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아래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박영희(1896.12~1930) 선생을 ’202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 학도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배출했으며,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으로 민족의 교관ㆍ군사 전략가다. 선생은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으로 1913년 휘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중 은사인 이세영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군사 지식을 배웠으며, 졸업과 동시에 교관으로 임명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0년에는 북로군정서의 사관연성소 학도단장과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면서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배출하는 한편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였다. 한편, 북로군정서는 사관연성소 출신으로 이루어진 만주 독립군 부대 가운데 가장 훈련이 잘된 정예부대로,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만주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지역에서 일제와 벌인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또한, 청산리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침입 작전을 완전히 차단해 만주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으며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추석, 송편, 팥떡, 콩떡, 강남콩....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님은 한가위를 앞두고 병실을 찾은 기자에게 이런 낱말들을 써주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도 어느새 2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병문안 갈 때마다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은 마음에 안쓰럽기만 하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면회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더욱이 요즘은 주말 면회도 안되는 상황이라 평일인 어제 (29일) 화요일 오후 4시 무렵 병원을 찾았다. 마침 물리치료를 마치고 병원 복도로 나오신 오희옥 지사님을 뵈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오희옥 지사님도 반가운 표시로 연신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껴본다. 연세(95세)가 있으신 만큼 늘 건강에 신경이 쓰였는데 막상 뵈니 더 나빠지시지 않는 듯하여 기뻤다. 아드님과 함께 오희옥 지사님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 뜰로 잠시 나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병원 뜰의 나무들은 막 가을옷을 갈아입으려는 듯 초록물을 벗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을 나무들을 가리키자 오희옥 지사님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시는지 물끄러미 나무들을 바라다보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병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ㆍ공헌하신 분들을 예우하고, 보훈문화 확산에 이바지한 개인과 단체에 시상하는 2020년도 ‘제21회 보훈문화상’ 후보자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보훈문화상 시상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했으며, 그동안 독립ㆍ호국ㆍ민주관련 유공자와 유엔참전용사 등을 예우하고 널리 알린 개인과 단체 모두 105인(팀)에게 수여했다. 특히, 올해부터 보훈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다양한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훈문화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지도 향상을 위해 평소 국가보훈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데 노력해온 매일경제와 공동으로 주최한다. 후보자 접수는 9월 21일(월)부터 10월 30일(금)까지이며, ‘나라사랑 배움터’ 누리집(http://edu.mpva.go.kr) 또는 우편으로 접수하고 수상자를 뽑아 오는 12월에 시상할 예정이다. 보훈문화상은 올해부터 다양한 분야의 공로자를 발굴하기 위하여 시상 부문의 구분 없이 개인과 단체 5인(팀)을 선정하며, 수상자에게는 국가보훈처장 상패와 상금 각 1,000만 원(총 상금 5,000만 원)을 준다. 한편, 보훈처는 “앞으로도 보훈문화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강간난(姜干蘭) 지사는 1908년생이니 살아계시다면 올해(2020) 112살이다. 강간난 지사의 기록을 발견한 것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하 인물카드>에서 였다. 황해도 평군 고북면 서오리가 고향인 강간난 지사는 1942년 7월 9일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6월에 처해져 그해 7월 17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아래 사진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942년 6월 5일 찍힌 사진이다. (제53977번) 가르마를 곱게 타서 쪽진 모습의 얼굴은 화장기가 없지만 고운 자태다. 흰 한복 저고리 앞섶에는 죄수용 사진을 알리는 한자 이름이 붙어 있고 강간난 지사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34살의 강간난 지사에 대한 정보는 직업이 실행상(絲行商)이라는 것과 본적이 황해도, 주거지는 경기도 경성부 창신동(이하 불명)이라는 것밖에는 없다. 고향인 황해도에서 언제 경성으로 올라왔는지, 가족은 있는 것인지 등등 강 지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인물카드 한 장뿐이다. 실장수(絲行商)인 강 지사가 어째서 일제 경찰에 잡혀갔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잡혀들어간 죄명은 ‘국가총동원법’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고 지원 없이, 오로지 모금 활동과 후원 사업으로 해마다 50명 이상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5000만 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상임대표 이춘재)가 올해 전국 독립유공자 후손들 가운데 56명의 장학생을 뽑아 모두 335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9일 밝혔다. 본부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모금 활동과 후원 사업을 통해 올 10월, 상반기 때와 같은 장학금을 다시 지원할 계획이다.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는 해마다 50명 이상의 장학생을 뽑아 고등학생에게는 졸업까지 해마다 100만 원, 대학생에게는 200만 원을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2020년에는 독립유공자 후손 고등학생 45명, 대학생 11명의 장학생을 뽑았다. 