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19년 오늘(4월 11일)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나라안팎 애국지사들 사이에선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는 수립 과정과 주체가 명확히 알려진 대표적인 임시정부들이었지요. 그 가운데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하게 우리 겨레의 임시정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날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지요. 얼마 전까지 한국 정부는 4월 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해왔지만, 4월 13일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공문을 뿌린 날이고, 실제 결성일은 4월 11일이기 때문에 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입니다. 삼짇날에는 별명도 많은데 강남 갔던 제비오는날, 삼질(삼짇날의준말), 삼샛날, 여자(女子)의날, 삼중일(三重日), 삼진일(三辰日), 상사일(上巳日), 상제(上除), 원사일(元巳日), 중삼일(重三日), 답청절(踏靑節), 계음일(禊飮日) 따위가 그것이지요. 고려시대에는 9대 속절(俗節)의 하나였던 삼짇날은 양의 수가 겹치는 날로 파릇파릇한 풀이 돋고 꽃들이 피어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삼짇날에는 화전(花煎), 화면(花麵), 수면(水麵), 산떡(餠, 꼽장떡), 고리떡(環餠) 같은 명절음식을 해서 먹습니다. 화전(花煎)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가면서 둥글게 지져 먹는 것이고, 화면(花麵)은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혀서 가늘게 썰어 오미자(五味子) 물에 넣고, 또 꿀을 타고 잣을 넣어 먹는 것입니다. 더러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녹두가루와 반죽하여 만들기도 하며, 붉은색으로 물을 들이고 꿀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수면(水麵)이라고 하여 제사상에도 올립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강릉 풍속에 삼짇날 무렵 70살 넘는 노인들을 명승지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이나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보게 됩니다. 그때 취타대의 연주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취타대의 악기 가운데는 ‘운라(雲鑼)’라는 것도 있습니다. ‘구운라(九雲鑼)’ 또는 ‘운오(雲璈)’라고도 하며, 둥근 접시 모양의 작은 징[小鑼] 10개를 나무틀에 달아매고 작은 나무망치로 치는 악기입니다. 행악(行樂, 행진할 때 연주하는 풍류) 때에는 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치며, 고정된 자리에서 연주할 때는 대받침(방대)에 이를 꽂아놓고 치게 되어 있습니다. 징의 지름은 10개가 모두 같으나 그 두꺼움과 얇음으로 높낮이가 달라서, 얇으면 낮은음이 나고 두꺼워질수록 높은음이 나는 것은 편종ㆍ편경ㆍ방향의 경우와 같지요. 악기의 전래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사》 악지나 《악학궤범(樂學軌範)〉 등의 조선 전기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조선 후기 순조 때의 《진연의궤(進宴儀軌)》에야 나옵니다. 또 조선 후기 풍속화인 평안감사가 임지에 도착하는 것을 그린 병풍에서 취타 편성에 운라가 보여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듯하지요. 주로 취타와 당악 계통의 음악에 사용되며, 맑고 영롱한 음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온봄날’ 곧 ‘춘분(春分)’으로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추분점(春分點)에 왔을 때입니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고 봅니다. 음양이 서로 반이란 더함도 덜 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지요. 이렇게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세계를 함께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춘분 무렵엔 논밭에 뿌릴 씨앗을 골라 씨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에서는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하지요.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으며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가 고프다.’ 하였습니다. 또 농사의 시작인 논이나 밭을 첫 번째 가는 애벌갈이 곧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지요. 음력 2월 중 춘분 무렵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평화의 제단에 숭고한 희생으로서 바친 3천만의 망령에 의하여 가장 웅변으로 또 가장 통철히 오인(吾人)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실로 민족자결주의란 오직 한마디다. 일본은 입을 모아 조선을 혹은 동족(同族)이라 말하고 동조(同祖)라 역설한다. (가운데 줄임) 우리 한국은 4천 3백 년이란 존엄한 역사가 있는데 일본은 한국에 뒤지기가 실로 3천여 년이다. 이를 봐도 조선민족은 야마토(大和)민족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을 췌언(贅言, 장황하게 말하다)할 필요도 없는데 합병 이래 이미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은 조선에 임(臨)함에 얼마나 참학(慘虐)과 무도(無道)를 극(極)하였던가.(뒷줄임)” -재 오사카 한국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 이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이 쓴 <독립선언서> 가운데 일부입니다. 염상섭은 1919년 3월 19일 저녁 7시 무렵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독립선언을 거행할 목적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8시쯤 집회 장소에 모인 참가자 22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감옥생활을 해야 했지요. <표본실의 청개구리>, <삼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에는 책을 놓고 읽거나 붓글씨를 쓰던 낮은 책상 서안(書案), 사방이 트여 있고 여러 단으로 된 사방탁자(四方卓子), 여러 권이 한 질로 된 책들을 정리, 보관하는 궤인 책궤(冊櫃), 안방의 보료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ㆍ편지ㆍ서류 같은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인 문갑(文匣) 같은 소박한 가구들이 꼭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방에는 그것 말고도 선비들이 아끼던 ‘고비’ 곧 ‘편지꽂이’도 있었지요. 