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최영장군 묘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자락에 있는 최영장군의 묘. 장군의 묘는 그의 아버지 최원직묘의 아래에 그의 부인과 함께 모셔져있다. 묘에 대한 설명은 너무도 빈약하여 위에 있는 묘가 누구의 묘인지 아래있는 묘는 또 누구인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알 수 없게 되어서 너무도 안타깝다.
[얼레빗=가람 기자] 남원은 남방의 근원이 되는 천년의 고도다. 특히 남원은 기록물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춘향전, 흥부전, 최척전(홍도전), 변강쇠전 그리고 만복사저포기 등의 고전은 물론, 전북권의 문집 중 남원 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남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록문화의 보고라 하겠다. 그 중 대표적인 남원의 기록물은 용성지이다. 용성지는 다른 기록물과는 다르게 남원에 관한 종합보고서이다. 개인의 문집은 개인의 경험과 행적만 기록되었지만 용성지는 그것을 모두취합해서 균형있게 편집했다는 뜻이다. 서남대 이현식교수의 남원문화대학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용성지』 편찬과 체제는 조선 조정에서 만든 『여지승람(輿地勝覽)』, 지방에서 만든 평양의 『평양지』나 순천의 『승평지』 등의 영향을 받았다. 『여지승람』은 성종 때(1481년, 성종 12) 처음 만들어진 후에 중종 때(1530년, 중종 25) 증보되고 숙종 때 다시 증보되었는데, 숙종 때의 자료가 『용성지』 편찬의 기본 자료가 되었다. ▲ ≪용성지≫ 표지와 속지 『용성지』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차례 편찬되고 여러 차례 보완되었다. 1699년(숙종 25)에 남원부사 이구징(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