을 만나 왼쪽 둑길로 돌아가니 주나루라고 쓰인 큰 비석이 나타난다. 공원 입구에 주진게이트볼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비석의 아래에 주나루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나루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던 뱃터거리를 말하는 이곳의 옛 지명입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물인 토기, 돌 연모,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고 앞산 용산(龍山)은 용산정(龍山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리 경로당이 오른쪽에 나타나자 용항교가 왼쪽으로 평창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 입구에는 효석문학100리길 제5구간 표시판과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남쪽에 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후평리를 지나 노산을 거쳐서 평창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년 이효석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걷는 걸을 걸었고, 내가 보는 산을 보았고, 내가 듣는 강물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인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봉평으로 찾아오면 꼭 이효석 문학관으로 안내한다. 문학관에는 2명의 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데 단체 관광객에게는 해설해준다. 이효석(1907~1942)은 문학관 근처인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진부면장을 했다. 그는 1914년에 평창읍에 있는 평창공립보통학교(지금의 평창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봉평에서 평창읍은 거의 100리 길이므로 이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창읍에서 하숙을 했다. 이효석은 192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를 1925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19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7월부터 우리나라는 열대야 현상으로 대도시 시민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심상치 않다. 환경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코로나보다도 더 심한 충격을 줄 것이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기후위기는 지구촌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위기의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일은 이제 모든 나라의 정부와 기업, 개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였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을 추진중에 있다. 기업들은 새로운 변화를 빨리 파악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운동을 소개한다. 첫째는 RE100운동이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를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로서 2014년에 다국적 비영리재단 The Climate Group의 주도 아래 시작된 지구 차원의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이규석 우명길 원영환 모두 5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4월 27일 화요일 오늘 걸을 평창강 제5구간은 평창읍 용항리 용항민박집 앞에서 출발하여 평창읍 상리 평화길 입구에 이르는 10.9 km 거리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석영(박인기)은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 22분에 기차를 타서 평창역에 오전 9시 40분에 도착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답사일 새벽 5시 42분에 카톡 방에 그가 글과 사진을 올렸다. ‘연두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연두의 시간> 동네 가까운 대모산에 갔습니다. '봄날은 간다' 노래를 웅얼거리며... 노래 사연이 애틋합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애틋함이 어찌 생겨날까. 꽃들 많이 피고, 꽃 사진이 SNS에 넘쳐납니다. 오늘 대모산에서는 신록만 보기로 합니다. 이를테면 '꽃보다 신록'입니다. 신록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잎새들이 짙은 녹색의 중심에 닿기 전, 연두의 시간입니다. 저 연두의 봄날도 빠르게 가겠지요. 금방 사라지겠지요. 이런 봄날, 숲에서 느끼는 연두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가 끝나고 며칠 뒤에 나는 다수리를 다시 찾아갔다. 계장리 바위동굴길을 지날 때 강 건너편 다수리 쪽에 보였던 돌담집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강가에 작은 기와집이 있었다. 마당은 100평 정도 될까. 사람이 다니는 통로 빼고 모든 공간에 빈틈없이 돌탑을 쌓았다. 돌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수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돌들이었다. 정자도 하나 있고.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탁자도 돌로 만들어놓았다. 내가 인복이 있어서인지 주인장을 만날 수 있었다. 통성명을 해보니 주인장 전희택 선생은 나보다 13살이나 위였다. 그분은 다수리 토박이로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나이 60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5남매를 잘 길러 모두 출가시켰다고 한다. 환갑을 넘기면서 그는 고향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인근 강과 산에서 근사한 돌을 모아다가 탑을 쌓기 시작했다. 큰 돌은 경운기로 날랐다. 무려 20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돌탑을 쌓아 아름다운 돌탑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집은 “평창군의 아름다운 집”으로 뽑혔고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했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돌탑집을 즐겁게 감상하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환경운동가 최열은 강원대 농화학과를 나왔다. 그는 68학번이고 학군단 장교 출신이니까 나와는 ROTC 10기 동기생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추구하던 시기에 매우 영향력 있는 환경운동가였다. 1982년에 그는 환경공해문제연구소장이 되어 환경운동을 시작하였다. 당시는 국민 대부분이 깨끗한 환경보다는 경제 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1993년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 환경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의 지명도가 높아지자 국회의원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서는 그를 영입하려고 유혹을 했지만, 그는 8번이나 거절하였다. 나는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환경 운동이라는 외길만을 걸어온 점을 매우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기업인들에게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 대학 동창 모임에 가서 최열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 “그 사람, 환경운동 하다가 비리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 아니야?”라는 반응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2008년 9월 24일 MBC 뉴스데스크의 다음과 같은 보도가 기록에 남아있다. 아나운서: 환경운동연합 최열 전 사무총장이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