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불한티 계곡 비온 뒤 물소리 불어난 계곡 (돌) 소리 중 소리는 계곡 물소리 (심) 바위 등짝 쓰다듬는 맑은 물 (빛) 온누리 얼룩진 이 씻겨 주렴 (초) ... 25. 8. 10. 불한시사 합작시 불한티 계곡은 불한령(弗寒嶺) 기슭에 있는데,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사철 끊이지 않는다. 불한산방과 이웃한 용추(龍湫) 계곡과 함께 백두대간 대야산의 양대 계류를 이루고 있다. 두 계곡물이 만나는 곳에 선유동(仙遊洞) 구곡(九曲)이 시작되어 선경을 이루고 있다. 이윽고 희양산 기슭에 이르면 봉암사 백운계곡 물과 만나 후백제 견훤의 고향인 가은읍을 지난다. 문경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옛길은 세 갈래였다. 동쪽엔 신라시대에 개척한 하늘길(鷄立嶺)이 있고, 중간에 새재 조령(鳥嶺)이 있으며, 서북쪽에 불한티(嶺)가 있다. 새재는 개나리 봇짐지고 과거보러 가던 옛길이지만, 불한티는 소장수와 보부상들이 넘던 길로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도 나온다. 춥지 않은 양지바른 고개라는 뜻의 이곳에 필자가 자리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불한시사(弗寒詩社)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라석)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의 뒷모습 어느새 가는가 올해 여름도 (달) 가야 온다니 어쩌나 가야지 (빛) 가는 뒷모습 처량만 하더냐 (심) 입춘대길 어느덧 입추로세 (돌) ... 25.8.7.불한시사 합작시 입추가 지나니 여름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측하기 힘든 기후변화를 실감하는 폭우와 폭염, 폭풍과 지진에다 끊임없는 전쟁 뉴스를 보고 들으며 지낸 올해 여름. 그리고 국내 정치상황은 또 어떤가. 이런 불임(不姙)의 여름날을 되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뭐라 표현할까. 돌아보면 "열음"이 있어야 여름이라 할 것인데, 열음(열매) 없는 여름을 뭐라해야 할까. 가고 있는 저 여름의 뒷모습이 처량할 수밖에 있겠는가. 그러나 가을이 오고 있는 이 입추 절기 즈음에, 계절의 순환이란 그저 돌고 도는 회귀가 아니라 뭔가 변화를 품고 돌아옴을 말하듯이 새로운 계절의 가을바람이 맑고 시원하게 불어오기를 빌어본다.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덧없음 세월이 흐르고 나는 서있네 (빛) 다리는 흐르고 물이 서있나 (돌) 서있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 (심) 덧없음을 딛고 선 사랑이어 (달) ... 25. 7. 28. 불한시사 합작시 '덧없음'이라는 말에서 "덧"은 '때' '제' 또는 '짬' '쯤'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런 '덧'은 현대어 '어느덧'에 살아있다. '덧없다'는 원래 '시간이 없다'라는 말인데, 점차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 남은 짬이 없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넓어지고, 마지막에는 '헛되이 지냈으니 보람없이 허망하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깊어졌다. 합작시의 시제는 사랑과 삶의 허망함을 노래한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인 아폴리네르가 쓴 유명한 시 '미라보의 다리'를 기려 띄운 것이다. 그의 시에 덧없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것을 은유하는 유명한 후렴구가 있다. 프랑스어로,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우리말로 옮기면, 밤이 오고 시간이 흘러간다. 날들이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흘러간 사랑의 아픔을 안고 서 있는 외로움과 덧없음이 진하게 담긴 시구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꿈의 연밭 찻닢을 재웠네 꽃봉오리 속 (돌) 꽃잎 덮고 자다 꽃꿈에 깼네 (빛) 은은한 꽃향에 사랑의 다향 (달) 현실보다 생생한 연화 세계 (심) ... 25.7.23. 불한시사 합작시 청나라 말쯤 소주에 살았던 심복(沈復)이 지은 자전적 소설 《부생육기(浮生六記)》가 있다. 심복은 분경(盆景, 돌, 모래 따위로 산수의 경치를 꾸미어 놓은 분재)을 꾸미고 꽃나무를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뜻맞는 벗들과 시를 짓고 명산대천을 둘러본 풍류객이었다. 