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현상금 100만 원. 일제가 약산 김원봉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 액수다.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 60만 원의 약 두 배, 오늘날의 값어치로 자그마치 3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그러나, 약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현상금 360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끊임없이 위험한 일을 도모해야 하고, 밀정은 판치는 가운데, 한번 잘못 발을 디디면 그걸로 끝인 살얼음판. 그는 그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걸어 해방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이 오히려 약산의 영화로운 한때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방 정국에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친일 경찰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일제 치하에서도 당하지 않았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약산의 삶이 《타짜》, 《식객》 등 만화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의 펜 끝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약산의 일대기를 그린 이 만화, 《독립혁명가 김원봉(가디언)》은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진행된 성남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식의 모범’이라는 뜻의 《의궤》. 이 《의궤》는 영상도, 사진도 없던 조선에서 많은 복잡한 의식과 행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졌던 비결이었다. 고려에는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한 행사가 끝나면 그 행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정리해 두는 ‘공식 행사보고서’이자, 행사를 치른 적이 없는 이들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행사 지침서’였다. 유지현이 글을 쓰고, 이장미가 그림을 그린 《조선왕실의 보물 의궤》는 ‘의궤’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대화체로 된 친근한 설명과 함께 사진과 그림이 풍부히 실려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의궤를 쉽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이런 매력을 알아본 독자가 많았던 덕분인지, 2009년 처음 출판됐음에도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책은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의궤를 임금의 탄생, 임금의 활쏘기, 임금의 혼례, 임금의 제사, 임금의 건축, 임금의 행차, 임금의 죽음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해당하는 의궤를 소개한다. 의례와 예법이 발달했던 영ㆍ정조 시대에 많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학교에 다니던 학생. 농사를 짓던 농부. 절에서 참선하던 승려.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잡화상. 독립은, 이처럼 ‘평범한’ 이들의 꿈이었다. 대한독립은, 이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독립을 향해 내달렸던 평범한 이들을 쉽게 잊곤 한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우는, 혹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접하는 위인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주연이다. 그러나 이런 빛 뒤에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을 이들이, 독립운동사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보는 이 없는 초라한 단역으로 아스라이 잊힌 것이다. 양경수 작가는 이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등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만화책을 여럿 펴내며 재치 넘치는 그림체로 유명했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빼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든 수감자카드에 기록된 이들 가운데 100인을 말끔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이 책 《대한독립,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에서는 무대가 끝나고 각자의 배역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간 스무 권에 이르는 책을 쓴 이윤옥 작가가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를 펴냈다. 이윤옥 작가는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의 높고 낮음과는 무관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독립운동사 책’에는 같은 사건이라도 여성의 활약상이나 이름 등이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책의 서술 또한 남성 위주, 학식이 있는 사람,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독립운동사 속으로 불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크게 제1장 시대별로 본 여성독립운동, 제2장 신분별로 본 여성독립운동, 제3장 나라 밖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별에서는 여성의 근대교육이 태동하던 1910년 이전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5년까지를 다루었으며 특히 1910년대에는 3·1만세운동의 중심이었던 여학생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 책에서 만세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여학생 59명의 명단을 처음 공개하고 있으며, 배화여학교 만세운동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최문정, 창해)》은 그런 약육강식의 서사구조에 반기를 든다. 과학교사였던 저자는 불합리한 인사 조치에 우울증을 얻어 휴직의 시간을 가졌다. 약자의 설움을 느끼던 그 시절, 평소 관심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시름을 달랬다.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모습은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렸던’ 자신의 모습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걷는 독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걷는 독서라니?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책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걸으면서 묵상하고, 주위 자연과 교감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걷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박 시인은 어린 날 마을 언덕길이나 바닷가 방죽에서 풀 뜯는 소의 고삐를 쥐고 책을 읽었고, 학교가 끝나면 진달래꽃, 조팝꽃, 산수국꽃 핀 산길을 걸으며 책을 읽었답니다. 