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메밀꽃 필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짧은 수필을 남깁니다. 그 수필의 한 대목을 싣습니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게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띄운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입니다. 가을엔 화려한 단풍이 사위어가면 마른 낙엽이 남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햇빛 공작소의 임무를 뒤로하고 정든 가지를 떠나 쓸쓸히 포도 위를 굴러야 하는 것은 낙엽의 운명입니다. 시인 한용운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라는 표현을 남깁니다. 타버린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지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반응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광명을 밝힐 기름이 된다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의자를 꺼내다가 새끼손가락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던 손가락인데 조그만 상처에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고 살아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도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인의 아버지께서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을 때 바다를 보며 한숨 섞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태풍과 같은 큰 바람이 한 번 불어야 할 텐데..." 고기잡이를 전업으로 하는 어부가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바다를 한 번 뒤집어 놓아야 바다 속에 용존 산소량이 늘고 결국 플랑크톤과 같은 먹이가 풍부해져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우리네 삶에도 아픔의 고통과 태풍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아픔을 인내한 옹이가 더 단단하고 하늘은 태풍이 지나가야 한층 더 맑아집니다. 삶에 있어서 고난이란 유익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넘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일어서는 방법을 알 수 없고 죽을 만큼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간절함을 알 수 없습니다. 잔잔한 바다에서 위대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 사람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비교적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달여 먹으라고 권유하면서 "건칠 계관화 갈근 포공령을 취해서 달여 드세요." 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에 흔하다고 했는데... 어디서 무엇을 구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옷 나무, 맨드라미, 칡뿌리, 민들레... 이렇게 표현을 했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을...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고관절 외전근 열상과 미추부 봉와직염, 심계향진과 연하곤란 등 불안장애 동반"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글을 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엉덩이 관절을 벌리는 근육에 찢긴 상처가 있고 꼬리뼈 주변 연한 조직에 염증이 있으며, 불안증세로 가슴 두근거림이 있고 음식을 삼키는데 장애가 있다."는 뜻입니다. 연설을 할 때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빌게이츠는 전문적 식견을 드러내는 반면 스티브잡스는 쉬운 이해를 전제로 하지요. 만약 그들이 64GB USB를 설명한다면 빌게이츠는 첨단기술의 집약체로서 2의 30승에 64를 곱한 것만큼의 저장용량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진해의 군항제를 아시지요? 군항제(軍港祭)란 군사 항구의 축제를 의미합니다. 군항제하면 벚꽃 축제와 동일시하지만 사실은 1953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것이 계기입니다. 곧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향토문화예술을 진흥하는 의미로서의 축제를 여는 것이지요. 문제는 벚꽃에 가려 군항제의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벚꽃을 심는 것이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일본 국화가 사쿠라(벚꽃)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특히 임진왜란을 통해 구국의 아이콘인 이순신을 기리는 축제에 벚꽃은 왠지 크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군항제라고 하지 말고 진해벚꽃축제라고 이름하든지요. 요즘 가로수를 심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로 각 도시에서 경쟁적으로 가로수로 벚꽃을 심습니다. 벚꽃은 열악한 환경에 강하고 키가 비교적 큰 교목이며 봄에 꽃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나라꽃이고 계속 피고지기 때문에 비교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네 삶을 이루는 근간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옳은 말을 하면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옳을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될 때 그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도 그렇게 안 살면서 왜 나한테는 맨날 뭐라고 해?" 사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느낌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부모는 부모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산 아래서 화전을 일구시던 아버지는 화전정리령이 떨어지자 비탈에 유실수를 심습니다. 팔자에 없는 과수원을 하게 된 까닭이지요. 여름이 되면 과일을 수확하게 됩니다. 마당 가득 수북이 복숭아를 쌓아놓고 굵기에 따른 선별작업을 하지요. 그 때만해도 종이 박스가 없어 판자를 대어 만든 상자에 담는데 눈대중으로 크기를 선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포장은 별로 때깔이 좋지 않은 것을 아래다 깔고 보기 좋고 잘 익어 먹음직스런 것을 위에 올려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자담기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오늘만 거래하고 말 상대가 아닌데 얕은 꼼수를 쓰면 안 된다고 가급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힌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래에 잊혀질 것들도 있지요. 30년 전 탄광촌에 발령 받아 까만 탄가루에 적응되기까지 참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탄광이 자리 잡았던 골짜기의 이름은 지지리골 이었습니다. 이름도 그리 멋스런 편은 아니지요. 