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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르고 꽃은 피나니

중리 선생님이 주신 부채와 수류화개(水流花開)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서예가 중리 선생으로부터 부채를 선물 받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부채를 펼쳐 드니, 부채에는 중리 선생의 특유의 휘날리는 필체로 ‘妙用時 水流花開’라고 쓰였습니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앞 구절까지 하면 이렇습니다.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고요히 앉은 자리 찻잔을 반을 비웠어도 향기는 처음과 같고 미묘히 흐르는 시간 속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는구나 ​ 초의선사에게 써 준 글씨인 줄은 몰라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사가 쓴 위 글귀가 나옵니다. 이 글귀는 많이 보던 추사의 다른 글씨와 또 다른 맛입니다. 추사는 참 다양한 서체의 글씨를 남겼습니다. 그런 다양한 서체가 바탕이 되어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추사체가 완성된 것이라고 하겠지요. ‘水流花開’라는 문구는 원래 송나라 시인 황정견의 시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萬里長天(만리장천) 구만리 긴 하늘 雲起來雨(운기래우) 구름 일고 비 내리네 空山無人(공산무인) 빈 산에는 아무도 없는데 水流花開(수류화개)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그런데 ‘空山無人 水流花開’ 시구는 소동파의 시

제천 사자빈신사터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제94호)

바람도 길 멈추고 반야바라밀 읊조린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5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천 사자빈신사터 사사자 구층석탑 - 이 달 균 네 마리 사자가 울자 도량은 선정(禪定)에 든다 단 한 번의 사자후(師子吼)가 고요를 불러내다니, 바람도 가던 길 멈추고 반야바라밀 읊조린다 이 석탑은 원래 9층탑으로 1022년(현종 13)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2층 기단에 5층의 옥신석까지만 남아 있고 상륜부는 완전히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네 마리의 사자가 사자후를 토하며 탑신을 바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탑 가운데 네 마리 사자를 배치한 것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나, 하지만 이 탑처럼 네 형상이 다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사자는 네 모서리에 한 마리씩 자리 잡고 있는데 안쪽 공간에 비로자나불상을 모셔 두었다. 불상은 특이하게도 두건을 쓰고 있으며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 네 마리 사자가 앉은 형상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드러난 중요한 자료다.(시인 이달균) ▶ 그동안 55회에 걸친 연재를 끝맺습니다. 뛰어난 사진 작품을 주신 손묵광 작가님과 맛깔스럽고 의미가 깊은 시를 써주신 이달균 시인님

황해도 만구대탁굿의 역사

만구대탁굿, 천신강림 신앙을 기본적 골격으로 유지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9]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역사적 유래 김대문의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1세기 초 신라 제2대 남해왕(?~24)을 거서간(居西干) 또는 차차웅(次次雄)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웅’은 단군 역사에 나오는 환웅에서의 ‘웅’과 같은 의미로 임금이나 우두머리를 뜻하는데 사투리로는 무당을 일컫는다.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된 제천의례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단군, 주몽, 혁거세 등의 시조 신화 구조는 천신 강림으로 인한 산신신앙, 인간 승화로 인한 곡식신앙, 신인융합으로 인한 창조신앙으로 되어있다. 요약하면, 인간이 신과 교류를 통해 삶에 관한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서 오늘날 무속신앙에서 취하고 있는 그것과 동일하다. 단군, 주몽, 혁거세 기록에서 보여주는 핵심적 내용은 하늘로부터 강림한 천신(天神)과 땅 위에 군림하는 지신(地神)과의 융합을 통해 인간이 태어나고, 그에 따른 인류 문화가 창조되어 삶의 질서가 유지된다. 이와 같이 고대인들 생활 속에 자리 잡았던 천신신앙(天神信仰)은 삶 속의 일상적인 의례와도 직결되었는데, 그 골자는 강림한 천신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 땀이 해결해준다

사람 몸에 체온을 낮추는 냉각 장치는 없다. [한방으로 알아보는 건강상식 49]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몇 가지 표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일정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하는 리듬을 가지는 것이다. 이 일정함에 일정한 체온유지가 포함된다. 체온을 유지한다고 함은 36.5℃ 에 맞는 세포의 활동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는 것으로 활동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체온이 높아지고, 활동성이 떨어지면 체온이 낮아진다. 이러한 바탕에서 인체는 체열을 생산하는 능력은 있으나 체온을 낮추는 냉각 장치는 없다. 곧 체온을 낮추려면 순수하게 외부의 온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체온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기 위해 모발과 주름이 역할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외부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체열 조절이 어려워지고 체온이 높아지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절행위를 하기 위해 땀을 방출하게 된다. 땀 자체로 체열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이 증발하면서 체열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습도가 낮고 바람이 있으면 체온 조절이 쉬워진다. 곧 창조주가 무더운 여름 체온을 유지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땀’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다. 땀은 체온을 조절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현대 도시인의 무더위 이기는 법

풍경소리 들리는 마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마 속에 소나기와 무더위가 번갈아 찾아오는 계절이 되니 다들 더위를 어떻게 이길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거 뭐 걱정인가요. 에어컨 켜고 그 속에 있으면 되지요.”라고 말하면 가장 첨단을 사는 사람일까. 그러나 에어컨 병으로 인생 말년의 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전기 에너지보다는 자연 에너지가 더 이롭다고 할 것이다.​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자연 피서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이야 현대인들보다는 전기적 피서법이 없던 옛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퇴계 이황은 여름 한 철을 꼬박 문을 닫고 의관을 갖춘 채 방 안에 앉아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무더위에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하자 퇴계가 말하기를, “이 책을 읽으면 가슴속에 절로 시원한 기운이 일어난다.”라고 답했다 한다. 그런 경지야 우리로서는 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할 경지일 터다. 필자는 다행히 북한산 옆에 집을 얻어 살고 있어서 가능한 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맑은 바람을 쐬는 것으로 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런 방법을 쓰려면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지칠 것이다. ​ 평생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제169호)

오늘도 닫힌 산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뭇새들 들고 나는 문경새재 들머리 백운대 마애불은 기다리고 계시는데 오늘도 닫힌 산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걸어서 못 간다면 낙엽으로나 불려가지 그곳이 미타찰(彌陀刹)*로 이어지는 길이라면 고요히 먼지가 되어 바람에나 실려가지 * 미타찰(彌陀刹) : 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세계 봉암사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로써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도헌 지증대사(824~882년)가 창건하였다. 경내에 있는 비문에 따르면 도헌은 어려서부터 불심이 깊어 부석사에서 출가했는데, 임금의 간곡한 권유에도 경주로 나가지 않고 수행정진에만 힘썼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심충이란 사람이 희양산에 있는 땅을 내면서 선원을 세우기를 청하여 둘러보았는데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이곳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 하면서 봉암사를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요즘도 봉암사는 일반인에게는 한해 가운데 단 하루, 석가탄신일에만 출입을 허락한다. 1982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절 한 곳쯤은 굳건히 닫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절이 꼭 관광지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