그는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아내 운(芸)을 두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서 저녁때면 연꽃 봉오리 속에 찻닢 봉지를 넣어 두었다가, 아침에 꽃이 피면 꺼내서 연꽃 향기가 스민 맑은 차를 끓여 내었다고 한다. 며칠 전 충청남도 아산의 신정호반에 꾸며진 백련밭에 꽃구경하러 갔었다. 소낙비를 피해 전통찻집 다연(茶煙)에 들렀는데, 말차를 마시며 운의 생각이 떠올라 합작 시제로 발구(發句)했다. 오래전에 《부생육기》를 읽었는데,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워한 적이 있다. 그 소설은 중국의 대문호 임어당(林語堂)도 극찬한 바 있으며, 한편 아름다운 여인 운에 대해서는 당대 문화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갈등(葛藤) 칡은 오른쪽 등은 왼쪽으로 (돌) 갈등을 엮으면 풀 수 없겠네 (빛) 얽힌 것은 언젠가 풀리는 법 (심) 땅 하늘로 위 아래로 푼다네 (달) ... 25.7.18. 불한시사 합작시 칡덩쿨과 등나무 넝쿨을 가리키는 ‘갈(葛)’과 ‘등(藤)’이 비유적인 의미의 "갈등"이란 말로 처음 나타난 것은 중국 송대의 선(禪)불교라고 알려졌다. ‘마음의 뒤엉킴’을 표현하고, 분별심(分別心)이나 시비심(是非心)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이는 선종문헌인 《벽암록》과 《전등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이 오늘날에는 심리적인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인 의견 충돌과 다툼을 뜻하는 말로 발전해 왔다. 칡은 오른쪽으로 등은 왼쪽으로 얽히듯, 갈등은 끊임없이 이 세상을 덩쿨 넝쿨로 감아올려 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가? "갈등"은 원래 없었다. 칡과 등나무가 있고 지켜보는 내 마음이 있을 뿐인 것을.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유상곡수(流觴曲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달) 붙쇠 기름에 꽃전을 띄우면 (빛) 시읊어 시름 달래는 풍류객 (돌) 시흥에 겨운지 절로 어깨춤 (심) ... 25.7.9. 불한시사 합작시 물에 쇠잔이 뜰 리가 만무한데, 이처럼 얕고 작은 도랑물에 술잔이 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국민학생(지금 초등학생) 때 경주 수학여행 가서 포석정(鮑石亭)을 보고 든 의문이었다. 돌아와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쇠잔이 아니고 뿔잔이란다" 하시며, 붓으로 '유상곡수(流觴曲水)' 네 글자를 한자로 써 보여 주셨다. 굽이친 물(曲水)에 술잔을 띄운다(流觴)는 뜻이었다. 잔이란 글자의 상(觴)에 뿔(角)이 들어가 있었다. 살펴보면 유상곡수의 풍류는 포석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유상곡수 풍습은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은 풍류놀이었다. 우리말의 잔치가 잔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잔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잔(盞), 배(盃, 杯), 상(觴)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 나무나 토기 대신 천연 그대로 잔을 깎아 만들기에는 뿔이 가장 쉬웠으리라. 가볍고 깨지지 않으며 갖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월의 청포도 육사의 고향 생각나는 칠월 (돌) 청포 입고 온다던 님 그리워 (빛) 알알이 주저리 아리 쓰리랑 (심) 맑고 푸른 세월 그 언제인가 (달) ... 25.7.3. 불한시사 합작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7월에는 이육사의 시 "청포도"와 함께 그의 고향이 생각난다. 그곳은 도산서원과 그리 멀지 않은 안동 예안이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나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예안을 여러 번 찾았다. 마을 가운데에 시인의 생가인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다. 그는 퇴계의 13대 후손이고 그의 집은 '참판댁'이라 불렸다. "청포도"의 시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다시 찾았을 때는 동네 어디에도 푸른 빛의 청포도는 없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머루색 검은 포도밖에 없어 아쉬웠었다. 그러나 청포도의 싱그러움을 연상시키는 '청포(靑袍)'와 '은쟁반' 그리고 '하얀 모시 수건' 등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정감을 북돋우는 맑은 시어들을 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글쓴이는 한중수교 이전에 북경으로 유학하러 갔다. 