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칸 대가람 회암사> 전시 보러 갈까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령(掌令, 사헌부의 정사품 벼슬) 구치곤(丘致崐)이 아뢰기를, "지금 중의 무리들이 일을 하지 않고 놀면서 먹고 있으니, 백성에게 해독(害毒)을 끼치는 것이 심합니다. 이들을 군대에 편입시킨다면 군사가 어찌 넉넉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평안도(平安道) 백성 가운데 중이 된 사람은 다른 도(道)보다 곱절이나 되니, 청컨대 모두 찾아내어 군대의 정원(定員)에 편입시키소서." (가운데 줄임) "지난 정해년에 호패(號牌)를 시행하였을 때도 중의 무리가 30여 만 명이나 되었으니, 이로써 살펴본다면 지금은 거의 40여 만 명이나 될 것입니다.“ 위는 《성종실록》 111권, 성종 10년(1479년) 11월 29일 치 기록입니다. 중의 무리가 40여 만 명이나 돼 군사가 넉넉하지 않다고 하며, 중들을 군대에 보내도록 하자고 합니다. 불교의 나라 고려와 달리 조선시대가 되자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바뀌면서 불교를 탄압하고 이에 따라 따라서 불교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262칸에 달하던 대가람 경기도 양주 회암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융성하였습니다. 다만, 그렇게 번영했던 회암사는 현
-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 2024-11-29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