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자객들은 이순신의 강경한 당부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장내를 빠져나갔다. 이제 객관은 적막한 밤기운만이 맴돌았다. 가토 기요마사가 보낸 자객임을 확신하십니까? 큰 아들 회의 질문에 이순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러한 음모를 자행할 수 있겠느냐? 선봉장 고니시도 있지 않습니까? 고니시는 본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이회는 부친 이순신의 정면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다소곳한 자세에서 말문을 던졌다. 아버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가토뿐이 아닙니다. 일본의 장수들은 하나같이 아버님을 제거 하고자 합니다. 전쟁 전이야 어떤 심경이었는지 모르오나 이미 양 국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사온데 어찌 고니시라고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그렇구나. 이순신은 아들 회의 발언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이회는 내심 고무되어 아뢰었다.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군을 시해 하고자 할 것이옵니다. 너의 생각이냐? 이회는 고개를 흔들었다. 완의 추측입니다. 이완은 숙부인 이순신의 시선을 느끼면서 허리를 숙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발설할 수 있
[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누가 사주한 것이냐? 그의 눈에서는 핏발이 번뜩였다. 그냥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순신이 누구인가? 일찍 세상을 등진 부모를 대신하여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이며, 전쟁터에서는 상관이었고, 앞으로는 대업을 이루어야 할 귀중한 신분이 아니던가. 만주로 떠나간 김충선의 당부가 아직도 생생하게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장군을 측근에서 경호해 주게나. 현재의 장군은 조선에서도 위험하고, 일본 측에서도 첫 번째 암살 목표일세. 철저한 경호가 필요하네. 김충선의 예언은 적중했다. 사실 이완은 김충선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숙부 이순신의 총애가 그를 향할수록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을 뒤틀었다. 여인네들의 투기처럼 질투심이 끓어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김충선의 경륜은 실로 놀라운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한 불편한 감정이 분출되어 올랐다. 어서 발설하지 못하겠느냐? ...... 자객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음이다. 그냥 보내 주거라. 이순신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이들을 풀어 준다면 다시 숙부님의 목숨을 노리고 올 것입니다. 부디 제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이순신은 잠에서 문득 깨어났다.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다. 미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공기가 답답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임시로 마련해준 관사(官舍)는 제법 정갈하였으나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란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나도록 편안한 잠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았다. 주적을 몰아내기 전에는! 왜적을 물리치기 전에는 절대 안락한 보금자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그가 결행해야 할 위업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었다. 이순신은 밖으로 나왔다. 너희들에게 거는 기대가 참으로 크다. 이순신은 만주로 떠나간 항왜 장수 김충선과 둘째 아들 울을 떠올렸다. 그들도 혹여 이 달을 보고 있으려나? 달빛은 심난하였다. 밝지 않았으며 안개에 휘감긴 듯 흐리기까지 하였다.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담장 밖에서 일어났다. 미세한 소음이었으나 무장 이순신은 감지할 수가 있었다. 칼을 뽑는 소리다! 이순신은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을 보호해줄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젊은 장수들은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관사 건너 방에는 큰아들 회와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허, 이것 참...이 장군의 아드님이라 어쩔 수도 없고. 무슨 뜻이요? 고진규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자 상당히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이 공은 부친의 일이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오? 무엇이 잘못 되었소? 이울의 태도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리는 그들이었다. 정신 나간 놈일세! 박정량과 전승업, 고진규가 이울을 외면했다. 이울은 다시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왕은 도주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권의 보존을 위하여 잠시 피했을 뿐이요. 부친의 일 또한 사사롭게는 인정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으나 왜적을 목전에 두고 군기를 강화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듣기 싫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요? 이울은 그들의 분노를 은연중에 무시했다. 작금의 사태는 매우 위중하오. 아시겠지만 왜적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재침략을 노리고 있소이다. 귀 공들은 이러한 시기에 왕과 신료들에 대한 불만만 쌓아둘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위로는 상감과 아래는 만백성들을 보존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야 할 것이외다. 이런 국면에 있어서...... 급기야 고진규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장군의 아드님이라 혹시나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또한 2차 전투에서 몰살당한 조헌 의병장과 영규대사 등 의병과 승려 700 여 구의 시신을 수습했던 의병장 조헌의 제자 박정량(朴廷亮)과 전승업(全勝業)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 날의 참상을 되새기며 울부짖었다. 이울은 그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고진규와 전승업은 각기 아버지와 조부, 스승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선을 침범한 왜적들에 대해서 철저한 원한을 품고 있음이 당연했다. 이울은 그들과 따로 한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술을 마셨다. 어떻게들 지내십니까? 이울은 우선 의병장 조헌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울화통을 간신히 참고 있을 뿐이지요. 박정량이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무슨 말씀이온지? 박정량은 기개가 남다른 중봉(重峯)의 제자였다. 임금께옵서 하는 짓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니, 지금이 어디 시기인데 부친을 압송하고 백의종군을 시키신단 말입니까? 그게 정신이 올바른 임금님이 하실 일입니까? 전승업 역시 혈기가 방자했다. 백 번 잘 못하신 처사입니다. 조선의 희망이 뉘십니까? 이순신 장군을 그리 대접해서는 아니 됩니다. 