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교 동창인 언론인 김창희가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2009년 가을 어느 날 창희는 집 안을 정리하다 어느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인 종이 상자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 상자 속에는 창희가 9살 때 돌아가신 창희 아버지께서 평생 찍은 사진필름이 롤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필름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창희가 어머니께 이 얘기를 하자, 어머니께서는 평생 보관하고 있던 아버지의 개인수첩 10여 권을 창희에게 보여줍니다. 이때의 심정을 창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갑자기 지나간 시대가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사진과 수첩 두 가지를 맞춰보면 뭔가 그림이 그려지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날부터 집 안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이렇게 찾아낸 자료들과 필름, 수첩까지 다 쌓아놓고 보니 꾹꾹 눌러 담아도 큰 여행용 트렁크 하나는 가득 찰 것 같았다. 잘 알지 못하던 과거로부터 빛바랜 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이 자료들을 가지고 아버지를 기억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편화된 자료와 자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그 틈새는 결국 누군가의 기억과 합리적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기자] “이런 말, 나도 500년 만에 처음이야. 내가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건지 솔직히 겁도 나. 이미지라는 건 말이야, 남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남이 나를 또 다른 이미지로 덧칠하기 전에는 벗을 수도 없는 거거든. 나하고는 무관하게 만들어진 그 이미지 속에 막상 갇혀야 하는 건 나인 거지. 그러니 인선 씨, 이 편지는 절대 공개되어선 안 돼. 인선 씨하고 나 사이에서 끝나야 하는 비밀이 되어야 하는 거야. 왠지 알아? 나에 대한 환상이 벗겨졌을 때 고통 받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환상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사임당의 비밀편지>에 나오는 사임당의 말입니다. 그러면 “어? 사임당이 쓴 비밀편지가 500년 만에 발견되었나?”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사임당의 비밀편지>는 신아연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수필가로만 활약하던 신 작가가 이번에 처음으로 소설에 도전하여 내놓은 작품이 바로 <사임당의 비밀편지>입니다. 위의 글은 그 소설에 나오는 한 글귀이지요. ‘신사임당’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현모양처’일 것입니다. 율곡이라는 대유학자를 길러낸 어머니, 그렇기에 5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하철 종로3가역 7번 출구로 나오면 직선거리로 100m쯤 떨어져 종묘 담장 쪽으로 대각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아마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아니? 종로에 조계사 말고 또 대각사라는 절이 있었나?”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각사? 샤머니즘과 결합된 그저 그렇고 그런 절이겠지” 하시던가요. 그러나 대각사는 3ㆍ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었던 용성스님이 1911년 창건한 의미 있는 절입니다. 얼마 전에 이윤옥 시인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에 갔다가 근처 대각사에도 가보았습니다. 용성스님(1864~1940)은 16살 때인 1879년 가야산 해인사 극락암에서 출가하였는데,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우리 겨레를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곧 중생 구제이고, 그를 위해 불교 대중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하여 대각교(大覺敎) 운동을 펼칩니다. 그러면서 1911년 대각사를 창건합니다. 대각(大覺)이니까 큰 깨달음이란 말씀이네요. 용성스님으로서는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 크나큰 사고의 전환, 큰 깨달음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3ㆍ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곤지암 나들목을 지나게 되지요? 그래서 서울 시민치고 곤지암을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네 이름이 ‘곤지암’이라고 하니,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저는 처음에 ‘곤지암’이라고 하여 “동네 절 이름이 지명이 되었나?”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곤지암이라는 절은 없더군요. 그럼 왜 지명이 ‘곤지암’일까요? 곤지암에는 곤지암(昆池岩)이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 이름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는 것은 뭔가 이 바위가 특별한 바위라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에 곤지암을 지나며 일부러 그 바위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길 찾기 앱을 켜고 이를 보면서 다가가니, 시내 한 복판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바위가 가게와 집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큰 바위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바위에 꽂히듯이 박혀 있습니다. 400년 된 나무라는데, 향나무가 척박한 바위틈에서 싹을 내어 저 정도로 크려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향나무가 좁은 바위틈에서 몸집을 불리며 바위를 쪼개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관심을 끌만한 바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내문을 보니 원래 고양이처럼 생겨 묘(猫)바위로 불리던 곤지바위는
