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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든 자기식으로 놀면서 사는 임동창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임동창은 1956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첫 음악 시간에 여선생님이 친 피아노 소리가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 왔다. 피아노의 신내림이다. 그날 당장 헌책방에서 바이엘 교본 한 권을 사 들고 교회로 갔다. 피아노가 있는 곳은 교회뿐이었으므로. 수업도 팽개치고 잘나가던 짱(?)의 생활도 접고 미친 듯 피아노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가난한 어머니를 졸라 수강료 삼천 원을 들고 이길환 선생을 찾아갔다. 그의 재능을 인정한 선생님이 자기 집에서 숙식하며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임동창은 하루 16시간 이상 피아노를 쳤다.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쳤다. 어느 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더란다. 이 무슨 조화? 도통? 그날 이후 독주회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고1 때는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피아노만 쳐댔으니 학교 성적은 '양'과 '가'가 전부. 그러나 서류상으로 졸업은 했다. 어느 날 괘종시계가 땡땡땡 세 번을 치길래 "선생님 세시예요?"라고 물으니 "야 이놈아, 열두시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분명 세 번을 들었는데. 그 후 "무의식이란 무엇일까? 자아란

원자력발전소는 혐오시설인가, 효자시설인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여의도 100배를 넘는 일본 후쿠시마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3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가 26기가 있고, 4기를 건설 중이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 1월 26일 대형 원전 2기와 소형 원전(SMR) 1기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새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을 계승하지 않고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러한 친원전 정책의 밑바탕에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엄청나게 늘어날 전기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염려가 자리 잡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바람과 날씨 변화에 민감해서 안정적인 전기를 계속 공급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 미래 산업으로서 급부상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수출 주역인 반도체 생산 시설을 늘리려면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는 점도 친원전 정책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정부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의 추진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2026년 1월에 전 국민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하였다. 환경단체에서는 문항이 편파적이라고 공정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신규 원전 찬성 여론이 60% 이상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환경운동 역사를 살펴보면 쓰레기 매립장, 쓰레기 소각장, 하수처리장, 화장장, 고압 송전선 등은 이른바 혐오시설에 관한 것

중국에서 먼저 발견된 한국의 전통, 함경남도 검무

함경남도 검무의 예술적 값어치와 무형유산 전승의 의미를 톺아본다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분단 이후 이북 지역의 전통무용은 오랫동안 연구와 기록의 공백 속에 놓여 있었다. 조선팔도(朝鮮八道)라는 문화적 지형 속에서 형성된 지역 전통은 오늘날에도 국악, 민요, 무용, 음식 등 다양한 전통문화의 지역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북측 지역의 문화예술은 접근과 연구가 제한되었고, 그 결과 많은 전통이 충분한 기록과 분석 없이 단편적인 자료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각 도에는 교방(敎坊)이 존재하였다. 교방은 고려 말기부터 형성된 제도로, 국가 또는 지방 관청에 속해 관기 교육과 궁중 정재를 준비하며 국가 의례와 외교 연향, 지방 행사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였다. 교방은 단순한 공연 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던 공적 예술 교육기관이자 전문 예술 집단이었다. 이러한 교방 체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체되었고, 이후 그 기능은 민간 중심의 권번(券番)으로 이어졌다. 권번은 예인 교육과 공연 활동을 담당하며 전통 예술 전승의 근대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교방과 권번의 흐름은 지역 춤과 음악이 제도적 틀 속에서 전승되던 구조를 보여주며, 오늘날 전통

오늘 우리가 고운의 문장 속 차를 다시 읽는 까닭

고운 최치원의 차와 문필이야기 [라석의 차와 시서화] 6

[우리문화신문=손병철] 고운 최치원은 흔히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자 입당 급제의 수재, 그리고 귀국 뒤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은둔의 길로 들어선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삶과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바탕에는 늘 ‘차’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는 고운에게 단지 갈증을 푸는 음료가 아니라, 시와 문장을 맑히고 마음을 씻는 수양의 매개였으며, 차와 시서의 풍류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인적 삶의 일상적 토대였다.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며 대륙의 중원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격문으로 알려진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당대에 “천하의 문장이 번개처럼 떨어졌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명문장으로 회자된다. 그 기세와 문장은 젊은 천재의 빛나는 성공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 문장 속에는 전란과 혼란을 직시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시기의 고운은 칼날 같은 문장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귀국 뒤의 삶은 달랐다. 신라 조정의 혼탁한 정치 현실 속에서 그의 개혁적 이상은 번번이 좌절되었고, 경남 일대의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세도와 문벌의 장벽은

역관 이언진, 일본에서 천재시인으로 큰 인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1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태는 요랬다 조랬다 하고 이내 몸은 고통과 번민이 많네 높은 사람 앞에서 배우가 되어 가면을 쓴 채 억지로 우네 조선 후기의 역관 시인 이언진(1740~1766)이 쓴 호동거실 연작시 가운데 31째 시입니다. 시에서 높은 사람 앞에서 자기 감정을 숨기고 그저 “예! 예!”만 연발해야 하는 신분 낮은 사람의 비애가 확 느껴지지요? 이언진은 역관으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는 중인에 불과했으니, 양반들 앞에서 그런 비애를 더 느꼈을 것입니다. 마지막 연 ‘가면을 쓴 채 억지로 우네’에서는 속으로는 눈물이 터지려고 하지만, 광대로서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피에로의 눈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호동거실(衚衕居室)은 170수의 연작시입니다. 호동(衚衕)은 주로 가난한 하층민이 사는 골목길을 뜻합니다. 연작시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호동거실에 나오는 시에는 하층민의 비애와 눈물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언진이 바로 이러한 동네에 살면서 하층민의 삶의 애환과 아픔을 생생히 목격하고 자기의 아픔으로 체득하면서 이러한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 역관은 중인이지만 전문직으로 어느 정도 재산적 여유가 있기에 굳이 호동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