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일에 능한 사람은 도구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완벽한 실력을 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당나라 때 유명한 서예가로는 우세남, 저수량, 안진경, 구양순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양순이 제일 유명하지요. 지금도 서예 학원에서 구양순과 안진경을 필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양순은 글씨를 쓸 때 붓과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수량은 좋은 붓과 먹이 없으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지요, 어느 날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나와 구양순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구양순이 한 수 위인 것 같네. 그는 어떤 종이에 어떤 붓을 가지고 쓰든 마음먹은 대로 쓰는데 자네는 붓과 종이를 가려 쓰지 않는가?'' 이에 저수량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능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연장이 좋아야 합니다. 목수가 연장을 좀처럼 빌려주지 않는 것이 그런 까닭이지요. 악기 중에서 값이 가장 천차만별인 것은 현악기 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10) 먼 길을 걷고 돌아와 천천히 매일 서귀포를 걷는다. 길을 내고 걷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길 위의 모래 한 알, 길섶에 사는 풀잎처럼, 풀꽃처럼 소소한 그 길이 소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제주 ‘올레길’. 전국에 올레 열풍을 불러온 ‘제주올레’의 창시자 서명숙이 지은 이 책, 《서귀포를 아시나요》는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다. ‘올레’는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좁은 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그녀가 구석구석 길을 닦고 빛을 내기 시작하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늘 거기에 있었던 ‘올레’, 그러나 그것을 발견한 것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무심히 보던 현무암조차 수십 년이 흐르고 보니 너무나 멋진 ‘신의 붓질’로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현무암의 빛깔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 이러한 경탄에 깊이 공감했다. (p.37) 제주에 살면 살수록 제주의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신의 붓질을 현무암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검은 현무암은 제주에 피고 지는 그 모든 꽃과 나무와 덩굴 식물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미라보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 <미라보다리>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시를 왜 새삼스럽게 얘기하냐고요? 시에 얽힌 이야기에 흥미가 있어서입니다. 물론 이 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잘 아시겠지만, 시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새로 알게 되어 입이 근질근질한 한 실없는 남자의 이야기도 너그럽게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미라보의 다리>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학교를 옮기고 나서 변화된 것이 있습니다. 시골길, 국도를 20분 달려 출근해야 하는 길에는 계절이 놓여 있습니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이전 학교에서는 넓은 운동장에 아이들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신체활동을 체육관 안에서 진행했기 때문이지요. 교장실 창문을 열면 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침의 시원한 기온 덕에 운동장에 나와 노는 아이들을 봅니다. 재잘거리는 소리 공놀이하고 뛰어노는 소리 왠지 기분이 참 좋아지는 소리입니다. 혼술, 혼밥, 혼영(영화관람), 혼행(여행), 혼쇼(쇼핑), 혼강(강의수강)... 혼자서 하는 문화가 너무 흔해 탈인 세상입니다.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혼자되기를 자처합니다. 이런 나홀로족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세태 상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도 어울려 놀기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길 좋아합니다. 바깥 활동의 실종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좋은 영양으로 체격은 커졌으나 체력은 나빠지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요한 호이징가는 인간을 ‘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 은평구 진관동, 내가 사는 동네다. 요즘은 도로이름을 주소로 쓰지만 행정구역 이름으로 진관동이 엄연히 살아있다. 진관동이란 이름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라는 오래된 절 이름에서 비롯됐다. 진관사는 원래 이름이 없는 작은 암자였으나 고려 왕조 초기 천추태후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현종이 이 절에 숨어들어 진관스님의 보호로 목숨을 건진 뒤에 임금이 되고 나서 진관스님을 위해 절을 키우고 절 이름도 스님의 법호를 그대로 쓰도록 해 큰 절이 되었다. 진관사는 수륙재를 올리는 절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개국한 뒤에 그 과정에서 숨진 많은 영혼을 천도해 주려고 집권 4년째인 1395년 수륙재(水陸齋)를 처음 지내고는 이곳에 수륙사(水陸社)라는 사당을 개설해 왕실 주관으로 수륙재를 봉행하도록 해 그것이 성종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고는 잊히다가 1970년대에 진관이란 동명의 스님에 의해 수륙재만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돼 2013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마다 가을에 진관사에서는 수륙재가 거행된다. 이 의식을 올리는 목적은 죽은 뒤에 윤회의 업보를 받아 물과 땅에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을 불보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73-74)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법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배가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얕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 든든한 장계를 쓴 주인공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성웅 이순신이다. 