▲ 《아버지의 라듸오》, 김해수 지음, 김진주 엮음, 도서출판 느린걸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라디오가 언제 나온 지 아십니까? 바로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의 생산과장 김해수 님(1923 ~ 2005)에 의해 처음으로 국산 라디오가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김해수 님이 만든 최초의 라디오는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작년에는 대한민국 광복 70년, 과학기술 70선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김해수 님이 2003년 노환으로 점점 쇠약해지면서 자기의 인생을 글로 남겼고, 이를 딸 김진주 씨가 정리하여 2007년 《아버지의 라듸오》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아버지의 라듸오》가 과학의 달 특집으로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전파도 탔네요. 김해수 님의 딸 김진주 씨는 박노해 시인의 아내입니다. 박노해 시인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한때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노동자를 대변하더니, 지금은 나눔문화라는 단체로 평화 나눔 활동을 하며 영성이 있는 시를 쓰고 있지요. 김해수 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상한 산업화 시대의 주역임에 반하여, 딸 김진주 씨는 사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경기도 광주시 곧은골[直洞] 영장산 자락에 가면 조선 전기의 청백리 재상 맹사성의 무덤이 있습니다. 여기서 곧은골 고개를 넘어가면 분당 율동공원이 나오지요. 그런데 맹사성의 무덤 근처에는 웬 검은 소의 무덤[黑麒塚]이 있습니다. 왜 조선의 명재상 무덤 옆에 검은 소의 무덤이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비밀의 무덤을 파헤쳐보기로 하지요. ▲ 경기도 광주시 곧은골[直洞] 영장산 자락에 있는 조선 전기의 청백리 재상 맹사성의 무덤 하루는 맹사성이 온양의 본가 뒤에 있는 설화산 자락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닙니까? 맹사성이 뭔가? 하여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는데, 거기에선 동네 아이들이 검은 소 한 마리를 놓고 장난을 치며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로서는 평소에 보기 드문 검은 소가 보이니까 호기심에 모여들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한 놈이 장난삼아 돌을 던지자 나머지 놈들도 따라서 돌을 던지며 검은 소를 놀려댄 것이겠지요. 그런데 검은 소는 아직 어려서 많은 아이들이 둘러서서 괴롭히니 어쩔 줄을 모르고 갈팡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관우물이라고 아십니까? 관이 있던 곳의 우물이란 얘기이지요. 관이 있던 곳의 우물이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지금부터 그 이상한 얘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안산시 목내동에 가면 일진전기라는 회사가 있는데, 바로 그 회사 정문 오른쪽 울타리 안에 관우물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다에서 떠내려 온 관이 이 자리에 도착하였는데, 그 후 바닷가는 육지 안쪽이 되고 이곳에서 우물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이곳이 관이 닿았던 자리라고 하여 관우물이라고 불렀다는군요. ▲ 안산시 목내동 일진전기 정문 오른쪽 울타리 안에 있는 관우물 표석 후후! 이렇게 말하면 성급한 사람은 이것도 설명이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실 것 같군요. 그 관은 문종의 아내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 씨의 관입니다. 현덕왕후가 아직 세자비 시절 단종을 낳았는데, - 그러니까 문종이 임금이 된 뒤에 현덕왕후로 추봉된 것이네요. - 그만 안타깝게도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하여 현덕왕후의 무덤을 일진전기 바로 뒤에 보이는 동산에 쓴 것이지요. 이곳을 능안리라고 부르는데, 현덕왕후의 무덤 소릉(昭陵)이 있던 곳이기에
▲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예담, 201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읽었습니다. 진작부터 제 책꽂이에 꽂아둔 책이지만, 다른 책들에게 우선순위에 밀려 있다가 이번에 꺼내들었습니다. 지난주에 새로 읽을 책을 잡으려는데, 이 책이 이번에도 나를 안 볼 거냐며 원망하는 것 같아 꺼내들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지만, 곧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지은이 모니카 마시아스가 풀어내는 자신의 특별한 인생, 기구한 인생이 곧 저를 책으로 끌어들인 것이지요. 모니카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웅게마의 막내딸(1972~ )입니다. 적도기니는 19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서해안 적도 부근에 있는 신생국가이지요. 대통령의 딸이라면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 아닙니까? 그런 그녀의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이 1979년입니다. 1979년 당시 국방장관으로 모니카의 사촌오빠이기도 한 테오도르 오비앙 웅게마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쿠데타가 임박했을 때 모니카의 어머니는 모니카와 모니카의 2살 위 오빠 파코, 4살 위 언니 마리벨을 데리고 평양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내 안에 개있다》, 저에게 배달되어 온 책의 제목입니다. 내 안에 개있다니?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멍멍이 개? 멍멍이 개가 있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 책장을 여니, 책을 지은 신아연 수필가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지금 여기, 민낯의 삶 자리만큼 소중한 것이 없지요. 지금 여기의 삶 자리는 미래라는 막연한 잣대로 재단되어 멍하게 잘려 나가서는 안 되는 오롯함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러기에 뜬금없는 저것으로 인해 손에 잡히는 이것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매끈하게 정제된 저것이 소박하고 질박한 이것을 밀어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박제된 저것 대신 생동으로 빛나는 이것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를 내 안에 개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개는 절대로 주인에 대한 충절을 버리거나 딴 마음을 품는 법이 없지요. 언제나 저것이 아닌 이것을 섬깁니다. 우리도 개처럼 나의 근원이자 나의 지성 너머에 있으면서 매일 매일의 내 삶에 개입하는 절대적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저것이 아닌 이것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아하! 멍멍이 개가 있다는 얘기이군요. 그런데 내 안에 개있다에
▲ 《손에 잡히는 생태계》책 표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손에 잡히는 생태계》 수원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이상훈 교수가 작년에 정년을 맞이하여 퇴임 기념으로 낸 수필집 제목입니다. 이 책에는 30편의 생태 수필이 실려 있는데, 이는 이 교수가 2007년 5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월간 첨단환경기술에 실었던 글 24편에 추가로 6편을 더하여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책을 내면서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지구생태계의 구성원이다. 전 세계 60억 인구의 삶의 터전인 지구에는 인류 외에도 매우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과 때로는 경쟁하면서 때로는 상부상조하면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배워서 공부한 생태계에 관한 지식과 생태계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책에서 이 교수의 생명 존중 사상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실 오늘날 지구 환경오염은 교만한 인간이 자연을 인간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마음대로 부리고 사용해도 되는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