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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을 배우려고 했지만, 작심삼일이 되었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음악대학의 국악과 타 교수, 피아노과 파 교수와 미녀식당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타 교수는 유명한 국악인이었는데, 국립국악원에서 지휘자로 오래 근무하다가 몇 년 전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대금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파 교수는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얼마 전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교수라는 직업이 좋기는 좋은가 보다. 교수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히려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교수로 바꾸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타 교수와는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K 교수는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져왔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에, 어디에선가 들은 대금 소리가 운명처럼 항상 K 교수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공부하느라고 바빴다. 교수가 되어서는 연구 논문 쓰느라고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하여 논문을 내고 책을 쓰고, 열심히 강의 준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취미 생활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교수가 된 지 7년쯤 지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세상

[정운복의 아침시평 300]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진 자에겐 법이고 없는 자에겐 벌이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본래 법(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공정한 기준이지만, 현실 속에서 법과 정의는 종종 가진 것의 무게에 따라 그 기준이 변하고 맙니다. 가진 자에게 법은 방패가 됩니다. 그들이 가진 부(富)와 권력은 최상위 변호인단을 고용할 힘이 되고, 복잡한 법의 망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 지식과 수단을 제공합니다. 그들의 실수는 그저 일탈 정도로 포장되거나, 훌륭한 사회 공헌이라는 이름으로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납니다. 법정 싸움은 곧 시간과 돈의 싸움입니다. 가진 자들은 이 싸움에서 무한한 체력과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법의 심판은 때로 벌칙이 아닌, 이미지 세탁과 재기를 위한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법의 엄중함은 그들의 부와 특권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지며, 결국 법은 그들의 면죄부처럼 기능합니다. 반면, 가지지 못한 자에게 법은 냉혹한 벌(罰) 그 자체이자 족쇄입니다. 그들은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똑똑하지 못한 변호인의 조력에 미숙하게 자신을 변호해야 합니다. 작은 실수나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곧바로

신라향가와 충담의 차이야기

[라석의 차와 시서화] 4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활동한 승려 충담사(忠談師)는 향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삼국유사》에 그의 작품 두 편이 전한다. 하나는 임금의 덕을 찬미한 〈안민가(安民歌)〉, 다른 하나는 노모에 대한 기파랑 화랑의 효심을 노래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불교적 세계관 위에서 인간의 도리와 마음의 바른길을 노래하고 있어, 향가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수행과 교화의 문학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충담사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고사는 '차(茶)'와 연결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충담사는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남산 삼화령(三花嶺)에 올라 차를 달여 미륵불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임금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하자, 충담사는 “나는 항상 부처에게 차를 올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며 산에서 내려와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그의 덕행을 기려 국사(國師)로 삼으려 하였으나, 충담사는 이를 사양하고 수행자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 짧은 일화 속에는 신라 시대 차문화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차는 오늘날처럼 일상의 음료라기보다, 불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물이자 수행자의

신선이 사는 전설 속 누각 봉래각과 소동파

[전설의 인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 (산동성 일주)] 2 # 2일 차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봉래각(蓬莱阁, 5km) : 신선이 사는 전설 속 누각, 강북 제일각(江北第一阁)으로 1,061년 북송 때 건립, 단애산(丹崖山) 해안 절벽에 건설한 중국 10대 명루 가운데 하나이다. 여덟 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넜다는 팔선과해(八仙過海) 전설과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봉래'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불로장생약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며, 바다 위로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나,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고 불린다. 백운궁(白雲宮), 삼청전(三清殿), 용왕궁(龍王宮), 천후궁(天后宮), 미타사(彌陀寺) 등과 바다 그리고 해안 절벽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이다. 도교의 신선 사상이 품은 이상의 세계는 봉래, 여주, 방장으로 신선이 사는 섬이다. 봉래각에는 용왕신, 마조상(여자, 해신)을 주신으로 모셨고 또, 팔선전에는 8신선이 바다를 건넜다 하며, 주요 신으로 소동파, 여동빈을 모시는 전각이 있다. 도교는 신선처럼 살자는 뜻에서 화약과 연금술이 나와 불로장생을 기원하였다. 봉래각은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지 못하였는데, 이들의 정신적인 사상은 불교였지만, 불교의 이론인

미술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1945년생인 조영남은 음악대학을 다녔고 가수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때에는 그림을 잘 그려 미술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23살 때인 1968년에 번안곡인 딜라일라를 불러서 단번에 유명 가수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는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잘하는 대표적인 재주꾼이다. 조영남은 스스로 자신을 화수(화가+가수)라고 말한다. 그는 미술과 음악의 같은 점과 차이점을 매우 명쾌하게 설명한다. “미술과 음악에 차이가 있다면 눈과 귀의 차이이다. 미술이 눈을 위한 기쁨조라면, 음악은 귀를 위한 기쁨조 같은 것이다. 나는 음악을 먼저 공부했기 때문에, 미술에 관한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음악과 미술 두 가지를 다 해보면, 그 두 가지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둘 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으로 옛날 초가집이 있는 풍경화를 그릴 때의 감정이나, 윤용하의 '보리밭'을 내 목소리로 부를 때의 감정은 결국 동일하다. 초가집을 그릴 때도 기분이 아련하고 몽롱해져서 어린 시절 추억에 젖게 되고 보리밭을 노래할 때도 역시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