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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60대 남성들 판소리에 푹 빠져

취미를 넘어 삶의 활력을 판소리에서 찾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무형문화재전수회관 예능연습실에서는 남도민요 <흥타령>이 굵직한 남성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면서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중견소리꾼 노은주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하는 60대의 남성들이다. 흔히 판소리나 민요를 취미로 배우는 여성들을 많이 보지만 60대 남성들이 판소리를 배운다는 것을 듣고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참으로 궁금해졌고, 그들이 판소리를 공부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 고등학교 동기들인 이들은 노은주 선생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들은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목풀기로 한 대목씩 불렀다. 단가 ‘사철가’로 시작하여 ‘쑥대머리’, ‘갈까부다’ 등을 구성지게 불렀다. 이날 마침 노은주 선생이 출강하고 있는 경주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이자 양산 미타암에 계시는 천광스님도 참석하게 되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사철가를 함께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목풀기를 한 다음 한 사람이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흥타령’을 배워보고 싶어요. 어디선지 ‘흥타령’을 들었는데 그 가락에 금방 빠져들었습니다. 게다가 문학의 향기가 아름다운 사설도 정말 멋있었습니다.

 

노은주 선생은 ”‘흥타령’은 ‘육자배기’와 함께 정말 멋진 남도민요입니다. 흥타령은 사랑, 이별, 기다림 등의 인생의 이야기가 감기고 시적 표현으로 단순한 인생의 무상함이 아니라 한바탕 살아가는 데 욕심을 내려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 같이 살다 가라는 큰 뜻이 담긴 소리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신영희 선생님 같은 분들이 끊임없이 만든 가사는 30여 절까지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흥타령의 의의를 말해준다.

 

그리곤 공부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내공이 담긴 소리로 ‘흥타령’을 불러 주었다. 그리곤 모두가 따라 불렀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6시부터 1시간 공부를 하는데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흥겨운 그들의 소리에 푹 빠져 흥얼거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들은 쉽게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판소리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까? 내친김에 일주일 뒤 있을 노은주 선생께 배우는 여성들과 합반하는 시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그런데 합반을 한 남성들과 여성들은 한 해에 한두 번 만나 쑥스러울 만한데도 스스럼없이 일어서서 그동안 배웠던 단가나 판소리 눈대목을 부른다. 그리곤 정말 화기애애하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흥타령’을 부를 때는 남성 청과 여성 청이 어울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들은 그 긴 사설을 어떻게 외웠는지 천연덕스럽게 한다. 이들은 아마도 치매에 걸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노은주 선생께 그들을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노은주 선생은 말한다.

 

”어려운 점은 전혀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들 하시고, 이순의 나이에 판소리를 배우면서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하시니 제가 더 보람됩니다. 그리고 저는 술을 못하기 때문에 뒤풀이 참여가 어려운데 이분들의 뒤풀이는 꼭 참여하지요. 그것은 수업 시간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곧 예를 들면 어떤 높낮이로 어떤 느낌으로 불러야 하는지 등을 끈질기게 물어오고 답하면서 즉석에서 사설을 만들어 붙여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 수업은 1시간이지만 결국 2~3시간 연장 수업을 하는 꼴이 되기에 힘들어도 꼭 함께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정광수전국판소리경연대회’ 단체부에서 사철가를 불러 대상을 받아 그 진가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둔 남성들이 술을 좋아하고 골프 등 일반적인 취미 속에 살거나 이도 저도 할 일이 없어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데 판소리에 빠진 이들의 삶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이들에게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참고로 노은주 선생은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유튜브 '노은주판소리'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서 많은사람들이 민요ㆍ판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판소리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판소리 남성공부반 대표 이오규 씨 대담

 

 

- 어떤 계기로 판소리를 공부하게 됐나?

 

  ”친구들 모두 어린 시절 고향에서 부모님 또는 주변으로부터 소리를 접하며 자랐고, 마음 한쪽에 나도 크면 저렇게 소리를 하고 싶다는 동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생업과 회사일에 충실하느라 기회를 만들 수가 없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이순의 나이를 넘어서니 더욱 소리공부에 대한 갈망이 있던 차에 친구들 모임에서 소리공부 한번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우선 4명의 친구가 동의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느낀 판소리에 관한 생각은 무엇인가?

 

  “일주일에 1시간씩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는데, 배웠던 대목과 가사를 외우고 장단을 익히는 것이 삶의 화두가 되었다. 따라서 삶에서 잡념들이 줄어들고 소리에 몰입하게 되어 생활의 중심추가 되고 활력이 생겼다. 또한 소리공부를 하게 되면 복식호흡을 하게 되고, 또한 폐활량이 늘어나 육체적 건강에 좋고, 가사를 외우고 장단을 맞추다 보면 두뇌 활동도 활발해져 나중에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생각된다.”

 

- 보통 동창들이라고 하면 세속적인 예를 들면 음주라든지, 골프 등을 같이 하는 것이 예사인데, 판소리를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까닭은?

 

  “판소리는 다른 외부활동 곧 테니스나 골프, 등산에 견줘 과격하거나 과도한 신체활동 없이 편안하게 할 수 있어 오히려 나이 들어가며 알맞은 공부라 생각된다. 또한 가사 내용이 사랑이나 이별, 그리움 등 나이가 있어야 생기는 삶의 지혜와 내공을 통해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기에 동창들 사이에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여서 적극 추천한다.”

 

- 판소리를 하면서 삶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원 가운데는 잠잘 때도 끊임없이 판소리 장단을 생각하다가 아내가 깰까 봐서 화장실에 가서 동영상을 보고 소리를 해보았다는 정도다. 집에서 사철가를 종종 부르는데 아내가 음이 틀렸다고 하면서 지적하기도 하고, 이제 아내도 제법 따라 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밖에도 새벽마다 청계산에 올라가서 연습하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사를 써서 붙이고 외우는 회원도 있다.

 

심지어 친구인데도 소리에 입문한 순서대로 선배ㆍ후배 위계질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은 군사부일체이니 음식도 항상 선생님이 먼저 드셔야 하는데 누군가 먼저 음식에 먼저 손을 대면 다른 친구가 나무라기도 해 참으로 재미나는 판소리 공부다. 다시 말하면 생활의 많은 부분이 판소리에 몰입되어 있을 정도로 삶은 완전히 바뀌어 있다.“

 

- 판소리를 가르쳐주시는 노은주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

 

  ”선생님은 우선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고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예를 들면 공부한 대목이 잘 안되어 톡으로 문의드리면 길을 걸어갈 때는 물론이고, 아침 일찍이어서 아직 목도 덜 풀린 상태에서도 직접 녹음이나 동영상 촬영을 해서 보내주실 만큼 열정적이시다. 그러시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겸손한 자세를 보이시는 점이 정말 대단하다. 현재는 한국판소리보존협회 사무차장 일까지 맡으시며 우리 판소리의 보존과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계시는 것에 정말 존경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

 

  ”선생님을 모시고 친구들과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재능 기부할 수 있는 곳에서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판소리를 통해 더 보람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