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한국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때에 영화 <봉오동전투>가 개봉되었다. 그래서인지 개봉 2일째인 어제 누적 관객 수 352,594명(다음영화제공)에 이른다. 일본의 경제침략이 일어날 줄을 아무도 몰랐을 때부터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침략과 <봉오동전투>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 그러나 99년 전인 1920년 6월 7일,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봉오동전투’는 새로운 ‘경제침략’을 획책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 우리는 이렇게 절대 열세 속에서도 승리하는 겨레임을 오치고 있는 것이다. 봉오동전투는 병력의 수나 무기 등에서 절대 열세였던 독립군이 봉오동이라는 지형을 이용하여 전력과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대승한 전투다. 영화의 전개 역시 정규부대인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하는 작전의 흐름으로 일관된다. 주인공 황해철(유해진)과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그리고 황해철의 오른팔인 마병구(조우진) 3인방이 주축으로 열세한 독립군이지만 지략으로써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하는 전술이 흥미진진 전개된다. 적군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전투는 영화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재)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기억연대)는 뉴스타파와 함께 영화<김복동>을 만들어, 8월 8일 온 나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김복동>은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한 27년간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90살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싸워온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를 담아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는 역사 날조라고 주장하며 여전히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 그리고 피해자는 배제한 채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선언한 박근혜 정부에 맞선 김복동 할머니의 위대한 행보는 우리 모두의 결의를 다지게 만들고 있다. 정의기억연대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라고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유지를 따라,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에 동참하실 수 있도록 영화배급사 앳나인필름을 통해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일본정부가 2일 각의(閣議)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수원시가 피해 기업을 위한 특별지원기금 30억 원을 긴급 편성했다. 수원시는 시 기업지원과, 수원상공회의소, 수원산업단지관리공단에 오는 5일부터 피해접수 창구를 마련하고, 피해기업 지원에 나선다. 수원시는 피해기업의 운영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기금을 편성했다. 특별지원기금은 불화수소(에칭가스), 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일본정부가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반도체 관련 제조업체에 지원한다. 융자 한도는 한 기업당 최대 5억 원이다. 융자 기간은 5년으로, 1~2년 거치, 3~4년 균등상환 방식이다. 수원시는 피해기업 선정 기준과 구체적 지원방안 등을 조율해 피해기업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달 4일 일본정부가 반도체 관련 3대 핵심부품의 수출규제 결정을 내림에 따라, 수원시는 지난달 시 소재 관련 기업 13개소를 대상으로 피해조사를 시행했다. 현재까지 피해 기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시 관계자는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장기화에 따라 기업의 피해가 확대되면 중앙정부 대책과는 별도로 추가 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본군성노예 피해를 고발하고 인권과 평화활동가로 투사 같은 삶을 살다 간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활동하는 '김복동의 희망'은 특별히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당부 중 하나였던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에 복구지원금을 전달하고, 일본정부의 차별과 탄압 속에서 조선학교 아이들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김복동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중강좌인 '김복동희망학교'를 통해 분단과 재일조선인에 대한 역사 배움의 기회를 마련하여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김복동의 희망이 식민지배와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재일조선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활동에 힘을 보태 함께 하겠다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강종헌 선생이 2천 만 원의 후원금을 전해왔다. 강종헌 선생은 재일조선인 2세로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5년 간첩으로 몰려 13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를 치러야 했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1975년 11월 서울대ㆍ고려대ㆍ부산대 등에 재학 중이던 16명의 학생을 간첩혐의로 조작해 기소한 사건으로, 당시 영장 없이 연행, 구금되어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어제(21) 고양시 풍동의 한 음식점에서 류의석 선생이 일본어로 번역한 《백범일지》 일본어판 출판기념 모임이 있었다. 특별 손님으로 참석한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시인과 일본 고려박물관 회원인 아오야기 준이치(靑柳純一) 씨를 비롯하여 우리문화신문 발행인 김영조 대표, 고양신문 발행인 이영아 대표, 김경희 경기도의회 위원, 조현숙 고양시의회 위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과 가족 등 30여명이 참석하여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일본어판 《백범일지》는 류의석 선생이 원고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지난 3월에 하우사 출판사를 통해 책을 펴내게 되었다. 류의석 선생이 일본어로 번역한 《백범일지》는 일본문학을 전공한 그의 따님인 류리수 박사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이번에 일본어 감수를 맡은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시인의 방한을 계기로 조촐한 기념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시인은 “처음에 이 책의 감수를 흔쾌히 받아들였으나 문장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특히 류의석 선생의 일본어 표기가 현대 일본어 표기와 약간 다른 점도 있는데다가 내 자신이 백범일지의 무대인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끊어진 압록강 다리, 6.25때 폭파된 한강인도교와 철교에 관해선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또 다른 끊어진 다리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을 잊는 압록강에 놓인 다리들이다. 