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과 물의 풍경 산수의 풍경이 좋다고 한들 (돌) 심사가 틀리면 말짱 도루묵 (빛) 자연은 호불호, 선악이 없네 (심) 마음 맑아야 풍경이 비치고 (달) ... 25.9.13. 불한시사 합작시 셋째 구의 "자연은 호불호(好不好), 선악이 없네"에서 왕양명의 사구교(四句敎) 가운데 첫번째 구가 생각난다. "무선무악성지체(無善無惡性之體)," 곧 착함도 악함도 없는 것이 본성의 본체(本體)라는 뜻으로 인간 자체도 자연체(自然體)이니, 자연성 역시 호불호가 없는 무선무악이라 할 것이다. 양명의 이 구절은 혜능(惠能)의 게송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결구의 마음이 맑아야 풍경이 비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거울이 밝으면 풍경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이 그대로 조응(照應)한다는 뜻이리라. 필자의 발구(發句)는 "산수풍경운호운, 수심선행불여야(山水風景云好云 修心善行不如也)"의 첫 구절에서 옮겨 왔다.(라석)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을 오는 소리 달빛 젖은 귀뚜리 울음소리 (돌) 소리로 존재 깨닫는 가을밤 (심) 보이는 소리 들리는 저 달빛 (초) 둥근 달을 품고 서성이노라 (달) ... 25.9.6. 불한시사 합작시 어느새 올해도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었다. 나무 위의 매미 소리 사그라지고 풀섶 귀뚜리 소리 요란하다. 다 자기가 맡은바 자기의 몫에 저마다 충실하는 것일 게다. 윤달이 들어 한가위도 한 달을 남겨 두고 있으나 내일이 벌써 백로절(白露節)이니, 밤기운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이나 거미줄에 은구슬 이슬이 맺힌다. 초로(草露)의 인생이라 했던가! 오늘은 윤달의 보름이니 어젯밤 달빛이 유난히 청량하였다. 요양원에, 병원에 있는 벗이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계절은 지구촌 곳곳에 다른 시기,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5월인데 가로수가 누렇게 물들어 가는 가을이었다. 오래전 지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해가 되기도 했던 이색 체험이었다. 마야인들은 13개월 28일 고정 달력을 쓴다. 요임금 때 없어진 마고력도 같은 체제 달력을 썼다고 신라시대 박제상이 저술한 《부도지(符都志)》란 책에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청렴새(淸鳥) 희고 맑은 선풍 도골 그립네 (돌) 아침 이슬에 젖은 저 백로여 (달) 해맑은 눈망울엔 꿈이 가득 (빛) 백로는 백로로 살고 있다네 (심) ... 25.9.1. 불한시사 합작시 청렴새(淸鳥) 또는 현조(懸鳥)는 두루미과에 속하는 백로(白鷺)의 다른 이름이다. 백로가 공식 이름이지만 문헌상에서 다양한 별칭이 보인다. 품위 있는 자세에 흰 깃털의 깨끗한 이미지릍 통해 예로부터 청렴새로 지칭되기도 했다. 선비들이 닮고자 했던 이유도 그 맑고 흰 청렴성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차가운 가을 강기슭에 긴 다리로 홀로 선 우아한 자태는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금(仙禽) 곧 두루미에 속한다. 두루미과에 속하는 새 가운데는 백로 말고도 단정학, 재두루미, 흑두루미 그리고 왜가리 등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단정학(丹頂鶴)이 단연 아름다움의 으뜸이다. 그 까닭은 흰 몸체에 목과 꼬리부분이 검은 데다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자세가 단정해서 단정학인 줄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단정학 또는 선학(仙鶴)은 과거로부터 우리 삶에 긴밀히 연관돼 왔다. 특히 단정학은 신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을 오는 소리 가을은 남자 계절이라 했나 (돌)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텐데 (달) 산과 들길에 열매 익는 소리 (심) 툭툭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 (빛) ... 