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권쾌복(1921~2009)ㆍ배학보(1920~1992)ㆍ유흥수(1921~2016) 선생을 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권쾌복ㆍ배학보ㆍ유흥수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내의 비밀결사인 ‘다혁당 (茶革黨)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다. 다혁당은 항일운동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대구사범학교 전 학년이 참여하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결성됐지만, 5개월 만에 일제에 들켜 본격적인 활동은 하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세 명의 선생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가정 형편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모습에 매료되어 1937년 4월에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9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민족차별 교육이 자행되던 학교에서 1939년 학생들의 노동력 강제동원과 일본과 조선학생의 마찰로 빚어진 왜관사건으로 폭발했으며 많은 대구사범학교 조선인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드는 원인이 됐다. 세 명의 선생은 왜관사건 이후 조선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 잡지 등을 읽고 시국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인 ‘백의단’을 결성했으며, 이후 다혁당으로 발전했다. 1940년에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그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 제102주년 기념식’이 오는 8일(월) 낮 11시, 일본 도쿄 재일본 한국YMCA회관(한국문화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재일본한국YMCA(이사장 정순엽) 주관으로 도쿄 현지에서 거행되며, 행사의 진행 과정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된다. 기념식에는 강창일 주일대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유학생 대표, 재일본 한국청년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하며, 식순은 2·8독립선언의 노래, 국민의례, 기념사, 성경봉독 및 기도, 2·8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한다. 특히, 이남우 보훈처 차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애국충정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라는 기념사를 대신할 예정이다. 한편, 보훈처는 이번 2·8독립선언 기념식을 시작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36여 개의 국외 독립운동 기념행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2·8독립선언’의 의의 ‘2․8독립선언’은 항일 학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한민족 독립의 당위성과 무력 대일 항전을 전 세계에 선포한 「대한독립선언 선포 제102주년 기념식」이 2월 1일(월) 낮 11시, 한국프레스센터(19층)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기념식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한 가운데, (사)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회장 조인래) 주관으로 열린다. 행사 1부에는 대한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및 축사, 기조강연, 만세삼창 등이 진행되며, 2부에는 ‘민주공화정을 위한 삼균주의 이념적 가치’라는 주제로 학술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대한독립선언은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조소앙 선생이 기초하고, 박은식ㆍ신채호 선생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운동 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대한 독립을 요구한 선언이다. 이후 세계 약소민족에게도 독립의지를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 대외 독립선언이다. 대한독립선언 주요 내용 □ 역사적 의의 ㅇ 한민족 독립의 당위성과 무력 대일 항전을 전 세계에 선포한 것으로서,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항일독립운동 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인 오희옥 지사(95세)를 석 달 만에 병문안하고 왔다.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투병중인 오희옥 지사의 면회는 코로나19로 병실 면회는 전면 금지 상태라서 철저한 방역기준을 준수한 가운데 로비에서 잠시 얼굴을 뵙는 정도밖에 허용되지 않는 상태다. 올 3월이면 만 3년이 되는 병원 생활 가운데 특히 지난 1년은 코로나19로 줄곧 병원 로비에서 잠시 얼굴을 보는 정도로 명문안을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오희옥 지사처럼 연세 든 환자들로서는 자녀들과의 면회도 원활하지 않아 더욱 병원 생활이 힘든 상태다. 어제 함께한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 내외는 “어머니는 여전히 코에 꽂은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지켜봐야하는 상황이지만 어머니 자신이 회복을 위한 의지가 강하십니다.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으며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길 고대하고 계십니다.” 라고 했다. 3년 째 ‘튜브 영양’을 하고 계시지만 찾아 뵐 때마다 화사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에서 강한 ‘재활 의지’를 엿볼 수 있어 기쁘다. 종종 펜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시곤 하는데 평소 먹고 싶은 것을 적는다든가, 집에 가고 싶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26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서울 중구 소공로 소재(현재 중앙우체국 자리)에 부자(父子) 독립운동가인 이범진ㆍ이위종 선생의 생가 터에 표지석을 설치했다. 