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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신극우주의의 양상》, 아도르노, 문학과지성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8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요즘 도대체 제 상식에 맞지 않는 장면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같은 인간으로서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책이 있을까 하여 ‘극우주의’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한글로 나온 책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도르노의 연설문을 책으로 낸 《신극우주의의 양상》이라는 책을 사 보았습니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나치 정권 때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종전 뒤 다시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몸서리쳐지는 악몽을 겪었음에도, 전후 50년대부터 점차 극우주의가 고개를 쳐듭니다. 이들은 히틀러가 그래도 잘한 점이 많았다고 하던가, 심지어는 유대인 학살은 날조된 거짓이라고까지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도르노는 이를 설명해달라는 오스트리아 사회주의학생연합의 초청을 받고, 1967년 4월 빈대학에서 강연하였습니다. 그동안 이 강연은 녹음본으로만 존재하다가 2019년 처음으로 출판되었는데, 출판되자마자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

천하의 세 가지 위험

재능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조직의 붕괴를 초래해 [정운복의 아침시평 243]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지은 회남자에는 '천하유삼위(天下有三危)'가 나옵니다. 곧 천하에는 세 가지 위험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소덕이다총 일위야(少德而多寵 一危也) 재하이위고 이위야(才下而位高 二危也) 신무대공이유후록 삼위야(身無大功而有厚祿 三危也) "덕이 적은데도 총애를 많이 받는 것이 첫 번째 위험이고 재능이 없으면서도 지위가 높은 것이 두 번째 위험이고 자신에게 큰 공적이 없는 데도 높은 자리와 봉록을 받는 것이 세 번째 위험이다." 덕이 부족한 사람이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기 쉽습니다. 역사적으로 덕이 부족한 군주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능력보다는 인맥이나 배경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능이 없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그 자리에 걸맞은 소임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조직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도력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조

1885년 미국 외교관의 대원군 관찰기

한국은 언제쯤 진정한 자주 독립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12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몇 년 동안 연재한 적이 있다. 올해 책으로 펴내기 위하여 관련 자료를 재검토하는 중이다. 자료가 뜻밖에 많다. 첫째는 그가 고국의 가족에게 보낸 서신이다. 1884년 5월부터 1887년 7월까지 그는 우편선이 있을 때마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 전 상서를 썼다. 이 기간은 그가 조선살이를 한 기간이다. 그러니까 그는 개항초기 3년 동안의 조선 견문록을 사신으로 남긴 것이다. 둘째는 조선 여행기다. 1882년 6월 조선 땅(부산)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관찰과 소감, 그리고 1884년 가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행한 내륙 여행에 대한 세밀한 여행록이다.셋째는 외교관으로 3년 동안 조선에 근무하면서 조선의 외교부서와 주고받은 공문이다.넷째는 서울 근무하면서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공문서다.다섯째는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상의 기록물은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전해 온다. 단지 서로 다른 나라의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이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중하고 값진 자료와 정보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 조지 포크에 대해서 뿐 아니

대만에서 만난 ‘장개석’

중국 근대사에서 모택동과 함께 쌍두의 영웅이었음을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8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49년10월1일 중국공산당의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은 북경의 천안문광장 높은 문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정식으로 선포했다. 중국 대륙의 주인공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한 장제스( 蔣介石)는 그해 12월에 대만(臺灣)으로 옮겨와 중화민국의 성립을 알렸다. 그리고 대만의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나오고 그 자리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대신 들어감으로써 대만의 중화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속국 신세로 주저앉았다. 중화민국 총통을 지낸 장세스(蔣介石)를 우리는 예전에 장개석으로 불렀다. 원래 이름은 장중정(蔣中正)이고 개석(介石)은 자(字)인데 흔히 장개석으로 통용되었다. 대만 발음도 장개석에 가깝다. 그 뒤 중국 보통화의 독법대로 이름이 장제스로 바뀌어 불린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예전대로 장개석으로 부르는 것이 편하다. 마찬가지로 타이완(臺灣)도 대만으로 표기한다.​ 1989년 6월4일 중국 북경에서는 천안문 사건이 발생해 중국 정부에 대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광장을 메우고 있던 대학생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강제진압에 의해 많은 사상자를 내며 진압되었는데 당시 한달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본 한국의 모습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배유안, 책과함께어린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엘리자베스 키스. 191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의 여러 가지 풍속과 사람을 그린 화가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근무하는 언니 부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동양에 매혹되어 머물렀다. 그 뒤 언니 제시와 함께 1919년 3월 28일, 조선에 와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1946년 《올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펴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남바위 등 1900년대 초 한국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정교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배유안이 쓴 이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를 보면 경성시대 한국의 모습이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물론 식민지배 치하의 엄혹한 시대, 사는 것이 신산하다고 고달팠을 테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무심히 흘러갔던 것 같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정겨운 사람들’, ‘마음에 남는 풍속들’, ‘아름다운 사람들’,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의 네 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어떤 모습을 그리든 따뜻하고 애정

우리 스스로 오랑캐라고 자처하다니

비례부동, 명나라 의종의 친필을 새긴 것 [정운복의 아침시평 242]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은 동고서저(東高西低)입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큰 강은 서쪽인 서해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와 반대여서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입니다. 황하나 양자강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지요.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충북 괴산군 화양구곡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가평 조종천의 만동묘에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라는 의미의 글은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중국과 관련된 글귀이지요. 어쩌면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의 의미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서쪽에서 물이 동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형상 사행천으로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잠시 동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이 중국과 닮았다고 여겨서 중국 황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세웠습니다. 만동묘는 중국의 만력제와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그런데 만동묘를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9층으로 만들어졌고 경사를 70도 안팎으로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조선의 백성이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든 의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