25.8..23. 불한시사 합작시 시가 쓰일 만한 세월이 아니라서 그런가. 써놓고 보니 시 같지도 않고 더욱이 가을의 맛도 우러나지 않는다. 꼭 아람이 벌어지지 않고 떨어져 있는 빈 밤송이들 같다. 시란 작자의 심정을 반영한다. 우리가 당면한 이 기후 변화가 얼마나 삶을 황폐하게 할지, 이 삶의 예측못할 혼란들이 또 얼마나 우리들 마음을 흐트러 놓을지. 처서가 지나가는 이 시절에도 이 가을은 노래가 되지 않는구나.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불한티 계곡 비온 뒤 물소리 불어난 계곡 (돌) 소리 중 소리는 계곡 물소리 (심) 바위 등짝 쓰다듬는 맑은 물 (빛) 온누리 얼룩진 이 씻겨 주렴 (초) ... 25. 8. 10. 불한시사 합작시 불한티 계곡은 불한령(弗寒嶺) 기슭에 있는데,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사철 끊이지 않는다. 불한산방과 이웃한 용추(龍湫) 계곡과 함께 백두대간 대야산의 양대 계류를 이루고 있다. 두 계곡물이 만나는 곳에 선유동(仙遊洞) 구곡(九曲)이 시작되어 선경을 이루고 있다. 이윽고 희양산 기슭에 이르면 봉암사 백운계곡 물과 만나 후백제 견훤의 고향인 가은읍을 지난다. 문경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옛길은 세 갈래였다. 동쪽엔 신라시대에 개척한 하늘길(鷄立嶺)이 있고, 중간에 새재 조령(鳥嶺)이 있으며, 서북쪽에 불한티(嶺)가 있다. 새재는 개나리 봇짐지고 과거보러 가던 옛길이지만, 불한티는 소장수와 보부상들이 넘던 길로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도 나온다. 춥지 않은 양지바른 고개라는 뜻의 이곳에 필자가 자리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불한시사(弗寒詩社)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라석)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의 뒷모습 어느새 가는가 올해 여름도 (달) 가야 온다니 어쩌나 가야지 (빛) 가는 뒷모습 처량만 하더냐 (심) 입춘대길 어느덧 입추로세 (돌) ... 25.8.7.불한시사 합작시 입추가 지나니 여름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측하기 힘든 기후변화를 실감하는 폭우와 폭염, 폭풍과 지진에다 끊임없는 전쟁 뉴스를 보고 들으며 지낸 올해 여름. 그리고 국내 정치상황은 또 어떤가. 이런 불임(不姙)의 여름날을 되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뭐라 표현할까. 돌아보면 "열음"이 있어야 여름이라 할 것인데, 열음(열매) 없는 여름을 뭐라해야 할까. 가고 있는 저 여름의 뒷모습이 처량할 수밖에 있겠는가. 그러나 가을이 오고 있는 이 입추 절기 즈음에, 계절의 순환이란 그저 돌고 도는 회귀가 아니라 뭔가 변화를 품고 돌아옴을 말하듯이 새로운 계절의 가을바람이 맑고 시원하게 불어오기를 빌어본다.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덧없음 세월이 흐르고 나는 서있네 (빛) 다리는 흐르고 물이 서있나 (돌) 서있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 (심) 덧없음을 딛고 선 사랑이어 (달) ... 25. 7. 28. 불한시사 합작시 '덧없음'이라는 말에서 "덧"은 '때' '제' 또는 '짬' '쯤'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런 '덧'은 현대어 '어느덧'에 살아있다. '덧없다'는 원래 '시간이 없다'라는 말인데, 점차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 남은 짬이 없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넓어지고, 마지막에는 '헛되이 지냈으니 보람없이 허망하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깊어졌다. 합작시의 시제는 사랑과 삶의 허망함을 노래한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인 아폴리네르가 쓴 유명한 시 '미라보의 다리'를 기려 띄운 것이다. 그의 시에 덧없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것을 은유하는 유명한 후렴구가 있다. 프랑스어로,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우리말로 옮기면, 밤이 오고 시간이 흘러간다. 