몇몇 다리는 지금도 끊긴 체 남아 있고 어떤 다리는 왕래는 하되 북한 경제제제 조치로 시간제한이나 검열을 받으며 가끔 차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다리는 완공은 했으나 개통하지 않은 체로 남아있었다. 한ㆍ중합작으로 건설된 압록강 신대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까닭은 명확치 않으나 개통 되지 않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어 한강대교를 지나 북한땅을 거쳐 압록강 신대교를 넘어 대륙을 달릴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원하며 이번 여행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유적지를 보고 난 뒤 경관 좋은 압록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압록강 상류의 어느 지점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에 근접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끊어진 다리 하나를 보았다. 다리의 끊어진 부분 사이로 유람선이 통과하면서 운행했다.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고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난 7월 15일 미국, 호주, 독일, 일본을 비롯한 세계 10개 나라 39개 단체가 대한민국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환영한다는 세계 양심인 성명을 발표하였다.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실천 추진위원회, 사회정의교육재단, 나비토론토 등 연명에 참여한 전 세계 39개 단체들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대한민국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조치에 대해 적극 환영하며,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배상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성명에서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강제징용과 일본군 성노예 등 자신들이 저지른 파렴치한 반인륜 범죄에 대해 반성과 사과는 커녕 오히려 경제 보복 조치를 강행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전 세계 양심인들과 연대하여 싸워 나갈 것을 밝힌다.”고 선언하였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윤미향, 이하 정의연)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이번 세계 양심인들의 성명을 적극 환영하며 이들과 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단둥시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랴오닝성 통화현 환인시를 통과했다. 입담이 보통이 아닌 가이드의 얘기를 귀로 들으며 눈은 줄곧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짙은 녹색의 우리나라 6~7월 산악풍경과 비슷했다. 다만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를 자주 볼 수 있고 들판엔 논은 보기 힘들고 옥수수밭이 많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고구려의 땅이었고 발해의 땅이었으며 독립운동가의 애환이 서린 땅이다. 갑자기 "창밖을 보세요."라는 가이드의 목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저 멀리 나타난 신비롭게 생긴 직사각형 탁자 모양의 '오녀산성'!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 부여를 떠나와 고구려를 건국하며 첫 도읍지로 세운 졸본성! 아름다웠다. 천혜의 자연요새였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일정상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였던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국내성'에선 시간 여유를 갖고 걸었다. 국내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쪽으론 압록강이 흐르는 도읍지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주몽의 첫부인 예씨부인이 낳은 유리왕자가 단검 반쪽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와 2대 임금이 되고 도읍지를 국내성으로 옮긴 때가 기원후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북백두산 천문봉에 올라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화산 대폭발로 산꼭대기가 날아가고 움푹 패여 생겨난 거대한 칼데라호! 백두산 천지! 사방 기암괴석 절벽으로 둘러쳐진 듯하다. 저 건너편이 북한 쪽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호수로 내려오는 긴 계단이 보이고 삭도(로프웨이)도 볼 수 있다. 북한쪽 능선에도 관광객들이 온 듯 북적이는 듯하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삭도를 타고 내려와서 한라산물과 백두산천지물 합수식을 했던 곳이 바로 저기다. 통일을 염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짙푸른 천지의 물에 흰구름이 그대로 비춰보였다. 정상에 서서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북백두산 기슭 관광안내소에서 관광버스를 내려 바라본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답게 아름답고 또한 신비로웠다. 관광객들도 넘쳐났다. 입장과 안전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전용버스를 타고 오르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하산 길에 '장백폭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을 넘기고 땀에 젖어가며 한 시간 정도 오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창원시(시장 허성무)는 대마도의 날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박중철)가 관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마도는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라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2019 대마도 역사특강을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창원시 대마도의 날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5일 양곡중학교를 시작으로 8일 반림중학교에 이르기까지 4개 학교 모두 1천600여명의 학생과 만나 대마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는 최근 일본 아베정권이 독도 영유권을 지속해서 주장하는 변절된 역사의식에 노출된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대마도가 갖는 남다른 의미뿐만 아니라 국제화 시대 속에 지켜나가야 할 올바른 역사관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히 대마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일제 패망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대마도 영유권 인정을 공식적으로 제기했고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 전략에 대해 생생하게 풀어냈다. 박중철 위원장은 "단순히 '대마도가 우리 땅이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불과 70여 년 전에 우리 정부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공감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