이춘재 상임대표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은 진정한 나라 사랑을 실천하고 민족의 긍지를 높인 독립운동가분들을 예우하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는 더 많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장학금 지원 기회를 확대하고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리더십 함양을 통한 미래 지도자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는 2005년부터 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채원개(1895.3.24~1974.2.16) 선생을 ’2020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선생은 청년시절 3․1운동을 시작으로 독립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거쳐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무장투쟁의 긴 여정을 통해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였다. 무장으로서 강인한 기개를, 때로는 중재자로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실천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도 군에 투신하여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은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었다. 선생은 평안남도 영원 출신으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개신교 계열의 의명소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조선보병대에 입대하여 평생 걷게 되는 군인의 삶을 시작하였다. 이후 고향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북만주로 이동하는 중에 유하현 삼원포에서 대한독립단 총단장인 조맹선을 만나 그의 부탁으로 대한독립단 군사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일본이 독립군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자 대한독립단 통임관구 지대장으로 열세인 병력과 물자로 일본군과 격돌하여 관통상을 입은 끝에 철수했다. 1921년 통의부 대표로 김창환ㆍ심용준 등과 함께 상해로 파견되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유순희 지사님! 어제 뉴스를 통해 지사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대로 영영 이별해야 한다니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2017년 3월 31일, 신내동에 계실 때 찾아뵈었을 때도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을 많이 했드랬습니다. 서울중앙보훈병원에는 유 지사님과 광복군 동지인 오희옥 지사님도 입원해 계신 상황이지만 코로나19가 엄중한 상황이라 차일피일 미루다 지사님을 뵙지 못하고 황망히 이별하게 되어 애통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3년 전 찾아뵈었을 때, 유 지사님께서 아기를 안고 찍은 광복군 제3지대 사진을 보여주셨지요? 그때 “갓난아기를 안고 광복군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많으셨지요?”라고 여쭈니 유 지사님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광복군 제3지대에서 아들을 낳아 광복군의 ‘광’, 제3지대의 ‘3(삼)’을 넣어 ‘광삼’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부대원들이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유 지사님처럼 남의 땅(중국)에서도 여성들도 광복군에 자원해서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 하셨는데 작금의 대한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어제 8월 24일 국회 소통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회장은 지난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한국사회 모순의 뿌리인 친일 미청산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에 일부 정치인들이 나서서 김 회장의 친일청산 주장을 정치적 편향이라고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김 회장은 “광복회의 설립목적은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뜻을 받든 민족정기 선양'이고, 이는 정관에도 명시되어 있다. 친일청산은 광복회의 존재이유다. 광복회가 친일청산을 주장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친일청산 주장을 정치적 편향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정치적 편향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 회장은 “미래통합당 김종인 위원장의 조부이신 가인 김병로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당당히 변론하신 분으로 광복회원들이 존경한다. 미래통합당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향도로서 김 위원장이 친일비호 정치인을 출당시켜, 친일파 없는 정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회장은 자신의 공화당 사무직원 경력에 대해 '부끄럽고 반성한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 당시, 서울대 문리대 교정 게시판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경북의 수많은 명문가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만주 등 나라 밖으로 망명하였다. 안동 임청각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안이 대표적이다. 경북인들은 주로 서간도 지역에 정착하여 척박한 만주 땅을 개척하는 고난을 겪으며 한인 동포의 삶을 안정시키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는데, 이는 《백하 김대락의 일기(백하일기)》에서 그 단편을 볼 수 있다. 변발은 와신상담의 일환이오. 새 세상을 이루거든 다시 옛 시절 그 모습으로 바꿉시다. - 김대락의 《백하일기(白下日記)》 가운데 - 이들의 노력을 통해 서간도에서는 신흥강습소(이후 신흥무관학교 개칭)를 세우고 백서농장을 만들어 약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19년 나라 안팎에서 3.1운동이 발발하고, 이후 서간도에서는 민정부의 성격을 띤 한족회가 형성, 군정부로서 서로군정서가 조직되었다. 서로군정서는 독판 이상룡, 법무사장 김응섭, 학무사장 김형식, 참모부장 김동삼 등 경북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특히 북간도에서 조직된 북로군정서와 긴밀한 협조를 한 흔적이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유고》에는, 당시 북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유병기, 구현서, 박기서, 홍종갑, 장주문, 정청산, 차계영, 최경창, 홍종례 등 수원시가 발굴한 9명의 독립유공자가 광복 75년을 맞는 2020년 8월 15일 정부포상을 받으며 독립운동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수원시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펼쳤던 수원 출신 9명의 투사가 올해 정부포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건국포장을 받는 유병기(1895.3.20.~미상)는 당시 수원군 성호면 출신으로, 1923년 8월 25일 월간잡지 ‘신천지(新天地)’에 ‘모든 약자 계급에 호소하여 단결을 재촉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는 등 이른바 ‘신천지 필화사건’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의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또 1944년 조선 독립과 관련된 유언비어 유포로 징역 1년을 받은 수원군 반월면 출신의 구현서(1921~미상), 수진농민조합 사건으로 징역 2년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던 수원군 양감면 출신 장주문(1904~미상), 용을소년회 활동과 신건설사사건으로 1년 6개월의 징역을 받은 수원군 남수동 본적의 정청산(1909.6.13.~미상), 경성제국대학반제동맹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수원군 산루리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