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물론 전사한 의병장과 의병들에게 장군의 이름으로 애도(哀悼)를 표하고 그들의 공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해 주고! 김충선은 세심한 부분까 지 설명했다. 이울은 이른바 그가 포석(布石)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시 이 일본에서 온 조선 놈은 대단했다. 존경심이 봄날의 싹처럼 피어올랐다. 푸른빛이었다. 명심하겠네. 그리고 곽재우 장군님도 물론 찾아뵙겠네. 내가 여진으로 떠났다고 말씀 올리시면 곽장군은 모두 이해하실거야. 김충선은 홍의장군 곽재우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이순신의 무고를 애초에 믿고 있었고 그 자신 역시 한때 모함에 빠져서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지 않은가. 그때 곽재우는 가까스로 누명을 벗었으나 김덕령은 덫에 빠져 나오지 못했었다. 이울 역시 곽재우라면 능히 이순신의 한 팔이 되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하실 분이시지. 이울은 물론 김충선 까지도 홍의장군 곽재우의 가담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것이 크나 큰 오산(誤算)이라는 것을 그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네. 김충선은 마치 이웃집에 놀러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거동을 하였다. 불쑥 이울이 물었
[그림경제=유광남 작가] 윤자신이 궁금하여 물었다. 이순신과 김충선이 여진을 입에 올렸단 말입니까? 그들이 어떤 말로 상감마마의 어심(御心)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까? 근래의 여진에 대해서 아시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가 여진의 전 부락을 통일시켜 통치한 이후에는 별다른 조짐이 없는 줄 아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선조 이연은 이순신과 김충선이 땅바닥에 낙서했던 글귀에 대해서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여진과 왜적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분명히 뭔가 내막이 있었다. 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심 많은 조선의 왕 선조를 자꾸만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비변사를 통하여 북방의 행적을 탐문하시오. 선조 이연은 절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반드시 그들이 휘갈긴 낙서의 진의(眞意)를 밝혀내고자 했다. 황공하옵니다. 신 윤자신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어디로 간다고? 이순신의 둘째 아들 울은 김충선의 소매를 잡았다. 이울. 김충선과 동갑의 나이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여진으로 가야한다. 김충선의 선언에 울은 별로 놀라운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너만 보낼 수 없다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김명원장군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뿐이 아니오. 박진과 권율, 곽재우, 정기룡 등 김충선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지지 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소. 이순신 역시 김충선을 매우 아낀다고 들었소. 윤자신이 왕의 눈치를 살폈다. 항왜 장수를 어찌 신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총에 대한 해박한 기술과 사격 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자의 무군사(撫軍司) 시절 일지에 따르면 김충선은 화약과 총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서 우리 군에게 막대한 이로움을 주고 있으며 실제 전투에 있어서도 매우 위력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게 불패의 신화를 성취하였다고 하오. 선조 이연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김충선에 관한 내용을 뱉어냈다. 이로 미루어 왕은 이미 김충선에 관한 내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하께옵서 일개 항왜 장수에 관해서 이토록 소상히 알고 계실 줄은 몰랐나이다. 그 자에 관해서 관심이 많소. 이순신의 곁에 있기 때문이옵니까? 일본을 배신했기 때문이요. 하오면? 선조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감돌았다. 일본을 배신한 자가 조선을 또 배신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소. 윤자신은 흠칫 경직될 수밖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다른 날이라면 당연 취기가 온 몸을 적셔 와야 했다. 그런데 마시면 마실수록 의식이 또렷해 졌다. 윤자신의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김충선에게 모질게 대한 것이 마음 아파서도 아니었다. 