이번 독립운동가 생가 터 표지석 설치는 광복회가 서울지방우정청에 요청하여 이루어졌으며, 서울지방우정청은 법률에 근거하여 이범진 선생 순국 110주기를 맞아 고증을 거쳐 생가 터에 표석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한말 경무사(경찰ㆍ감옥업무를 관장한 경무청의 장관직)와 법부대신을 역임한 이범진 선생은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러시아 전권 공사로 있을 때, 일본의 국권탈취에 저항하여 자결 순국했다. 또 그의 아들인 이위종 선생은 이상설, 이준 선생과 함께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전국 곳곳에 독립운동 관련 연고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잊히고 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연고가 있는 독립운동가를 찾아내어 풀뿌리 독립운동정신을 선양하는 계기가 바란다.”라면서 “광복회는 독립운동가 지역연고지 실태조사를 하고,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등에 사업제안을 하고 있다. 이번 표지석 설치는 그 첫 수확이라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서울시는 국내에는 기념비 하나 남지 않은 독립유공자 ‘이범진, 이위종 열사’ 부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당시 이범진의 집터로 알려진 현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기념 표석을 설치했다. 이범진 열사는 주러시아 초대 공사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를 쓰다가 한일강제병합에 항거하여 자결했고, 이위종 열사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러시아에서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범진, 이위종 독립유공자 부자는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는 등 업적을 인정받았으나,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조차 국내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고종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범진 열사의 무덤은 소련 당국의 묘지 정리로 멸실되었고, 이위종 열사는 시베리아에서 무장 투쟁 중 행방불명되어 이 부자의 유골은 현재까지 환국하지 못했다. 이범진 열사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돕고,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힘썼다. 그의 아들 이위종 또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로 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제89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오는 8일(금) 낮 11시,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 의사 묘역)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은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만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헌화 및 분향, 묵념의 순으로 간소하게 거행된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조국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고, 이를 통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침체된 항일운동을 되살리는 도화선이 됐다. 1932년 9월 30일 이 의사는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봉창 의사 주요 공적 (공훈록 자료)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31년 1월 항일 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기우만ㆍ박원영ㆍ김익중 선생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며, 호남지역 유학자인 노사 기정진(奇正鎭)의 학맥을 계승하여 서양 및 일제의 국내정치 개입을 거부하고 임금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먼저, 조부 기정진의 영향을 받은 기우만 선생은 전남 장성 탁곡에서 출생했으며, 호는 학정거사(學靜居士)ㆍ송사(松沙) 등이다.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처음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義陣)을 결집하여 회맹(會盟)을 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으나, 임금의 해산 조칙으로 1896년 봄을 전후하여 해산했다. 선생이 일으킨 의병은 단발령의 철폐와 일제 축출, 개화 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또한,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으며, 의병해산 뒤에는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친일재산 국가귀속법’이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되어 실시되어 오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되었다. 김원웅 광복회장 취임이후 친일재산 귀속작업에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친일재산 찾기를 추진해온 광복회는 3일, 지난 한 해 모두 2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은닉재산 모두 171필지(면적 2,939,525㎡ 공시지가 520억 원, 시가 3,000억 원 상당)을 찾아내어 법무부에 국가귀속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광복회가 지난해 순국선열의 날에 국가귀속을 신청한 민영휘 등 한일합병 주모자들을 포함한 9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은닉재산 31필지(면적 2,218,670㎡, 공시지가 190억 원 상당)가 포함되어 있다. 광복회가 찾아낸 친일재산에는 동학농민운동을 말살하려고 청(淸)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일제하 중추원장과 헌병사령관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합병’에 이바지한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아 친일재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민영휘와 ‘한일합병’추진단체인 한국평화협회 회장을 맡은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소, ‘한일합병’을 주도하고 그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규 3명의 공동명의 친일재산 6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선생은 거의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