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 월요일은 휴일이었다. 주초부터 휴일? 그것은 하루 전 일요일이 한글날 공휴일이었는데 일요일로 쉬지 못하니 대체해서 휴일을 하나 더 내주었기에 휴일이 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사흘 연휴를 일주일 만에 다시 즐긴 셈이 되었다. 이렇게 연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글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이고, 이렇게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리게 된 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주신 덕택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 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킈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고등학교 시간에 배운 이 훈민정음 서문은 세종대왕이 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 뜻을 천명한 것으로 유명하고 아마도 많은 우리 국민은 다 외울 것이다. 정말로 백성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어려운 실정을 풀어주기 위해 새로운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을 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다만 이 글을 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맨 뒤에 댱시 예조판서인 정인지가 이 어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달이 바뀌었다고 카톡에 날아오는 계절 축하카드를 뒤로 하고 우리, 곧 나와 집사람은 김밥이랑 물이랑 과일을 배낭에 넣어지고는 버스와 전철을 바꿔타고 멀리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10시 대공원 입구에는 어린아이들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로 벌써 인산인해입니다. 사흘 연휴인 데다가 날씨가 너무 좋고 공기도 깨끗해 마치 5월 초 느낌입니다. 이들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근 40년 만에 다시 보는 대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곳곳에 그늘과 쉼터가 있는 아주 좋은 공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 몇 년 동안 과천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어린이였던 두 아들을 데리고 몇 번 온 적이 있는데 근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서울대공원은 막 개장했던 당시의 썰렁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수목원 같았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등 몇몇 나무의 잎들은 벌써 가을을 맞는 기쁨을 뺨에 내보이고 있었고요. 동물원 한 가운데를 빙 도는 큰길 바깥쪽으로는 식탁 겸용 야외용 의자들이 많이 마련돼 있어서 어린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문경 새재에 가본 사람들은 제1관문 앞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이 잔디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사초롱이 걸린 것을 보니 혼례식인 모양이다. 이날 혼례식은 필자의 외사촌 딸이 이탈리아 신랑을 만나 한국에서 혼례를 올리는 것이었다. 보통 전통혼례도 요즈음엔 보기 어려운데 문경 새재 야외에서 펼쳐지는 행사라고 해서 필자는 친척의 일원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실제로 전통혼례를 관람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 혼례식에 신부 쪽 축하객들은 거의 다 양복과 양장을 입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신랑 쪽 하객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나왔다. 이래도 되는가? 우리의 옷 한복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입고, 그들의 옷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입고 나왔다니. 여기 혼례가 벌어지는 곳이 이탈리아라면 이해가 되겠는데 한국이지 않은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현상이자 현실이지만 전통혼례로 치루는 그 자체가 우리는 반갑다. 이날 대례청은 주흘문 앞 넓은 잔디밭에 마련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봐야하기에 병풍을 치지는 않았지만 초례상에는 쌀, 대추, 생밤, 화병이 놓였다. 신랑이 신부에게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奠雁禮)가 시작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6월 말 회사 후배들과 함께 아침 일찍 창덕궁과 후원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마침 약 석 달쯤 지난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집안 화수회 회원들과 함께 창덕궁을 답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계절은 9월 중순인데도 덥다 늦여름 날씨 같다. 간간이 해가 나면 등이 뜨겁다. 그렇지만 다시 보는 창덕궁과 후원, 다시 보는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인정전 등 큰 전각이 즐비하지만, 대부분은 보았던 것이어서 대충 보고는, 이번에는 집안 아지매 누님들도 있고 해서 왕비의 거주공간인 대조전 구역으로 같이 들어가니 뒤편에 아름다운 계단식 정원과 함께 괴석이 두 개가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소영주(小瀛洲)라 쓰여 있다. 작은 영주산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는 그들의 땅의 동쪽 끝에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 등 세 산이 있어 이를 삼신산이라고 부르는데,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산을 지리산, 금강산, 한라산으로 생각한다. 소영주라 했으니 이 괴석을 작은 영주산으로 이름 지어 보았다는 뜻이다. 여성 회원들이 관심이 있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구름이 끼어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름달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고향에 부모님이 있는 분들은 한가위 백 년 만에 가장 크다는 보름달을 다 같이 보고는 다들 각자 직장이 있고 집이 있는 도시로 돌아갔을 것이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얼굴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다가 3년 만에 비로소 만나서 많은 정을 나누었을 것인데, 내려가는 차량이 그리 많았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꼭 서울에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만이 아니고 지방 어디건 대도시에서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분들도 많아서 차량이 막히는 관계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해 추석은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그리 요란하게 들리지 않고도 지나는 것 같다.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차례음식이나 명절 음식 차리는 문제요, 또 하나는 자녀들의 혼인 혹은 출산 종용 문제가 조금 완화된 데 따른 것 같다. “차례상에 전 안 올려도 돼요” “추석 차례상은 송편과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이 기본이고 육류와 생선, 떡 정도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한가위 일주일 전에 성균관이 발표한 간소한 차례상 새 표준안은 명절을 맞는 분들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틀 전 늘 가던 둘레길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입구에 흰 테이프가 처져 있었고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표시가 있었다.