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흔히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옷, 더 화려한 장신구 등. 마치 물건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입니다. 물건의 값어치는 그것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비싼 악기는 연주하지 않으면 그저 무용한 물체에 불과할 뿐입니다. 좋은 책도 읽지 않으면 종이 뭉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값어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얼굴보다 중요한 것은 표정입니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지요. 아름다운 얼굴은 분명 매력적인 요소지만,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감동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표정입니다. 따뜻한 미소, 진심 어린 눈빛,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은 단순한 외모를 뛰어넘어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외모에 집착하며, 그들의 값어치를 외모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적인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렸을 때 암소의 출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 소가 출산의 기미를 보이면 밤새 외양간을 지키곤 했습니다. 송아지가 얼어 죽으면 안 되니까요. 갓 태어난 송아지는 비칠비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로운 걸음을 보이다가 20분 정도 지나면 중심을 잡고 잘 걸었습니다. 물론 야생에서 어린 개체는 천적의 사냥감이 되므로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만 어찌 되었든 송아지는 거의 완전한 상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의 태아는 모체에서 세상으로 나올 모든 발달적 준비를 마치고 나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갓 태어난 인간은 머리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까요. 인간이 미성숙한 단계로 태어나는 것을 직립보행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므로 골반이 좁아졌고, 이는 태아의 머리가 커지는 것을 제한하여 조산을 유발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태아의 눈동자는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출산을 겪습니다. 이에 따라 신생아기에는 부모님의 얼굴조차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지요. 그러니 모빌을 달아 초점 발달에 도움을 주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최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지워지는 볼펜’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답안을 수정할 수 있도록 연필 사용을 권장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지요. 연필은 틀린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유연함과 닮아있습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랫말처럼, 잘못된 것은 언제든 고칠 수 있다는 연필의 장점은 매력적입니다. 삶이 연필처럼 수정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필을 고를 때면 예쁜 외피에 눈길이 갑니다. 사각 연필, 삼각 연필 등 독특한 디자인은 소유욕을 자극하지요. 하지만 연필의 진정한 값어치는 외피가 아닌 심에 있습니다. 아무리 예쁜 외피를 가진 연필이라도 심이 뭉개지거나 끊어진다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까요. 연필과 같이, 우리도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중요합니다. 화려한 옷이나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따뜻하고, 정직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지요.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후회하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연필이 지우개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듯, 우리의 삶도 언제든지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감은 남의 신발을 신고 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보는 것이지요. 이해한다는 단어를 영어로 보면 'Understand'입니다. 'Under'는 '아래'를 의미하고, 'stand'는 '서다'를 의미합니다. 곧, '이해한다'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래에 서서 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처럼,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느껴보는 것이죠. 한자문화권에서 쓰는 '용서'라는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용서(恕)'는 '如(같을 여)'와 '心(마음 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상대방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아질 때 비로소 용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감과 용서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그를 용서할 수 있고, 용서를 통해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남의 신발을 신고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 감정적인 교류를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성공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모두 초대권 없이 지구에 온 방문객일 뿐입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지만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볼 때 지구의 원주민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이지요. 인간은 마치 지구라는 거대한 호텔에 잠시 머무르는 손님과 같습니다. 모든 생명이 유한성을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린 언젠가는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잠시 빌려 쓰는 지구를 소중히 다루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지구를 정복한 것 같지만 실은 지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듯이, 우리는 지구라는 책을 빌려 삶이라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빌려 왔다면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후세에 지구를 반납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유한합니다. 꽃이 피고 지듯이, 우리의 삶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소중한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구에 머무는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후대에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구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입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인간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납니다. 이 말은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이,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실어줍니다. 100대 명산을 완등하던 날 저는 지리산 천왕봉에 서 있었습니다. 봄꽃이 만발하고 온화한 계절에서 쉽게 허락한 산도 있지만 때로는 비바람 속에서 힘든 과정을 요구하기도 했고 강추위와 살을 에는 바람 속의 인내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산 아래까지 먼 길을 찾아갔다가 입산 통제로 돌아오기도 했고 때론 중턱에서 발목의 인대가 늘어 어렵게 하산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패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마치 사계절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인생 역시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가 반복됩니다. 중요한 것은 패배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습(習)이란 말은 새의 날갯짓을 의미합니다. 새는 처음부터 잘 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수한 반복적인 연습 덕에 창공을 비상할 수 있지요. 그러니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작은 도토리 한 알에 커다란 참나무가 들어있고 바람에 날리는 작은 솔씨 하나에 낙락장송이 들어 있습니다. 도토리 한 알은 겉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땅속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거대한 참나무로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재능이나 꿈도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를 통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시작에서부터 출발하여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솔씨 하나는 더욱 작고 가볍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이루는 소나무로 자라납니다. 이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와 같지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경험하지만, 작은 솔씨처럼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작은 것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마치 도토리와 솔씨가 거대한 나무로 자라듯이,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무리 현자라도 사심이 들어가면 바보가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욕심이 개입되는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빛나는 보석이 흠집에 의하여 흐려지듯, 완벽해 보였던 현자의 판단은 사심이라는 불순물에 의해 흐려집니다.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며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백성을 멀리하거나,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때가 많습니다. 사심이 들어가면 짙은 안갯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불리한 사실은 외면합니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은 객관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잘못된 결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기업은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심은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공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을 하늘을 담뿍 담고 한들거리며 손을 흔드는 살사리꽃은 가을의 진수입니다. 살사리꽃은 코스모스의 우리나라식 표현이죠. 어렸을 적에는 코스모스가 지금보다 더 예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내 키가 작아 코스모스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고 있었거든요. 코스모스를 왜 코스모스라고 했을까요? Cosmos는 우주인데 말이지요. 그 명명의 이유는 생김새에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란 수술 사이로 암술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작은 암술 하나하나가 별 모양입니다. 별이 빼곡하게 들어있으니 그 자체가 우주인 셈이지요. 코스모스는 참 특이한 꽃입니다. 씨앗이 사방에 날려 아무데나 싹을 틔울 것 같은데도 꼭 길가에 열병하듯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사랑에 대한 열망이 커서인줄도 모릅니다. 가을입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코스모스가 지천이지요. 그 가녀린 몸짓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욱이 색색으로 치장한 하염없는 손짓을 받고 나면 더욱 그러하지요. 가을의 길목에서 만나는 코스모스는 너무나 청조하고 단아해서 벅찬 감동을 줍니다. 마치 우주의 축소판인 듯, 수많은 별을 품고 피어난 꽃잎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불가에서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이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을 말하는 것이지요. 말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알림 소리,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괴롭히지요. 이러한 소음공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소리를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고독을 의미하기도 하고, 깊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사치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필요하지요. 침묵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니까요. 침묵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지요.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활동은 침묵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소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