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하늘재를 아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아,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연결하는 고개인데, 거 왜 수안보에서 미륵불 있는 데로 해서 넘어가는 곳이요" 이렇게 말해 주면 "아, 거기요, 그게 이름이 하늘재입니까?"라며 비로소 어디인 줄 대충 파악하는 눈치다. 다시 묻는다. "하늘재를 올라가 보셨나요?" 이 질문을 들은 사람 열이면 열은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사실 고향이 문경인 나도 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에 도자기를 하는 도예가 차를 타고 문경 쪽에서 차로 올라가 충북 쪽에서 올라오는 길을 본 적이 있지만, 차로 간 만큼 올라갔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예전 주소로는 문경군 문경읍 관음리이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용흥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쪽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올라가는 것인데 길옆에 띄엄띄엄 집도 있고 깨어진 돌탑도 있고 해서 옛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걷는 고생이 없어서 고개를 오른다는 느낌이 약했기 때문인 듯, 가본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고개(峙)건 재(嶺)건 올라가는 길은 반드시 두 개 이상이 있을 터인즉 경북과 충북 사이에 놓인 이 하늘재도 올라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67년 내가 살던 충주의 거리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가쓰므>라는 영화 광고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뭔가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 배경이고 70밀리 대형 스크린이라 하니 궁금하기는 했지만, 당시 영화를 마음 놓고 볼 형편이 안 돼 아쉬운 영화로만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직장인 KBS에서 런던주재특파원을 하면서 영국인들의 세계진출 과정을 들여다보다가 찰스 조지 고든(1833~1885)이란 장군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은 곳이 수단의 하르툼(Khartoum)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보니 이게 그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가쓰므>가 아닌가? 어떻게 하르툼을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기하였는지 씁쓸한 적이 있었다. (더욱 우스운 것은 3년 뒤 비디오테이프로 다시 나왔을 때는 제목이 '카슘공방전'이었음을 언론인 임철순 씨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엉뚱하기는 이 제목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의 T가 SH로 표기된 것을 처음 본다) 1967년 국내 개봉된 이 작품은 이집트(배후에 영국이 있지만)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의 독립투쟁을 다룬 70mm 대작 전쟁영화다. "총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퇴계 친필로 된 묘갈문 비석이 있어요” 파주 쪽 아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퇴계는 경북 안동 사람이어서 고향 쪽에는 많은 글씨를 남기셨지만, 퇴계의 친필 묘갈문이 파주땅에 비석으로 있다니. 부쩍 궁금증이 일어나서 어디에 있냐고 하니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에 있단다. “거기에 왜 있지요?” 하고 다시 물으니, “아 묘갈이 있는 곳은 성수침이란 분의 묘소이고, 그분은 성혼의 아버지인데 그 옆에 나란히 묘소가 있어요”라고 한다. 성혼(成渾)이라면 호를 우계(牛溪)라고 하는 유명한 성리학자이신데 그 아버지가 성수침(成守琛)이구나. 그런데 거기에 퇴계가 쓴 친필 묘갈이 비석으로 있단 말인가? 곧 가서 보자고 하니 저녁 무렵에 안내를 해준다. 과연, 향양리라는 곳, 약간의 야산을 끼고 언덕을 따라서 조성된 꽤 넓은 묘역에 들어가니 비각이 눈에 들어온다. 비각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성혼의 신도비(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이 있는 근처의 길가에 세우던 비석)고, 왼쪽의 것이 성수침 선생의 묘갈비이다. 팔작지붕형의 가첨석(加檐石, 빗돌 위에 덮어 얹는 지붕 모양으로 된 돌), 비신(碑身),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락가락 멈칫멈칫하다가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우리 주위 전역에 초록의 옷을 입은 봄의 아가씨들이 벌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퇴계가 이런 정경을 묘사한다. 霧捲春山錦繡明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珍禽相和百般鳴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幽居更喜無來客 그윽한 곳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다 보니 碧草中庭滿意生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구나 1565년 봄 퇴계 이황은 4년 전 완공된 서당에서 봄을 맞으며 서당 앞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이 머물며 수양과 교육에 진력할 좋은 땅을 구해 5년여 공사기간 끝에 마련한 도산서당의 앞뜰에 봄이 왔음을 시(詩)로 표현해 본 것이다. 퇴계는 봄날의 아침 풍경에 이어 한 낮을 묘사하는 시도 지었다. 庭宇新晴麗景遲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花香拍拍襲人衣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如何四子俱言志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아침이 한낮으로 바뀌면서 살짝 비가 온 마당에 햇빛이 서서히 들고 있고, 비에 씻긴 풀과 꽃향기가 옷자락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앞 두 줄은 그런 뜻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 4월 5일이 청명이구나 사전에 보니 청명(淸明)이란 말의 뜻으로 1. 날씨(혹은 하늘)가 맑고 밝다. 2. 소리가 맑고 밝다. 3. 형상이 깨끗하고 선명하다.... 이렇게 풀이한다. 이 가운데 오늘 청명의 뜻은 1. 날씨가 맑고 밝아서 일 것이고, 그러기에 이때쯤 이런 이름의 절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청명이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고 하고 해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라고 한다는 천문학상의 설명은 이제 좀 지겨울 때이다. 