거기서도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이육사가 북경대학의 사회학과를 다닌 적이 있어, 나에게는 공교롭게도 아득한 선배이자 동문이다. 당시 문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느티나무 그늘 할매할배 그늘 아래서 쉬네 (달) 꼬부랑 꼬불 꼬부랑 말투로 (돌) 인생의 길은 만만치 않았지 (빛) 어디 큰 인물의 그늘은 없나 (심) ... 25.6.24. 불한시사 합작시 주변에서 오래된 느티나무 고목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든 오래된 느티나무를 만나면 왠지 반갑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나무를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한참 동안 그 밑을 서성이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야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옛날의 우리 또래들에게는 마을의 큰 느티나무가 푸근한 놀이터였고 학교가 되기도 했다. 또 그 아래에서 햇볕이나 비를 피하고 의지하는 그런 큰 품속 같은 곳. 곁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주던 또 다른 세상의 아늑한 품 안이기도 했다. 며칠 전에 무심코 거리를 걷다가 마을 느티나무 아래 흰옷 입은 두 노인이 열차를 기다리며 햇살을 피해서 무연히 앉아 쉬는 걸 보게 되었다. 아련한 풍경 참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저분들도 나와 비슷한 추억을 갖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잠시 한숨을 돌리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미 어떤 느티나무 그늘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한탄하는 것일까. 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맛비 장대비에 짓무른 사방 천지 (돌) 천둥과 벼락에 기겁한 땅낯 (심) 올 비는 와도 짓물지나 말지 (빛) 썩고 병든 것들 쓸어버리게 (달) ... 25.6.21. 불한시사 합작시 장마는 6월 말에서 7월 초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여름철이 되면 대륙이 해양보다 빨리 뜨거워진다. 온도의 차이로 북쪽의 대륙은 저기압이 되고 남서쪽 해양은 고기압이 된다. 이렇게 장마전선이 형성되면서, 남서풍이 많은 물기를 품고 불어오면 오랫동안 장마가 지곤 한다. 장마는 ‘오래도록 내리는 비’란 뜻인데, ‘장’은 한자의 長에서 왔고 ‘마’는 우리말의 ‘비’를 뜻하는 ‘마ㅎ’에서 왔다고 한다. “마ㅎ‘의 용례를 찾기 어렵다. 다만 ‘마시다’란 동사에 주목해 보면 대강을 유추할 수 있다. 신발을 뜻하는 ‘신’에 ‘다’를 붙여 ‘신다’라는 동사가 만들어졌듯, 물을 뜻하는 ‘마ㅎ’에 ‘다’를 붙여 '물을 먹다’는 뜻의 ‘마히다>마시다’란 동사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시어에서 ‘짓무른’과 ‘짓말지’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여기서 1행에 나오는 ‘짓무른’의 원형은 ‘짓무르다’인데 우리말이고, 3행에 나오는 ‘짓물지’의 원형은 ‘짓물다’인데 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칼 같기도 하고 활 같기도 한 (돌) 동이 민족의 푸르른 담수호 (심) 밝디밝은 광야 저 물빛 신전 (달) 칼 차고 활 메고 누비던 추억 (빛) ... 25. 6. 10. 불한시사 합작시 바이칼은 바다 같은 거대한 호수다. 길이가 무려 636km나 되며 폭 25~79km에 깊이가 최대 1,642m나 된다. 약 2천5백만 년 전 형성돼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고 깨끗한 담수호 가운데 하나다. 시베리아 상공에서 비행기로 내려다보면 긴 활이나 칼날처럼 대륙 위에 펼쳐져 있다. 볼수록 신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호수 가운데 있는 알혼섬은 고대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시베리아 몽골 샤머니즘과 깊은 연관을 두고, 우리나라 샤머니즘과도 연결된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부랴트족은 우리와 너무 닮아서 이웃사촌 같았다. 저 바다 같은 호숫가에서 샤먼들의 춤과 북소리는 우리의 혼령에 스며들어 마치 구석기나 신석기시대로 되돌아가는 그런 감동이 우러난다.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