공기 중에 퍼지거나 날아가는 탄가루는 입자가 매우 곱습니다. 따라서 탄차가 수시로 드나들었던 비포장 길엔 탄의 매우 고운 입자가 늘 10Cm 정도 쌓여 있었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살짝만 밟아도 탄가루가 발등을 덮곤 했습니다. 멀리서 트럭의 엔진소리가 들리면 황급히 산위로 대피해야 합니다. 탄차가 지나가고 나서의 그 먼지구데기 속을 감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게 캐어낸 탄이 70년대 고도성장의 주춧돌이 되었고 서민들 겨울을 든든히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물론 연탄가스로 인해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 시절엔 그게 교통사고만큼 흔한 일이어서 크게 눈길을 끌지도 못했지요. 엊그제 학생들과 연탄봉사를 하였습니다. 도시의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가 길어지듯이 도로 옆 번듯한 건물 뒤로 돌아가면 거짓말처럼 초라한 집들이 나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이 금액이 무엇일까요? 1,837,000,000,000,000원 우리나라 예산이 400조원 되니까, 어림잡아도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4배가 넘는 돈입니다. 이 돈으로 라면을 사면 한 개당 600원 잡고 3,061,000,000,000개가 됩니다. 이것을 세끼를 다 먹는다고 했을 경우에 1,020,000,000,000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고 매일매일 먹는다고 했을 경우에 365로 나누면 2,794,520,54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곧 세계 인구의 1/3인 28억 명이 매일매일 라면을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것이지요. 이 금액이 무엇일까요? 2018년도 전 세계 국방예산입니다. 없는 나라는 1달러가 없어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신음하는데 있는 나라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라를 지켜야하는데 들어가는 필수 고정 비용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나 살고 남을 죽이자고 들어가는 돈의 규모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원이나 재화를 이용하여 생산이나 소비를 하였을 경우, 다른 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했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 7월에 종영한 ‘군주’라는 드라마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세자 이선(사도세자)의 속세의 스승이 될 우보는 편수회 우두머리 대목을 만납니다. 그는 계영배를 내 놓으며. 그의 작태가 지나침을 경계하지요. 과거 주인에게 배신당한 대목이 우보에게 와서 살아갈 방법을 물었을 때, 그는 ‘개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했습니다. 그런데 대목은 편수회 우두머리가 되면서 개가 아닌 승냥이가 되었고. 이제는 호랑이를 넘어. 심지어 왕의 자리마저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우보가 ‘계영배’를 내 놓으며. "가득 참을 경계하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대목은 권력의 맛에 취해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계영배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우명옥은 강원도 홍천 사람으로 사기를 만드는 도공이었습니다. 그는 광주 분원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설백자기는 왕실에 진상되었고 많은 상금을 받았습니다. 그 후 우명옥은 동료들의 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얼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햇빛을 보지 못하는 맹인도 햇빛의 따사로운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문제는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맹인이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설명을 하지요. 해는 쟁반처럼 둥그런 것이 촛불처럼 뜨겁다고.. 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맹인은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봅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태양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지요. 구반문촉은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을 빗댄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도 자신이 느낀 경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신만의 함정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주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턱없는 주장일 수도 있고 나와 다른 견해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라도 말이지요.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전후좌우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한쪽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장단과 찬반의 목소리를 다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가 걸러져 시야의 올바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중매체에 판단을 맡겨 무비판적으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이 덮인 산길을 걸으며그 추억어린 바스락거림이 너무 좋아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무서리 내리고 바람 불던 날 교정을 가득 덮은 노랑 은행잎의 숨 막힌 아름다움에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어 늦가을 한때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엔 이태리포플러의 마른 잎을 싸리비로 쓸어 운동장 한편에 모아 태우는 것은 가을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알싸하고 매캐한 낙엽 타는 냄새가 참 좋았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좀처럼 낙엽 태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환경, 공해, 산불, 미세먼지... 무엇 때문에 낙엽을 태우지 못하게 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추억을 빼앗기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보통사람들에겐 낙엽이 추억일 수 있고, 향수일 수 있으며 고독일 수 있고, 아련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미화원에겐 크나큰 고통의 근원이고, 줄어들지 않는 쓰레기며, 행복하지 않은 가을의 주범일 수도 있겠지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도 자연이고 잎이 물들고 떨어져 포도 위를 뒹구는 것도 자연입니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 속을 살다가는 것이 인간일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