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제79주년 광복절을 기려 7월 26일 상설전시관에서 심화전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를 연다. 상설전시관 대한제국실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독립운동가 나석주(羅錫疇, 1892~1926) 의사(義士)의 편지 7점을 일반에게 선보인다. 기존 연구 논문에서 내용이 공개된 적은 있으나 일반에게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공개된 <나석주 의사 편지>(국가등록문화유산)는 김구에게 쓴 편지 2점, 의열단 동지인 이승춘(이화익, 1900~1978)에게 쓴 편지 4점, 황해관(황익수, 1887~?)에게 쓴 편지 1점으로 모두 7점이다. 이 편지들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석주 의사의 의거 준비 과정과 ‘서른네 살을 일평생으로 마치길 작정’한 그의 결연한 각오를 확인할 수 있다. 나석주는 1921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에서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하는 한편, 의열단 등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으로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1926년 12월 28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일본 제국주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지난 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생들의 위문편지를 모아 입원 중인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오는 교사가 있다. 어제(15일), 이 시대의 마지막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이신 오희옥 지사 애국지사가 입원해 있는 서울중앙보훈병원을 찾아온 이는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성지고등학교(교장 목희상) 강연수 선생과 고3생인 전소민, 정지용, 김가연 학생들이다. “선생님께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솔선수범하시고 헌신하신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참가하신 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렵고 힘드셨을 텐데, 저 같으면 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성지고 3학년 정지용, 엽서 글 가운데- 강연수 선생은 올해 들어 학생들이 손수 쓴 엽서 96장을 한 장 한 장 두툼한 파일 2권에 담 아 전소민 양 등 3명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강연수 선생님은 올해로 벌써 4년째, 끊임없이 어머님(오희옥 지사)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용인의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고 기억,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올해, 기흥구의 성지고등학교로 전근한 뒤, 고3 수험생을 맡아 항상 바쁘실 텐데도 짬을 내어 수업을 마치고 병원을 찾아주셨습니다.
[우리문화신문= 중국 다렌 이윤옥 기자] 7월 4일(목) 저녁 5시, 인천항국제터미널을 떠난 대인훼리는 서해바다를 밤새 달려 아침 9시30분(현지시각) 다렌항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다. 우리 일행이란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에서 장학금을 받은 대학생들과 김겸 회장을 비롯한 이사 등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백두산 답사단(이하, 답사단)'을 말한다.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919년 3월 31일 화성군(현 화성시) 향남면 발안 장날을 기해 제자들과 지역민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을 이끌고 만세 시위에 앞장서다 일경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하자 흐르는 피를 손에 움켜쥐어 일경의 얼굴에 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장렬히 순국의 길을 걸은 독립투사다. 답사단은 다렌(大連)에서 전세버스에 올라 백두산 등정이 가까운 도시인 퉁화(通化)까지 장장 8시간의 긴 여정에 올랐다. 사실 다렌이라면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등 독립투사들이 갇혀 있었던 뤼순감옥을 들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부득이 일정상 다음을 기약하고 답사단을 실은 버스는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남만주벌판의 옥수수밭을 지나 북으로 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