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이는 단가의 하나인 ‘사철가’의 부분이다. 단가는 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다. 단가는 ‘사철가’ 말고도 ‘진국명산’을 비롯하여 ‘장부한(丈夫恨)’ㆍ‘만고강산(萬古江山)’ㆍ‘호남가(湖南歌)’ㆍ‘죽장망혜(竹杖芒鞋)’ㆍ‘고고천변(皐皐天邊)’ 따위로 50여 종이 넘지만, 오늘날 10여 종이 불릴 뿐이다. ‘사철가’에서는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라고 소리한다. 그러면서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라고 하면서 꽃이 핀 봄을 놓아버린다. 이제 낼모레면 춘분(春分)이고 진달래, 산수유 등 꽃이 피어 드디어 춘색(春色)이 완연한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공주를 대신하여 흉노로 시집간 왕소군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고 노래했다. 그녀는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自然衣帶緩) 가느다란 허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乍晴乍雨)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리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은 상관하지 않으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이득이 되느니라 김시습은 이 한시에서 “누군가가 나를 치켜세우는가 했더니 어느새 나를 헐뜯고 있고, 명성을 피한다고 하더니 어느덧 명성을 구하곤 한다.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은 상관하지 않고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산은 다투지 않는다.”라고 깨우쳐주고 있다. 그러니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건 즐거운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평생의 득이 될 것이라고 속삭여준다. 매월당(梅月堂)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를 보았다 - 김상현 죽도록 일만 하는 당신 분노를 사랑으로 되새김질 한 당신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 당신 일상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당신 누추한 곳에서 평안을 취하는 당신 언제나 자기 걸음으로 걷는 당신 모두가 잠든 사이 혼자 우는 당신 무거운 짐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 멍에까지도 운명으로 사랑하는 당신 죽어 가죽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당신 이 땅의 아버지들이여. 요즘에는 한우(韓牛)라 하면 한국에서 기르는 소로 육우(肉牛) 곧 주로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는 소를 말하지만, 원래는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일소’였다. 그 한우를 우리는 먼저 황우(黃牛, 누렁소)로 떠올리는데, 1399년 권중화, 한상경, 조준 등이 쓴 수의학책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보면 누렁소에 더하여 검정소(흑우), 흰소(백우), 칡소 등 다양한 품종이 있었다. 칡소란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를 말한다. 조선 중기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곧 영모도(翎毛圖)를 잘 그렸던 화가 퇴촌(退村) 김식(金埴)의 그림 가운데는 어미소와 젖을 빠는 송아지의 모습을 그린 소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허물을 벗는다 - 이창년 허물을 벗는다 매미도 벗고 뱀도 벗고 우리도 벗는다. 허물을 벗으면 달라지는 게 있지 그렇게 우리도 달라지겠지 초승달이 보름달 되듯 보름달이 그믐달 되듯 어제가 오늘과 다르듯이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고 그러나 묵은 세월이 주저앉은 너와 나는 별반 달라진 게 없구나 아니야 엄청 달라졌지 그동안 측은지심이 많이도 자라서 키를 재고 있는걸. 허물을 벗지 않는 파충류는 파멸한다고. 한다. 허물을 벗는 동안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겠지만 말이다. 애벌레가 어른벌레가 되려면 하나의 통과의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허물벗기는 파충류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사람이 숨을 쉰다는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인데 낡은 사고를 버리지 않고 숨을 쉬고 있다면 그건 화석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야 깨닫지 못한 채겠지만... 그래서 나이 먹은 이들이 젊은 친구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렸다. 물론 사람 모두가 최첨단을 향해 허물을 벗으려고 발버둥을 칠 필요는 없다. 하루 먹기 바쁜 일반 대중이 목숨 걸고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삶 속에서 각자의 허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람이 오면 -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동경 발간다래 / 새도록 노니다가 / 드러 내 자리랄 보니 / 가라리 네히로섀라 / 아으 둘흔 내 해어니와 / 둘흔 뉘 해어니오” 이는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나오는 것으로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處容歌)>다. 설화에서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 그러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으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능 소 화 - 황인동 나는 당신이 걱정이고 당신은 내가 걱정이고 걱정은 또 모든 게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담을 넘는다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뜻이 담긴 능소화(凌霄花), 여름꽃이다. 그 많던 봄꽃이 다 지고 잠시 쉬는 사이 수줍은 주황빛 옷을 입고 흐드러지게 핀다. 다만, 능소화는 활짝 피어 이틀 정도 지나면 통꽃으로 뚝뚝 떨어지는데 그 기개가 독야청청하는 양반을 닮았다고 해서 '양반화'라고도 불린다. 능소화에는 하룻밤 성은(聖恩)을 입었던 궁녀 ‘소화’ 이야기가 전한다. 성은을 입었지만, 임금에겐 끝내 잊힌 슬픈 궁녀 소화. 