그저 날이 맑고 좋은 철인데 우주 공간을 망원경으로 잘라서 연구하는 천문학이 어쩌고저쩌고하면 이 청명한 날의 기분이 복잡해지고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러니 글 쓰는 분들도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로 유식한 척하지 말자. 다들 유식한 글에 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달력을 보니 오늘이 청명일 뿐 아니라 식목일이란다. 아 그렇구나. 4월 5일이 식목일이지. 아니 아직도 식목일이 의미가 있는가? 예전에 나무 한참 심자고 강조할 때 일이지, 지금은 우리 주위에 온통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에는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올라가지도 못할 지경인데 아직 식목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길 떠나기야 봄날이 좋지 세포마다 꽃눈이 피어 온몸이 근질근질할 때 경산 지나 청도 운문사쯤으로 길 떠나 보라 ... 변준석 '봄길1' 복잡한 서울을 떠날 수 있다면 운문사 가는 길이 좋겠지만 우리네 서울에 매인 사람들은 거기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시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이 걷기 좋은 봄날에 어디 가까운 데가 없을까? 그렇구나! 봄바람이 잘 부는 강변으로 가보자. 한강 변 꽃바람이 가장 좋은 곳이 어디랴? 약간의 산이 있어야 바람을 느끼기 쉬울 것이다. 너무 낮은 바람은 일상에 피곤한 우리를 스르르 잠재우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 바람은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열어주어야 제격이지... 그런 만큼, 가슴으로 불어와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내 발길을 한 강변으로 끌고 왔을 것이다. 찻길 옆이라 자동차가 달리고 매연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찻길 넘어 푸른 물에 가 있고 꽃바람을 맞으니 마침내 우리 가슴에 봄날이 왔음을 알겠다. 드디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목소리도 깨어난다. "야! 봄이구나." "야! 너희들 다시 왔구나!" "다들 어디 갔다 왔는가? 다들 잘 계셨는가?" 길옆에 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 큐슈의 무사들이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국제사회에 문을 연 뒤 먼저 추진한 사업이 북해도를 농업기지로 바꾸는 계획이다. 유신 8년만인 1876년에 삿포로 농학교를 설립해 운영한 것도 그 하나인데 이때 2기생으로 입학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열심히 받은 2명의 동급생이 있었으니, 바로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 1961~1930)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5년 만에 이 학교를 졸업한 뒤 3년 뒤 자비를 들여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학공부를 하다가 귀국해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거쳐 1897년에는 한 신문의 영어판 주필이 되어 일하면서 잇달아 영어로 된 글들을 발표한다. 1900년에는 《성서연구》지(誌)를 창간하고 1901년에는 《무교회(無敎會)》라는 잡지를 펴내면서 무교회주의 사상을 전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이미 영어로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을 수준이 된 우치무라는 1894년에 《Japan and The Japanese》(日本及び日本人)란 제목으로 책을 쓰고는 이 책을 1908년에 《Representative Men of Japan》(代表的日本人)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빨간색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빨갈 수가 없다. 보통 빨간색 꽃은 햇빛에 비쳐서 분홍으로 보이기에 십상인데 이 꽃은 빨강이 너무 진해서 오히려 검은색이 섞여 있는 듯하다. 해마다 이맘때쯤 봄소식을 겸해 자주 소개되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이야기다. 그래 이 매화는 홍매가 아니라 흑매란다. 그래도 사람들은 홍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누가 시비를 할 것인가? 보통 우리가 매화의 덕을 찬양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은, 매서운 겨울 추위를 뚫고 홀로 꽃피는 것으로 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고매한 인격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데, 이때는 맑은 흰색, 우유빛의 매화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제법 봄기운이 우리 몸에도 느낄 때가 지나면 이 지리산의 귀한 여배우는 그 농염한 자태를 자랑하며 우리에게 정말로 봄, 그것도 화려한 잔치로서의 봄이 왔음을 알려주지 않던가? 흔히 우리나라의 4대 매화라고 하면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구례 화엄사 들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등 네 군데 매화를 일컫고 그것들이 2007년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각각 지정되었기 때문인데, 이때 지정된 매화나무는 들에서 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 A shelter from the storm It exists to give you comfort It is there to keep you warm~ "아마도 사랑은 휴식하는 곳 . 폭풍우로부터의 피난처. 당신에게 위로를 주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거기 있지요 ~" 이런 내용을 영어로 깊고 묵직한 목소리가 부르면 다음 소절에서는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사랑의 다른 측면을 일깨워준다. ♪♪Perhaps love is like a window Perhaps an open door It invites you to come closer It wants to show you more~ "아마도 사랑은 창문이고 열려있는 문이지요 가끼이 오라고 초대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요~" 앞의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세계 최정상이었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1941~)였고 뒤의 맑고 낭랑한 목소리는 역시 당시 세계 정상에서 활약하던 미국 대중가수 존 덴버(1943~997)였다. 1982년 이 노래가 발표될 즈음 두 사람은 40대에 들어서는 비슷한 나이여서 곧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