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실학자 이덕무는 서자 출신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한 벼슬 이상은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좌절감 또한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고 표현합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지요. 그도 한때 광흥창에서 벼슬을 합니다. 광흥창은 조선시대 녹봉을 주는 창고입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녹봉을 받았는데 월에 정기적으로 받는 것을 봉(俸)이라고 하였고 부정기적으로 보너스처럼 받는 것을 녹(祿)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지급하는 곳이 광흥창이었던 것이지요. 이덕무의 호는 청장관(靑莊館)입니다. 그의 문집이 《청장관 전서》인 이유입니다. 청장은 왜가리과 해오라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해오라기는 강이나 호수에 살면서 먹이를 쫓지 아니하고 제 앞을 지나가는 것만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곧 이덕무 호인 청장관에는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는 청백함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덕무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더러는 해가 저물도록 식사를 못 한 적도 있고 더러는 추운 겨울에도 온돌에 불을 지피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이 녹봉이 적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하곤 했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사진 에세이집 《올리브 나무 아래》가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박 시인은 그동안 분쟁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아프카니스탄, 라틴아메리카 등 지구촌 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와 사진 에세이집을 냈고, 또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이번 올리브 나무 아래》는 6번째 사진 에세이집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이번 사진 에세이집은 올리브 나무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올리브 나무일까요? 서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쟁 현장을 다니다, 나도 많이 다쳤다. 전쟁의 세상에서 내 안에 전쟁이 들어서려 할 때, 나는 절룩이며 천 년의 올리브나무 숲으로 간다. 푸른 올리브나무에 기대앉아 막막한 광야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시를 쓰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아이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짓다가, 올리브나무 사이를 걸으며 다윗처럼 돌팔매를 던지기도 하고, 저 아래 올리브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거들다가 돌샘에서 목을 축이고, 양떼를 몰던 소녀가 따다 주는 한 움큼의 무화과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약 한 달 동안 미국에 나가 있다가 돌아온 뒤 필자는 집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절에 가서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집을 나갔다가 탈 없이 다시 돌아온 것이 고마운 것이다. 그 고마움 속에는 집 나간 불상에 관한 법원의 확정판결이 10여 년 만에 마침내 이뤄진 데 대한 안도와 감사함도 들어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약 한 달 전쯤인 10월 26일 우리 대법원이 일본 대마도 소재 관음사(觀音寺)에서 절취되어 국내에 들어와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대마도의 절에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불상이 일본으로 되돌아가게 된 사정을 말한다. 이 판결이 난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이 난 날이어서 이와 관련된 뉴스가 많이 난 날인데 그런 뉴스 속에서 이날 대법원에서 낸 이런 판결이 나라 밖에 있던 필자에게는 아주 의미 있게 생각되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우리 국민 몇 사람이 2012년 10월 6일경 대마도 관음사(觀音寺)에서 금동보살상을 훔쳐서 국내에 밀반입하다 검거되어 범인들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불상은 압수된 사건이 있었다. 이후 그 불상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송나라에 사마환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구슬을 갖고 있었는데 죄를 지어 송나라를 떠남에 따라 구슬을 갖고 도망쳤지요. 송나라 임금은 이 구슬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마환을 잡아 구슬을 숨긴 곳을 물었지요. 사마환은 구슬은 도망칠 때 이미 연못에 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구슬을 얻고 싶었던 임금은 신하들에게 연못을 뒤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구슬을 찾지 못했지요. 열받은 왕은 연못을 모두 퍼내게 했습니다. 결국 연못을 다 펐지만, 구슬은 찾을 수 없었고 애꿎은 연못 속 물고기만 말라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앙급지어(殃及池魚)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요. 성문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옆의 연못에 물을 길어다 성문의 불을 끄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성문의 불 때문에 연못의 물고기가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지요.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魚) 자신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혀 뜻하지 않게 찾아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매일 아침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편지>라는 이름으로 따끈따끈한 한국문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번개글(이메일)로 전달해 주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2023년 5월 15일 쓴 머리말을 보니 우리문화편지는 올해로 4,800회가 넘었다고 하네요. 그 뒤로도 우리문화편지는 계속 쌓여가고 있을 테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런데도 김 소장은 아직도 ‘목이 마르다.’라고 합니다. 크으~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이면 그동안에도 이를 엮은 책이 있지 않았을까? 예! 그렇습니다. 《하루하루가 잔치로세》와 《키질하던 어머니는 어디 계실까?》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이번이 4번째 펴낸 책입니다. 김 소장은 이번에는 164편의 한국문화편지를 8장의 주제로 나누어 책에 실었습니다. 곧 1. 명절과 세시풍속, 2. 세시풍속과 철학, 3. 입을거리(한복과 꾸미개), 4. 먹거리(한식과 전통주), 5. 살림살이, 6. 굿거리(국악과 춤), 7. 배달말과 한글, 8. 문화재, 이렇게 8개의 장입니다. 그리고 글마다 삽화를 넣었는데, 대부분의 삽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생과 사를 가르는 긴 가로선. 언젠가 사진에서 본 눈 내린 종묘의 풍경, 어둠이 짙게 깔린 종묘와 하얀 눈 색의 대비는 생과 사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지은이의 표현에 따르면 종묘는 ‘유교식 신전’이다. 