이순신은 윤자신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해야 하는 자신이 서글퍼서 술이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반목(反目) 하였단 말이요? 선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윤자신에게 물었다. 강두명의 미행과 유성룡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제 3의 인물 윤자신을 직접 이순신에게 보내 의중을 살피게 했던 것이다.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선조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윤자신에게서 나 온 보고는 의외였다. 김충선이란 자는 아직 혈기방자(血氣放恣) 하여 그리 근심이 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선조는 김충선과의 독대를 떠올렸다. 이순신을 구해내기 위한 사내의 의지가 굳었고 총기가 남달랐다. 배짱도 대단한 자라고 생각했었다. 선조의 용안에 주름이 잡혔다. 그대가 혹 잘 못 본 것은 아니겠고...... 과인이 그대를 보낸 것을 짐작하고 했던 위선의 행동은 아니었소? 놀랍게도 선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주상은 만백성의 어버이시오. 변함없는 우리의 임금이시오. 소신은 신뢰하지 못하옵니다. 젊은 혈기의 김충선은 거침이 없었다. 그를 제지하고 나선 것은 이순신이었다. 충선아! 네가 감히 임금을 평가하려 하는가? 그런 불충을 저지르고도 무사 하리라 생각하느냐? 이놈이 출신이 비루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이로세. 당장 물러가거라. 이순신은 노성을 질렀다. 오히려 그를 만류하는 것은 윤자신이었다. 장군, 노여움을 걷으세요. 김장군은 성상의 깊으신 뜻을 곡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김충선은 벌떡 술상 앞에서 일어났다. 장군께서는 정녕 억울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왜란이 일어난 후 조선을 누가 구원 했습니까? 그리고 이제 왜적은 강화를 포기하고 다시 남해바다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누가 방어할 수 있습니까? 원균 따위로는 어림없습니다. 그에게 삼도수군의 통제사 지위를 빼앗겼으니 조선의 함락도 멀지 않은 것입니다. 장군은 당연히 분기해야 합니다. 장군의 몸은 장군 개인의 육신이 아닌 것입니다. 장군은 조선 백성의 희망이며 남해를 사수하고 있는 이 만 수군의 주인이십니다. 이순신의 눈에서도 불꽃이 일렁거렸다. 닥쳐라! 어떤 경우라도 임금을 원망하는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조정의 소문은 반드시 믿을 것이 못됩니다. 김충선장군! 그 이름도 삼감께옵서 하사하신 이름 아니요? 지금도 조정에서는 당의 파벌로 인해서 김장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리들도 있소이다. 그렇지만 상감은 강행 하셨지 않습니까? 여기 이순신 장군만 하여도 조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삼사의 빗발치는 상소를 무시하고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셨으며, 이어서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도수군통제사란 고금에 없는 수군의 막중한 총 책임을 맡기셨소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선조는 그래도 일국의 왕이었다. 조석(朝夕)으로 강연(講筵)에 참여하여 제왕(帝王)의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이 될 수 있는 자질과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성군 이연은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비록 지금은 왕좌의 보전을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추악한 제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한때 그는 영민한 왕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현재도 비상한 지모(智謀)를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순신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수군의 장수, 그저 평범한 전쟁 영웅을 시기 질투하여 모함하고 제거하려는 것은 선조 이연의 예측이 얼마나 탁월한 가를 증명하는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이 비록 백의종군의 신분이었으나 그를 만나고자 하는 관리들은 적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그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한산도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개벽을 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자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했다. 누구도 원한다면 만나야겠지. 이순신은 새벽에 유성룡을 만나고 온 후, 점심나절에 방문을 요청하고 찾아온 윤자신을 마주하였다. 윤자신은 호조참판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명나라 사신으로도 다녀왔고, 조일전쟁이 발생한 임진년에는 승정원 우승지로 임금을 모시고 피난을 다녀왔던 선조의 측근이었다. 고생하시었소이다. 윤자신은 초췌한 몰골의 이순신을 위로하였다. 