조선에 주둔한 명군들은 적을 몰아낼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장군에게 죄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도승지 오억령은 즉석에서 서찰을 작성했다. 내용은 조정의 공문을 유실하여 임금에게 근심을 안겨 주었으며 비변사에게 혼란을 야기 시킨 죄로 감금되어 있는 선전관 조영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임금의 죄를 대신 누명쓰고 붙잡혀 있는 조영을 석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논지였다. 그런데 주서, 구대일이란 자는 어떤 자 입니까? 도승지의 눈썹이 치켜졌다. 구주서를 아는가? 강두명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오나 다소 발칙한 면이 없지 않아서. 하하하, 풍류를 아는 선비일세. 풍류라 하시면? 구주서 말이야... 가끔은 뚱딴지 같이 엉뚱한 구석이 있네만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좋네. 일이 신속하고 음주에 가무를 아주 즐기는 편이지. 사헌부의 강두명은 한 마디로 그를 폄하했다. 한량(閑良)이로군요. 그러나 승정원의 직무에는 꽤 충실하다네. 그렇습니까? 강두명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놈이! 하고 구대일은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탐탁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만일 이순신의 이름을 그가 거론하지 않았다면 도승지와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구대일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친구 김충선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강두명은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으나 설마하니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위안하였다. 상대가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정이 되었다. 사헌부의 지평나리이십니까? 의정전 앞으로 구대일이 아닌 다른 젊은 관리 한 명이 나와서 공손하게 물었다. 그렇소만? 구대일 주서님께서 지평나리를 도승지영감에게 모시라 분부하셨습니다. 이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강지평은 혈압이 상승하였다. 결국 송사리마냥 자신은 빠져 나가고 만 셈이 아닌가. 두고 보자! 심사가 뒤틀어진 강두명의 입에서 쇳소리가 났다. 앞장서라. 조영을 방면하라는 것인가? 도승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두명은 턱을 가만히 끄덕였다. 선전관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자는 장계를 유실했지. 왜 이러십니까? 도승지영감! 도승지 오억령은 노련한 정 3품의 당상관이었다. 수군통제령의 중요 장계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궁궐에서 큰 사단이 발생했음을 모르는가? 임금의 체통에 위엄이 서지 않은 일이였어. 그러나 강두명 역시 예사롭지 않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사헌부의 지평이란 알려진 관직
[그린경제/얼레빗 유광남 작가] 내관의 여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내시의 몸으로 여자를 취할 수 있겠는가? 진상이 알려진다면 궁궐이 크게 시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었다. 고명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인사는 사양일세. 주의 하겠나이다. 고명수 내관은 화제를 돌렸다. 상감마마를 뵈었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도승지 영감을 만나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안내하지. 따라 오시게. 고명수는 직접 사헌부의 지평 강두명을 승정원으로 안내하였다. 임금을 측근에서 모시는 내관이 일개 지평을 위하여 길을 나서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승정원 입구에서 그들은 관리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소생은 승정원 주서 구대일이라 하옵니다. 어인 용무 시온지? 도승지를 뵈러왔소. 강두명은 다소 힘이 들어 간 눈빛으로 거만하게 대꾸했다. 구대일은 눈치가 매우 빠른 인물이었다. 제법 나이가 든 내관이 함께 한 것으로 미루어 평범한 신분 같지는 않았다. 동행이시옵니까? 내관 고명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난 이만 돌아갈 것이야. 구대일은 황급히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혹시 상감마마를 모시는 상선 영감 아니십니까? 고내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스승님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광해군이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왕도에도 물론 신의의 귀중함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외웠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느니라. 왕도를 엄숙히 지켜야 하는 나도 못했거늘, 그 누가 신의를 지킬 수 있노라 자신 하겠는가? 장예지의 정혼자이던 익호장군 김덕령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을 말함이었다. 스승님을 신뢰하소서. 장예지가 위안처럼 내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김충선은 이순신과 더불어 내게 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방면된 직후 서애대감을 찾아갔다. 은밀히 새벽에. 광해군의 노기를 띤 음성에 장예지는 화들짝 놀랐다. 그...그렇습니까? 너도 놀라는구나? 나 역시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이 서애대감을 방문해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모두 들었다. ...... 장예지는 묵묵히 광해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그들의 말을 절대 신뢰할 수 없다. 광해군의 표정이 냉담해졌다. 장예지는 이순신과 김충선을 위해서 어떤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광해군 앞인지라 조심스럽게 의중만 짚을 뿐이었다. 스승님은 단지 이순신 장군님을 경외하실 뿐입니다. 광해군의 입 꼬리가 말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그는 장예지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에 의혹을 지니고 있었던 터였다. 그것이 확인 되었다. 이혼이란 이름은 광해군의 이름이었다. 세자저하! 구대일은 그대로 땅바닥에 몸을 조아렸다. 말단 관직의 주서가 언제 세자를 만날 길이 있었겠는가. 구대일은 몸을 떨었다. 광해군이 그런 구대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예지에게 손짓했다. 그대는 나와 함께 가야겠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니라. 장예지는 오표의 냉정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따르겠나이다. 광해군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시위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오표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살인 병기들이 여러 종류가 숨겨져 있어, 자칫 하다가는 광해군을 노리는 간자로 오인 받을 수도 있었다. 만일 몸수색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꼼짝도 못하고 당할 판이었다. 대단히 운이 좋은 여인이다. 오표는 돌아서서 물러나면서도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장예지를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표는 청계천변을 걸으며 멀리 북쪽의 고향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진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밀명을 받고 고향을 떠나 온 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