죽은 임금의 육신은 백이 되어 왕릉에 묻히고, 정신은 혼이 되어 종묘에 깃든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신전, 그것이 바로 종묘다. 흔히 종묘를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정도로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라면, 김향금이 쓴 이 책 《종묘에서 만난 조선 왕 이야기》가 종묘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종묘’라는 엄숙한 공간을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무척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종묘는 태조 4년(1395), 태조의 지대한 관심 속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종묘 건물에 쓰일 재목을 한강에 나가 살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경복궁에서 북악산을 등지고 있는 임금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이 세워졌다. 종묘와 사직을 짓고 나서 궁궐과 성곽을 차례대로 지었다. 이렇듯 종묘는 임금이 사는 궁궐보다 더 먼저 지어진 곳이자, 임진왜란으로 모든 것이 불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섬 활동가 강제윤 시인이 《날마다 섬 밥상》 책을 펴냈습니다.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 모든 섬에 발을 디딘 강 시인은 그동안에도 섬을 순례하며 섬과 섬사람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지요. 그리고 4년 전에 《전라도 섬 맛 기행》이라고 사라져가는 전라도 섬의 맛을 글로 살려내더니만, 이번에는 전국 섬의 밥상을 우리 앞에 차려주네요. 저는 강 시인이 교장으로 있는 <섬학교>에 몇 번 나가보면서 강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학교’라고 하니까 글자 그대로 무슨 학교인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강 시인이 우리 섬의 숨겨진 비경,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매달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섬을 순례하는데, 이를 섬학교라고 하지요. 제가 소개하여 섬학교에 등록하였던 사람도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박재일 회장은 강 시인이 사단법인 섬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지금도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요즈음 강 시인은 전국 섬에 흩어져 있는 걷기 길을 하나로 모으는 ‘백섬 백길’ 프로젝트를 총괄하여 누리집(https://100seom.com/)도 만들고, 모든 국민이 섬 길에 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깊어져 가는 가을만큼이나 과수원엔 사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사과를 오래 보관하면 썩게 마련인데 주목할 것은 사과끼리 붙어있는 곳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옆에 꼭 붙어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도소에 위문 간 적이 있습니다. 여수감자 대부분은 사기죄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편에 옷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왜 저들은 다른 옷을 입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살인범으로 복역 중인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여자 살인범들이 가장 많이 죽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을 죽인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자와 한 이불 덮고 자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우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친하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막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세월이 장기화하면 고질병이 되기 쉽고 그래서 친족간의 범죄가 더 흉악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친밀감은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친하면 상대방을 잘 알게 되고 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무례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지요. 그러니 친한 사이일수록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달 미국 여행길, 요세미티 공원 근처 어느 펜션의 앞 마당에 앉아있는데 조금 괴상하게 생긴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 옆 미루나무는 우리나라 것과 같은데 이 나무는 뭐지? 단풍나무 종류인가? 전에 살던 문래동 아파트단지에도 비슷한 잎 모양의 나무가 있던데... 단풍나무 종류가 아닐까, 하고 단풍으로 검색해 보니 노르웨이단풍이라는 것이 비슷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잎 모양이 달라도 매우 다르다. 그러면 뭘까? 궁금하던 차에 펜션에 비치된 컵에다 차를 따라 마시다가 옆을 보니 거기에 답이 있었다. 오크(Oak)나무였다. 오크통을 만드는 나무. 옛날 70년대에 많이 듣던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의 오크나무. 이 나무의 잎이 이렇게 생겼고 이게 그 나무구나. 원 나도 참. 그렇게 이 오크나무란 이름을 긴 세월 듣고 지났는데 정작 그 나무와 나뭇잎을 나이 70이 넘은 이 가을에 미국 산골에 와서야 알게 되다니... 탄식과 자조를 겸한 한숨을 내쉬며 집 주위를 돌아보니 집집마다 입구 쪽에 이 나무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 한국인들 시골집 주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명이 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좋은 벗이 해주는 위로는 천군만마보다 더 힘이 날 때가 있다. 이덕무와 박제가도 그랬다. 서얼로 태어나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삼켜야 했던 그들은, 서로가 가진 슬픔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귀한 재능을 알아봐 주고 독려해 주며, 어려운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갔다. 강민경이 쓴 이 책, 《운명아, 덤벼라!》는 신분이 주는 한계에 힘없이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담았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라!’는 자세로 맞서 분투할 때, 견고할 것 같던 운명도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두 사람은 외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우선 이덕무는 박제가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이덕무는 큰 키에 마른 편이고,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이덕무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박제가는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p.28) 내 삶에 대해 감히 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고요? 내 힘으로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운명이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라고 그깟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