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함이렸다. 그러고 오후 내내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밤새 걱정도 했다. 얼마나 엄청난 태풍이 오는 것일까? 새벽 4시에 얼른 창밖을 보았다. 어! 바람도 비도 잦아졌네? 그리고 다시 보니까 부산과 경남, 그리고 울산과 포항을 지나면서 400밀리가 넘는 엄청난 비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정전이 되고 길이 끊기고 했는데 초기에는 인명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하 주차장에서 주민들이 대거 실종되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많이 났다. 역사상 유례가 없이 강한 태풍이라고 해서 다들 긴장하고 조심했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다시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산에 올랐다. 역시 상처가 꽤 있구나. 등산로 입구부터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과 제법 굵은 가지들, 빗물에 쓸려 내려온 길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길 위에 올라와 있다. 조금만 땅이 낮은 곳에는 빗물들이 졸졸 흐르다가 아래쪽으로 가서는 굵은 물줄기가 되어 평지 근처에서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런 가운데도 누가 쌓았는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딱 10년 전 우리는 은평뉴타운 5단지에 집을 사서 이사 왔다. 이곳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로 한옥마을 단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2년 동안 아래 사진처럼 허허벌판, 공터였다. 그러다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맨 처음 생기고 시범주택이 생기더니 일반 한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애초 예상과 달리 분양을 시작하고 1년 동안에 12필지만 분양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이를 세분하고 또 일반 주택으로 집을 짓는 곳도 분양하는 정책전환으로 2018년에는 필지가 모두 분양되면서 한옥마을 조성사업이 활기를 찾았다. 물론 한옥과 양옥이 절반씩 나눠서 절름발이 한옥마을이 되긴 했지만, 수도권에서 처음 조성한 한옥마을이기에 새로운 주거단지이자 일종의 관광명소로 점차 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진관사에서 가까운 쪽은 한옥단지로만 분양이 돼 제법 한옥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현재는 공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옥들이 꽉 들어서는, 이름 그대로 한옥마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내가 은평뉴타운에 산다니까 한옥마을이 가까운 데 있냐며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손님들을 집 옆 한옥마을로 가끔 안내하기 시작했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최근 우리에게 전해진 희소식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연초에 이집트와 호주에 우리가 생산하는 K-9자주포를 수출하는 계약이 성사된 데 이어 최근에는 폴란드에 K2 전차 천 대와 K-9자주포 600대의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다.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사상 처음으로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선박 건조가 세계 1위가 된 지는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이렇게 자동차, 선박, 방위산업 분야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좋은 소식은 우리나라가 품질 좋은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가 철강제품의 강국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1970년대에 포항제철이 우리 기술로 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것이 발판이 되었고, 그것을 성사시킨 것은 고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의 지대한 공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이 제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전 세계 중요 선진국에 읍소를 했을 때 어느 나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오로지 이웃나라 일본이 이 기술을 우리에게 제공하면서 건설비용도 청구권 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 런던에서 손님이 왔다. 한 사람이 아니라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 4명이 함께 왔다. 런던은 2002년 2월까지 내가 특파원으로 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운데 간간이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거기 사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였고 또 손님 가운데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젊은이도 있고 해서 그들로부터 잘 듣지 못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야 일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니 자세한 사정이나 느낀 점을 이를 정리해서 전해줄 그런 DNA가 없다고 할 것인데, 부인과 아이들은 다르지 않은가? 실제로 실생활에서 가장 많은 것을 부딪치고 느끼고 하는 쪽이니깐 그들의 증언(?)은 과연 생생하고 따끈따끈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딱 20년 세월의 차이를 말해주는 증언이다. 이들의 증언을 알기 쉽게 정리해보면 1. 한국인의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영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 대하는 태도가 친근하고, 말을 걸면 아주 반갑다는 듯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2. 아들들이 학교에 가면 영국 친구들이 가까이하고 싶어 하고 물어보고 싶어 한다. 물론 한류 아이돌 소식도 있지만 때로는 한국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한국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복이 지나고 입추도 지나고 다음 주초에 말복이 지나면 무더위도 제풀에 꺾을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요즈음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장마가 간 것도 같고, 가지 않고 미련스럽게 한반도를 덮으면서 큰비를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한 여름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와중에 힘든 것은 우리들 서민이다. 서민이라고 하면, 당신이 무슨 서민이에요? 하고 필자에게 항의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틀지 못하는 가정은 다 서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요즈음 여름 나기는 옛날 임금이나 황제도 못누리는 편안함과 사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은 얼음을 마음대로 쓰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집 냉장고에 얼음을 만드는 장치가 달려 있으니 필요한 만큼 만들어 쓰면 되고 그게 아니면 마트에 가서 빙과류나 청량음료, 심지어는 주류도 얼음처럼 시원한 것을 선택해 먹거나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 어릴 때는 말이야~~” 하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화법인데, 사실 우리 어릴 땐 얼음이 그렇게 쉽게 쓰거나 먹고 마실 상황은 아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