그녀는 다시 찾지 않는 임금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지쳐 죽었고, 그 소화가 환생해 피웠다는 꽃이 능소화다. 그러기에 담장 너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능소화는 그렇게나마 오늘도 높은 담장을 넘어서고 있는가? 고즈넉한 시골집 돌담이나 회색빛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처럼 담장이라면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10m까지도 담쟁이덩굴처럼 올라가 담장 너머 세상을 보려는 능소화. 황인동 시인은 <능소화>라는 시에서 “나는 당신이 걱정이고 / 당신은 내가 걱정이고 / 걱정은 또 / 모든 게 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심정이 되어 - 이 윤 옥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가운데 줄임)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배달겨레의 철천지원수 이등박문을 쏴 죽인 우리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장군. 그런데 우리의 영웅 안중근 뒤에는 안중근보다 더 당당한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본명 조성녀, 미상 ~ 1927.7.15)가 있었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길 원하지 아니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결코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죽음을 앞둔 옥중의 아들 안중근에게 편지를 보내는 어머니 조마리아는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는 1926년 조직된 상해재류동포정부경제후원회(上海在留同胞政府經濟後援會) 위원을 지냈다. 또한, 같은 해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창립총회에서 안창호ㆍ조상섭 등과 함께 정위원(正委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함으로써 안중근의 어머니로서뿐만 아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독 재 자 - 허 홍 구 아침마다 수염을 깎는다. 내 몸에서 누리는 저 자유를 사정없이 잘라 버렸다. 오늘도 나는 독재자가 되었다. 제 몸에 생명도 잘라 버리는 무지막지한 권력은 독재자다. 지난 7월 8일 뉴스를 보면 미국의 올해 총기난사 사건이 339건이나 벌어져 사망자가 371명, 부상자가 1천429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총기난사 사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2% 늘었단다. 미국은 현재 등록된 총기만도 3억 9천만 정이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미국 사람들은 총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가 보다. 하지만 그 총부리가 결국 자신들에게도 향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에 견주면 우리 겨레는 단군조선 때부터 ‘홍익인간’을 내세우며, 모든 사람이 함께 살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이 ‘홍익인간’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교육법의 기본정신이 되기도 하였다. “찬 서리 /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입동 즈음 정경을 얘기했다. 우리 옛 조상들은 그 맛있는 감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배 롱 나 무 - 김창제 서러워서 붉은 게 아니라 붉어서 서럽다 했지 오래도록 붉어서 오래도록 서러운 여름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배롱나무를 일러 “어제저녁에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가 피어(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기분 좋게 한잔하리라.”라고 했다고 한다. 옛 선비들은 배롱나무가 나무껍질 없이 매끈한 몸매를 한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상징한다거나 꽃 피는 100일 동안 마음을 정화하고 학문을 갈고닦으라는 뜻으로 서원이나 향교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작지만 붉은 꽃이 오랫동안 피는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미끄럽다고 하여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라고도 하며, 그 붉은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한 번 핀 붉은꽃이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연달아서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포도송이처럼 한 송이의 꽃이 아래부터 위까지 피는데 한 송이가 며칠씩 피어있으니 전체적으로는 백일동안 붉은 꽃들이 계속해서 피어있음으로 백일동안 화사한 꽃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한 시인은 “눈물 나는 날 고개를 돌리면 저만큼 보이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 리 는 - 김태영 내가 쓸쓸할 때는 혼자 걷는 너를 생각한다. 내가 울면서 너를 위로하면 너는 웃으면서 나를 위로한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중국 춘추시대 종자기는 거문고 명인 백아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좋다. 우뚝하기가 마치 태산 같구나.” 하였고, 흐르는 물을 마음에 두고 연주하면 “좋다 도도하고 양양하기가 마치 강물 같구나.” 했을 정도로 백아의 음악을 뼛속으로 이해했던 벗이었다. 그런데 그런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더는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다고 말한 다음 거문고 줄을 끊고 부순 다음 종신토록 연주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 도가 경전인 《열자(列子) 〈탕문(湯問)〉》에서 유래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란 고사성어 이야기로 종자기는 백아를 알아주는 진정 참다운 벗이었다. 진한 우정을 이야기하는 고사성어는 이 ‘백아절현(伯牙絶絃)’ 말고도 ‘관포지교(管鮑之交)’와 함께 ‘금란지교(金蘭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 ‘금석지계(金石之契)’ 등이 있다. 특히 ‘지란지교(芝蘭之交)’는 지초와 난초처럼 ‘벗 사이의 향기로운 사귐’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