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명산(名山)은 대부분 명찰(名刹)을 품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 절은 등성이에 짓지 아니하고 산의 품안에 푹 안겨 계곡 내부에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물을 얻기도 쉬울뿐더러 산불의 재앙에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되기 때문이지요. 산사에 가면 처마 끝에 풍경이 매달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청아한 종소리를 내는 풍경은 공이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지요. 어찌 보면 하늘이 파란색이니 하늘을 배경 삼아 물고기가 노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절에는 물고기 모양이 많습니다. 풍경도 그러하려니와 절에서 사물(四物)이라고 해서 소리로 중생을 깨우는 물건이 있는데 법고, 운판, 범종, 목어가 그러합니다. 이 목어(木魚)가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의 악기이지요.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파내어 울림통을 만든 것이 목어입니다. 목어는 환생한 물고기로 자신의 몸을 두드려 속죄함으로써 다른 생명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수행적 의미가 있습니다. 산사(山寺)를 지나다 보면 은은한 독경소리와 청아한 목탁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목탁(木鐸)의 탁자는 방울을 의미하는 글자이지만 원래는 목어에서 변형되어 나온 것으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다른 의견이나 정서로 인하여 서로 충돌하여 대립할 때 갈등이란 표현을 씁니다. 갈등이라는 낱말은 덩굴식물의 칡(葛)과 등나무(藤)의 한자가 조합된 글자이지요. 칡은 주변에 아주 흔한 식물입니다. 자른 단면에서 액이 나오는데 갈색으로 한 번 물들면 빠지지 않습니다. 그 갈 자가 칡갈(葛) 자인 것이지요. 칡의 가루를 갈분(葛粉), 칡뿌리를 갈근(葛根)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 한자에 연유합니다. 칡은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성장하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자랍니다. 만약 이 둘이 만나 서로 얽히면 풀기 힘든 모양이 되고 나무의 성질이 질겨 자르기도 힘들고 뿌리도 잘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갈등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지요. 이방원이 하여가에서 만수산 드렁칡을 언급했는데 드렁칡이란 ‘언덕진 곳에 얽혀있는 칡덩굴’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대부분의 덩굴식물은 지탱식물에 의지하여 자라게 되는데 자연의 공생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단 터를 잡고 나면 허락 없이 이웃 나무를 칭칭 감고 자라는데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순식간에 꼭대기까지 올라가지요. 광합성을 위해 공간을 몽땅 점령해 버린 데다가 잎도 넓어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유년시절은 시골에 묻혀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에 파묻힌 토담집에 얼기설기 엮은 초가지붕 아래서 삶을 키웠고 가끔 장닭이 지붕위에 올라 홰를 치기도 했으며 가을엔 함지박만한 박이 지붕 위 여기저기 커서 혹시 집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고 한겨울 초가지붕을 덮은 눈이 만들어 놓은 라인이 너무 부드러워 한없이 좋았습니다. 겨울 아침이면 유난히 새 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아마도 눈 내리고 난 후 먹을 것이 없는 조류가 인가를 찾아 내려왔기 때문이겠지만 그때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앞마당에 원래부터 자라던 버드나무에 까치가 않아 울던 아침이면 어머니는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하곤 하셨는데.. 그 때면 울타리 너머 멀리까지 보이는 꼬부랑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귀한 인연이라도 올까 싶어서 말이지요. 인연이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린 우주의 주체자이니 모든 인연의 해석은 자기 입장에서 보면 '인'이고 외부의 존재들은 '연'이 됩니다. 그러니 모두가 '인'이면서 '연'인 것이니 인연이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인연이 소중한 이유이지요.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집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의 4대 미인하면 양귀비, 서시, 왕소군, 초선 또는 우희를 꼽습니다. 사실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며느리였지요. 양귀비의 미모에 빠진 당현종이 며느리를 뺏어 후궁으로 삼은 이상한 관계랍니다. 실제로 양귀비의 체형은 좀 풍만한 편이었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춤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양귀비의 원래 이름은 양옥환으로 당현종에 붙어 권력이란 마약에 심취합니다. 그녀는 안사의 난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는데 결국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산시성에서 목매달아 자살하고 맙니다. 그녀의 나이 37살이었지요. 그 양귀비의 이름을 딴 식물이 있습니다. 앵속, 약담배, 아편꽃이라고도 불리는 식물이지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쑥갓밭에 양귀비를 몇 뿌리 심으셨습니다. 어림잡아 보면 쑥갓인지 양귀비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거든요. 토사곽란이 나거나 소가 설사를 할 때 양귀비를 삶아 먹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씻은 듯이 나았으니 그 약효는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상비약으로 양귀비 몇 뿌리쯤은 심는 것이 그때의 사회상이었고 정부에서도 세 뿌리까지는 허락해준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양귀비의 덜 익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는 춘천댐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땀방울에 의지하여 성장을 했지요. 밭 갈고, 씨 뿌리고, 김매고, 꼴 베고, 나뭇짐지고, 약치고, 물대고... 농사일을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리 기계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체적 노동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땅에 붙어사는 식물들인지라 앉은걸음으로 일을 하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일이 많으니 관절이나 무릎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하지요. 농사꾼에겐 요일의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휴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비 오는 날이 휴일인 셈이지요. 그리고 일은 때에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일을 미루면 수확의 풍성함을 담보할 수 없지요. 하루하루가 잡풀과의 전쟁인데….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농작물을 심어 놓고 나면 일기에 민감해집니다.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걱정이고 많이 오면 많이 오는 대로 걱정입니다.