그는 존폐 위기에 선 조선의 수군과 마지막 남은 12척의 배로 조선 바다를 지켜냈다. 역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은 나를 알고, 적을 알고, 때를 알았던 이순신의 승부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공로의 이면에 조선의 명재상, 류성룡의 빛나는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뜻밖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규희가 쓴 이 책,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무척 소중하다. 책의 부제인 ‘이순신과 류성룡의 임진왜란 이야기’가 보여주듯, 이 책은 이순신을 있게 한 ‘동네 형’ 류성룡의 역할도 비중 있게 다뤘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어린 시절 남산 아래 건청동에서 함께 뛰어놀며 자란 사이였다. 건청동은 오늘날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를 써서 ‘충무로’라 불리는 지역이다. 류성룡은 이순신에게 동네 형이자 인생 지도자였다. 이순신은 나이는 류성룡보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비판론자들은 찰스 다윈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하느님의 자녀인 인간인데 그 조상을 원숭이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어찌 되었거나 진화론은 대부분 과학자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족보행을 하기 전에 태초의 유인원은 나무 위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유인원 대부분이 나무 위에서 수상(樹上)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땅에 익숙해진 인간은 나무가 불편하겠지만 유인원들은 땅이 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생활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나무를 버리고 땅을 선택한 까닭이 뭘까요? 어쩌면 나무보다도 땅이 생존을 위하여 유리했을 수 있습니다. 나무 위의 생활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나무는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에 취약하지요. 인류 첫 문명은 모두 땅에 정착한 문명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비옥한 평야에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황하 문명은 누런 황허강 강가에서 발전했으니까요. 이들은 모두 땅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땅은 강이나 바다와 같이 물이 있는 곳을 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번 고양시 대자동 건자산 자락에 있는 경혜공주와 정종의 무덤을 답사하였었다. 답사 뒤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건자산 건너편의 대자산 자락에는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 증손자 밀풍군의 무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밀풍군 무덤과 같은 산등성이 상에서 불과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명나라 출신 굴씨 여인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나라 여인이 조선 땅에 묻혔다는 것만으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아니다. 굴씨 여인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를 모시다가, 소현세자를 따라서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의문의 죽음을 – 나는 소현세자의 돌연한 죽음에 아버지 인종이 관련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 당했을 때도 돌아가지 않고 일생을 마치고 조선 땅에 묻혔다. 오직 소현세자만을 바라보고 낯선 조선까지 따라온 명나라 여인이 이곳에 묻혀있다니, 어찌 나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근처에 묻혀있는 소현세자의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 순탄치 못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지난번처럼 차를 관산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온난화를 가장 걱정하는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오늘 태어난 아기가 초등학생이 되는 2030~2035년 사이에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과학자들이 예상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해수면은 26~77cm정도 상승할 것이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바닷가 저지대의 곡물 생산 지역이 물에 잠겨 식량위기가 예상된다. 지구가 더워지면 강한 가뭄이 발생하여 사막지대가 늘어나고 산불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더욱 강해진 태풍이 해마다 나타나 홍수 피해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탄소 발생을 줄이자는 운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달리 말하면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하여 2023년 기준으로 128개 국가가 탄소 발생을 줄이겠다고 선언하였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서 공항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 한가위야말로 우리들이 몇 년 동안 기다리던 명절 아니었던가? 지난 6월부터 코로나에 대한 위기경보가 하향 조정되어 이 명절에는 코로나19 같은 호흡기 질환 걱정 없이 고향을 오가고 부모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에 말이다. 3년 만에 제대로 한가위를 맞이하는 것이다. 더구나 일요일에서 개천절로 이어지는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올해 한가위는 내려갈 때는 바쁘고 막히겠지만 고향에서 돌아올 때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만 연휴가 이어지면서 고향 대신에 나라 밖으로 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아쉬움이지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많은 것을 보면 좋게 생각해 줄 여지가 없지는 않겠다.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은 달빛을 보는 순간 고단한 인생,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나그네의 심사를 압축해서 쓸어 담았다. 床前明月光 침상 앞 달빛 어찌 그리 밝은지 疑是地上霜 서리가 내린 줄 알았잖아 擧頭望明月 고개 들어 밝은 달 보다 보니 低頭思故鄕 고향 생각에 고개 절로 내려가네. 우리가 보름달이 좋은 것은 그 속에 고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고향은 곧 부모님이고 부모님은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