그러다보면 책 속의 활자와 길의 풍경들 사이로 어떤 전언(傳言)이 들려오곤 했답니다. 감옥 독방에 있을 때에도 박 시인은 ‘걷는 독서’를 계속합니다. 비록 세상 맨 밑바닥 끝자리에 놓인 두 걸음 반짜리 길의 반복이었으나, ‘걷는 독서’를 하는 동안은 박시인의 정신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박시인은 감탄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철저히 고립되고 감시받는 감옥 독방의 그 짧고도 기나긴 길에서 아, 나는 얼마나 많은 인물과 사상을 마주하고 얼마나 깊은 시간과 차원의 신비를 여행했던가!” 자유의 몸이 된 뒤, 박 시인의 걷는 독서는 국경 너머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도 계속 되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안동에 가면, 누가 봐도 이상한 집 한 채가 있다. 분명 양반가의 기품이 서린 유서 깊은 고택이건만, 앞마당에 웬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살았던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臨淸閣) 얘기다.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주인으로 둔 탓에 아흔아홉 칸 종택이었던 임청각도 갖은 수모를 겪었다. 일제에 순종하지 않는 불량한 조선인, 곧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집으로 낙인찍혀 절반가량이 헐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철길이 놓였다. 일제는 부러 먼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임청각 앞마당에 철길을 내어 독립운동의 도도한 기상을 꺾으려 했다. 그러나 그 기상이 쉬 꺾일 것이던가. 정종영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은 바로 임청각의 주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에 관한 책이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으나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이었던 이상룡 선생, 그가 경술국치 이후 어떤 삶을 택했는지 따라가다 보면 상류층의 책임을 실천한 또 하나의 훌륭한 사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본디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이자 고성 이씨 종파를 이끄는 대지주였다. 1519년 임청각을 지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영석 이석영(穎石 李石營). 그 이름을 세간에 묻거든 십중팔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할 것이다. 그만큼 이석영 선생은 역사에 기록 몇 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스러져갔다. 한때는 조선을 주름잡는 권문세족의 후계자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재산은 조선 팔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엄청났고 벼슬은 고종을 지척에서 보좌할 만큼 높았으며, 집안 또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삼한갑족이라 불리는 명문가였다. 그러나 망국은 오고야 말았다. 나라의 녹을 받던 이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협력할 것인가,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묵인만 하면, 그때까지 누리던 것을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이석영과 그의 형제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다시 없을 선택을 한다. 누대에 걸쳐 쌓은 재산과 지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가 전체가 만주로 떠난 것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 올해 6월 남산예장공원에 개관한 ‘이회영기념관’의 주인공인 우당 이회영 선생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형이 바로 이석영 선생이다. 그러나 이석영 선생의 존재는 아는 이도 적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항공대 항공운항학과 장조원 교수가 이번에 《하늘의 과학》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하늘에 도전하다》, 《비행의 시대》에 이어 3번째 책을 냈군요. 이번 책 제목에는 ‘과학’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비행기는 온통 과학, 그중에서도 수학과 물리학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장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첨단 과학을 대표하는 항공우주 과학에 수학과 물리학을 접목해 설명하고 싶었고, 학생을 비롯한 독자들이 이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랬답니다. 그래서 장 교수는 시작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항상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물리 법칙들을 파헤치기 위해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든 것을 마스터할 수 있도록 했다. 《하늘의 과학》에서는 중ㆍ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된 수학과 물리학이 항공 우주 분야에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다뤘다. 어떤 함수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비교적 최근 학문적 진전을 보인 확률 이론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분과 적분을 비롯해 벡터와 행렬, 로그함수, 삼각 함수 등이 비행기에 응용된 사례를 다룬다. 특히 수학과 물리학이 항공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전하! 종묘사직을 생각하시어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 사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다. 지금도 대통령의 건강은 일급비밀에 해당하지만, 왕조시대 한 나라의 지존이었던 임금의 옥체(玉體)를 살피는 일은 나라의 존망과 직결되는 국가지대사였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어의(御醫)들에게 진료를 받고 뭇 백성은 구경도 하기 힘든 진귀한 탕약을 매일같이 복용해도, 그 옥체를 보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즉위하기까지 받은 스트레스로 임금이 될 무렵에는 이미 몸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임금이 되고 나서도 각종 압박과 과로에 시달리며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임금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만, 임금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임금의 고뇌와 근심은 줄곧 병이 되어 심신을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내려진 진료와 처방은 그 자체로 진귀한 사료이자 사관들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임금들의 내밀한 감정까지 보여주는 솔직한 기록이다. 현직 한의사 이상곤이 쓴 이 책, 《왕의 한의학(사이언스북스)》은 《신동아》 등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으로, 역사학자가 아닌 이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