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으니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은 덤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많이 있는데도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웰빙이나 웰다잉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건강한 먹거리를 스스로 심어 먹는 행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잔잔히 흐르는 백마강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을 만나게 됩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이지요. 의자왕은 백제 31대 임금입니다. 의자(義慈)의 뜻은 올바르고 자애롭다는 의미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의자왕은 무절제하고 방탕하며 무능한 왕으로 삼천궁녀를 거느렸다고 소문이 났을까요? 실제 백제는 궁녀 3,,000명을 거느릴만한 국력이 아니었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조선시대에도 궁녀는 500명을 넘지 못했으니까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이고 힘이니 처벌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옳겠지요. 만약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역사책에 단순히 '이성계의 난'이라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종묘사직과 더불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임금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신라의 경순왕은 나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바치고 그는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이지요. 공양왕이라는 뜻도 공손하게 왕위를 양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루터기는 나무가 잘려나가고 땅에 박힌 뿌리만 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루터기에는 나이테(연륜)가 드러나 있어 그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한때의 성장과 영화로움을 뒤로한 흔적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은 이러합니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열매와 나뭇가지 몸통까지 다 내어주고 그루터기가 된 사과나무는 이제 늙어 아무런 욕망도 남지 않은 소년이 찾아왔을 때 평평해진 몸통을 펴며 여기 앉아 편히 쉬라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노라고...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의 유연성을 자랑합니다. 동물에 비하여 이동의 자유가 없는 식물을 표현할 때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동원하지만 실제로 유전자지도를 그리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은 작은 상처에도 목숨을 잃기 쉬운 반면에 식물은 몸통이 통째로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싹을 틔워 생을 이어가는 삶의 유연성이 있는 것도 장점이지요. 산을 오르다보면 톱으로 쓱쓱 베어간 흔적의 그루터기를 만납니다. 그루터기만 보고 살아있는 나무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값비싼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예술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상품성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은 모나리자 앞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온 그림인데 진품을 접한다는 희열도 잠깐 그림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사람에 떠밀려 제대로 된 감상은커녕 짧은 시간의 조우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그림의 우수성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매장에서 판매되는 고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정말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가의 명성이나 희소성 때문에 상품성만 높은 것은 아닌지 범인의 눈으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평생 저술 활동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 못한 대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진정한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작품 대부분을 백 권도 팔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고흐는 살아서 예술 세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의 삶의 초점은 자본이 아니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끔 계곡을 따라 하산할 때가 있습니다. 산이 얼마나 많은 물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산 때 반드시 조금씩 수량이 늘어나는 시냇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돌돌돌 흐르는 물가에 서면 풋풋한 생명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중국 서부 지역엔 황량하고 거친 고비 사막이 있습니다. 그 고비 사막 한 가운데를 한줄기 강이 짙은 황토 빛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강 양쪽에 초록의 푸름이 두 줄기 선으로 길게 이어지지요. 강을 따라 나무가 자라고, 강을 따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강을 따라 도시와 마을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에 강우량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여름엔 강물이 흐르다가 가을 이후 마르는 것을 건천이라고 합니다. 이 건천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엔 나무나 풀들이 우거질 수 없지요. 강은 홀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온갖 생명을 보듬어 키우고 오염을 정화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지으면서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도 장강은 유유히 흐른다." 장강이란 양쯔강을 의미하는데요. 강처럼 역사도 유유히 흐른다는 말씀을 하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청와대에 들어가면 잘 단장된 앞마당과 미동도 하지 않는 헌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회의실 명칭이 위민일실(爲民一室), 위민2실.... 처럼 백성을 위한다는 뜻의 당호가 붙여있지요. 맹자는 ‘與民(여민)’이란 표현을 많이 하고 ‘爲民(위민)’이란 표현을 자제했습니다. 여민(與民)이란 백성과 더불어 한다는 뜻이고 위민(爲民)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차이가 있습니다. 여민은 백성과 더불어 하는 것이니 임금과 백성 사이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민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니 임금이 백성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기 소유물에 대하여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중국 고전을 보면 맹자처럼 백성을 위하는 통치철학을 내세운 철학자는 없습니다. 물론 공자가 간간히 백성을 논하긴 했지만 그것은 피 통치자로서의 백성일 뿐이지요. 법가 사상이나 한비자를 보면 백성은 통제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야기합니다.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다.” 또한 임금이 잘못하는 경우에는 그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