하인을 대동한 그는 술과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주상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었나이다. 이순신이 술잔을 받으며 감읍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정부사의 상소문에 성상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도운 것입니다. 앞으로 이수사의 앞날은 더 이상 나쁜 일이 없을 것이외다. 정탁의 신구차(伸救箚, 이순신을 변호하려고 선조에게 올렸다는 1298자의상소문-편집자주)를 말함이었다. 그렇습니까? 물론이지요. 처음에는 주상의 진노를 누구도 제지할 생각을 못했습니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장예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충선을 위해서 여진의 군사를 움직일 정도라면 이건 매우 심각한 국면이었다.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장예지는 더욱 신중히 처신했다. 그건 이순신장군의 잃어버린 장계가 발견됨으로 인해서였어요. 반드시 나라고는 할 수 없지요. 일패공주는 예리했다. 이 마당에 우리 솔직하죠? 장낭자는 타협을 원했던 거 아닌가요? 그래서 광해군을 김충선과 더불어 설득한 것이고요. 지적은 날카로웠다. 장예지는 그 점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판단이 맞았기 때문이다. 일패공주는 이미 모든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진의 유능한 첩자였다. 사부는 무모하고 너무 위험해요. 바로 그 점이예요. 장낭자는 김충선을 그리 생각하고 있잖아요. 난 달라요. 난 그 사람의 가슴속 야망을 읽고 있어요. 그가 원하고 있는 이순신의 조선을 난 지지해요. 이순신의 조선이라고? 장예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충선이란 이름의 사내에게는 일패공주와 같이 영특한 권력의 소유자가 존재해야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새 하늘을 열고자 하는 개벽의 사나이에게는 그를 배후에서 도와줄 절대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장예지는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왕으로부터 김충선을 구원 할 방도가 어디 있겠는가. 왕의 명령은 바로 법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왕법에 의해서 약혼했던 장수 김덕령이 지난 병신년(丙申年)에 매질 당해 죽었다. 이번에는 또 그녀가 온 몸과 정신으로 사랑하고 있는 김충선이 표적이다. 장예지는 자신의 기구함에 맥이 풀렸다. 절대 그 사람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장예지는 가까스로 입술을 떼었다. 일패공주는 이때 미소 짓지 않았다. 그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하나 뿐 이예요. 장예지는 그녀의 다음 말이 무서웠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알려줘요. 듣게 되면 후회 할 수도 있어요. 아니, 분명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녀는 정색했다. 내게 그 말을 듣기를 강요하지 않았나요? 사부를 살리기 위해 내가 선택해야 할 일이 있는 거죠? 일패공주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장예지는 생각보다도 현명한 여자라는 것을 일패공주는 느끼고 있었다. 난 이제 준비 되었어요. 장예지는 어떤 운명이든지 받아드릴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일패공주는 그녀에게 또박또박한 어조로 설명했다. 김충선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는 일본을
[그린경제=유광남 작가] 광해군을 견제하기 위해서 김덕령장군을 해치웠죠. 이번에는 이순신 장군 때문에 사부를 노리고 있군요. 사부는 김충선이었다. 장예지에게 약간의 무공을 전수해 준 인연이 있었으며 이제는 김덕령 대신에 가슴 깊이 화인(火印)처럼 찍혀버린 사내. 맞아요. 그는 지금 조선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내가 되었어요. 장예지는 김충선을 떠올렸다. 늠름하고 다정하면서도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와 헤어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고, 그를 잊기 위해서 목 놓아 울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숨어서 은거하며 지내던 장예지의 마을을 굶주린 일본군들이 양식을 털어가기 위해 기습을 하였고 달아나다가 우연히 김충선과 해후하게 된 것이다. 운명으로 생각했었다. 장예지는 그를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많은 언어를 주고받지 않아도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김충선의 곁에서 그가 느끼고 싶어 하는 조선의 숨결을 전달해 주고자 마음먹었다. 조선의 운명을 눈앞에 두고 고민하는 김충선에게 평화로운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와 함께 광해군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의 왕 선조와 담판을 짓기 위해 떠나간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장예지는 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