편지꽂이는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간단한 종이말이 같은 것을 꽂아두는 실내용 세간을 말합니다. 고비는 가벼운 판자나 대나무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위아래를 길게 내리 걸도록 만들었지요. 또 두꺼운 종이로 주머니나 상자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종이띠를 멜빵 모양이나 X자형으로 벽에 붙여서 쓴 소박한 형태도 있었습니다. 등판과 앞판 사이를 6∼9㎝쯤 떼어 2∼3단 가로질러 놓음으로써 편지를 넣어두기에 알맞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 편지꽂이를 ‘考備’, 또는 ‘高飛’처럼 한자로 쓰기도 하지만 이는 소리를 빌려 쓴 취음일 따름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영(李晩永)이 1798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자장법사가 중국으로 유학해 ‘대화지’라는 연못을 지나는데 갑자기 신인(神人)이 나와서 신라가 처한 어려움을 물었고, 이에 자장이 ‘신라는 북으로 말갈에 잇닿았고, 남으로는 왜국에 이어졌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국경을 침해 큰 우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인은 신라가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어도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 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것이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 했다. 자장은 이에 ‘내가 귀국한들 무슨 유익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신인은 황룡사의 호법룡(護法龍)이 바로 자신의 큰아들이므로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주변 아홉 나라가 복종하며, 왕실이 영원히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는 《삼국유사》에 있는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우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선진 기술을 가지고 있던 백제의 탑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해 선덕여왕 12년(643)에 착수하여 645년에 완성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1층부터 차례로 일본, 중국, 오월(吳越,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 탁라(托羅, 삼국시대 제주에 있던 나라), 응유(鷹遊, 백제를 낮추어 부르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四友相須獨號君 네 친구가 서로 어울리되 너만을 임금이라 함은 中書總記古今文 고금의 문장을 너만으로 쓰기 때문이리라. 銳精隨世昇沈別 출세하고 낙오함도 네 힘에 달렸고 尖舌由人巧拙分 영리하고 우둔함도 네 혀끝에 달렸도다. 김삿갓이 지은 “붓”이란 제목의 시입니다. 예전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였던 붓은 보통 짐승 털로 만든 모필(毛筆)이었지만 그 밖에도 대나무로 만든 죽필(竹筆), 볏짚으로 만든 고필(藁筆), 닭 목의 털로 만드는 닭털붓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쓰였던 것은 양털로 만든 양호필(羊毫筆)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족제비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 황서붓-黃鼠筆)이 유명했으며, 중국 문헌에서는 이 붓을 낭미필(狼尾筆)ㆍ서랑모필(鼠狼毛筆) 또는 성성모필(猩猩毛筆)이라 했는데, 일찍부터 중국에 수출되었지요. 그밖에 붓을 만드는 털로는 노루 앞가슴 털로 만들어 붓 가운데 가장 부드럽다는 장액필(獐腋筆)을 비롯하여 여우ㆍ토끼ㆍ이리ㆍ사슴ㆍ호랑이ㆍ산돼지ㆍ살쾡이ㆍ담비ㆍ개ㆍ말은 물론 쥐수염까지도 붓으로 쓰였습니다. 20여 년 전에만 해도 누구나 썼던 만년필ㆍ볼펜마저도 이젠 별로 쓰지 않고, 모든 걸 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겨레신문 2월 15일 치 신문 1면에는 대문짝만하게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제목을 “펜데믹 이후 한국사회 ‘리셋의 시간’”이라고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좀 길더라도 ”지구촌 돌림병 대유행 이후 한국사회 ‘재시동의 시간”이라고 하면 안 될까요? 책이건 신문이건 글을 쓰는 바탕은 쉽게 쓰기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써서는 안 되겠지요.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굳이 ’펜데믹‘, ’리셋‘이라는 말을 써야 유식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잘난 체와 다름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문화신문>에 들어오는 보도자료들을 보면 기자나 편집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곳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해당 보도자료를 쓴 곳에 전화를 걸어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을 생각해 봤느냐고 묻습니다. “’보도자료‘란 더 많은 이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일 텐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쓴다면 짜증 내는 독자가 더 많지 않겠느냐?”라고 물으면 “죄송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나는 될 수 있으면 우리말로 바꿔쓰려고 애를 씁니다. 보도자료를 쓴 담당자에게 묻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한해 가운데 보름달이 가장 크고 밝다는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은 예부터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비손하며 점쳐보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운수가 좋다."라고 하여 이날은 남녀노소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저마다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날 풍속에 가운데는 “용알뜨기”도 있습니다. 용알뜨기란 부인들이 닭이 우는 것을 기다렸다가 남들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긷는데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이 물을 떠오는 것은 집안에 복을 가지고 오는 것이므로 복(福)물, 수복수(壽福水), 복물뜨기, 복물퍼오기, 용물뜨기, 새알뜨기라고도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앞 다투어 우물에서 정화수를 길어온다. 이것을 용알뜨기라 한다. 맨 먼저 물을 긷는 사람이 그해의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월대보름 먹거리로는 오곡밥과 나물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