날들이 흘러가고 나는 남는다. 흘러간 사랑의 아픔을 안고 서 있는 외로움과 덧없음이 진하게 담긴 시구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꿈의 연밭 찻닢을 재웠네 꽃봉오리 속 (돌) 꽃잎 덮고 자다 꽃꿈에 깼네 (빛) 은은한 꽃향에 사랑의 다향 (달) 현실보다 생생한 연화 세계 (심) ... 25.7.23. 불한시사 합작시 청나라 말쯤 소주에 살았던 심복(沈復)이 지은 자전적 소설 《부생육기(浮生六記)》가 있다. 심복은 분경(盆景, 돌, 모래 따위로 산수의 경치를 꾸미어 놓은 분재)을 꾸미고 꽃나무를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뜻맞는 벗들과 시를 짓고 명산대천을 둘러본 풍류객이었다. 그는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아내 운(芸)을 두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서 저녁때면 연꽃 봉오리 속에 찻닢 봉지를 넣어 두었다가, 아침에 꽃이 피면 꺼내서 연꽃 향기가 스민 맑은 차를 끓여 내었다고 한다. 며칠 전 충청남도 아산의 신정호반에 꾸며진 백련밭에 꽃구경하러 갔었다. 소낙비를 피해 전통찻집 다연(茶煙)에 들렀는데, 말차를 마시며 운의 생각이 떠올라 합작 시제로 발구(發句)했다. 오래전에 《부생육기》를 읽었는데,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워한 적이 있다. 그 소설은 중국의 대문호 임어당(林語堂)도 극찬한 바 있으며, 한편 아름다운 여인 운에 대해서는 당대 문화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갈등(葛藤) 칡은 오른쪽 등은 왼쪽으로 (돌) 갈등을 엮으면 풀 수 없겠네 (빛) 얽힌 것은 언젠가 풀리는 법 (심) 땅 하늘로 위 아래로 푼다네 (달) ... 25.7.18. 불한시사 합작시 칡덩쿨과 등나무 넝쿨을 가리키는 ‘갈(葛)’과 ‘등(藤)’이 비유적인 의미의 "갈등"이란 말로 처음 나타난 것은 중국 송대의 선(禪)불교라고 알려졌다. ‘마음의 뒤엉킴’을 표현하고, 분별심(分別心)이나 시비심(是非心)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이는 선종문헌인 《벽암록》과 《전등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이 오늘날에는 심리적인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인 의견 충돌과 다툼을 뜻하는 말로 발전해 왔다. 칡은 오른쪽으로 등은 왼쪽으로 얽히듯, 갈등은 끊임없이 이 세상을 덩쿨 넝쿨로 감아올려 가고 있다. 그런데 어떤가? "갈등"은 원래 없었다. 칡과 등나무가 있고 지켜보는 내 마음이 있을 뿐인 것을. (옥광)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유상곡수(流觴曲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달) 붙쇠 기름에 꽃전을 띄우면 (빛) 시읊어 시름 달래는 풍류객 (돌) 시흥에 겨운지 절로 어깨춤 (심) ... 25.7.9. 불한시사 합작시 물에 쇠잔이 뜰 리가 만무한데, 이처럼 얕고 작은 도랑물에 술잔이 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국민학생(지금 초등학생) 때 경주 수학여행 가서 포석정(鮑石亭)을 보고 든 의문이었다. 돌아와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쇠잔이 아니고 뿔잔이란다" 하시며, 붓으로 '유상곡수(流觴曲水)' 네 글자를 한자로 써 보여 주셨다. 굽이친 물(曲水)에 술잔을 띄운다(流觴)는 뜻이었다. 잔이란 글자의 상(觴)에 뿔(角)이 들어가 있었다. 살펴보면 유상곡수의 풍류는 포석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유상곡수 풍습은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은 풍류놀이었다. 우리말의 잔치가 잔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잔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잔(盞), 배(盃, 杯), 상(觴)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하다. 나무나 토기 대신 천연 그대로 잔을 깎아 만들기에는 뿔이 가장 쉬웠으리라. 가볍고 깨지지 않으며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