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 농사일에 경험이 많은 농부)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윗글은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상강 무렵을 아름답게 표현한 내용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으로 말처럼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벌써 하루해의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습니다. 9월 하순까지도 언제 더위가 가시냐고 아우성쳤지만, 어느덧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노랗고 붉은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겨울을 재촉합니다. 이때는 추수도 마무리되고 겨울 채비에 들어가야 하지요.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박쥐는 짐승 가운데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인데 박쥐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박쥐는 짐승과 새가 싸울 때 짐승이 우세하자 새끼를 낳는 점을 들어 짐승 편에 들었다가, 다시 새가 우세하자 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새의 편에 들었다는 우화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박쥐는 변덕이 심한 동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쥐는 예부터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활용품 속에 그 모양을 그려 넣거나 공예품, 가구 장식, 건축 장식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또한 박쥐를 길상(吉祥)무늬로 여겨 베갯모에 수놓았을 때는 다산을 뜻하였고 아들을 점지해 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박쥐의 강한 번식력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자문화권에서는 모두 길한 동물로 여겼는데 특히 중국에서는 복(福) 자를 크게 써서 박쥐가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걸어두면 복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박쥐를 뜻하는 한자 편복(蝙蝠) 속에 들어 있는 복(蝠) 자를 복(福)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박쥐를 하늘의 쥐를 뜻하는 천서(天鼠)라고 부르거나 신선한 쥐라고 해서 선서(仙鼠)라고도 불렀습니다. 박쥐는 주로 밤에 움직이므로 우리말로는 밤쥐를 뜻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언론에 “사상 최악의 폭염…온열질환ㆍ가축폐사 잇따라” 같은 기사가 나오는 요즘입니다. 최근 온열질환자 수가 2,900명에 육박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불볕더위에 폐사한 양식장 어류와 가축은 667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MBC뉴스에 나온 한 배달노동자는 "지옥이 있다면 이게 지옥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닥이 너무 뜨겁습니다."라고 토로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입니다. 불볕더위가 아직 맹위를 떨쳐도 오는 가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흔히 처서를 말할 때 ’땅에서는 가을이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때입니다. 처서 무렵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들고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볕더위에 고생하고 있지만,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때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에 쌀이 12만 섬(1998년 기준)이나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통계도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합니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안 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며,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비를 섭섭하게 하는 모든 행위는 금지됩니다. 심지어 성교까지도 비를 섭섭하게 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으며,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절대 금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고 하지만, 말복이 남아 있어 불볕더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하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우리 겨레의 명절 설날이면서 십이지(十二支) 날 가운데 ‘갑진일(甲辰日)로 새해 ‘첫 용날’ 곧 상진일(上辰日)입니다. 이날 새벽 하늘에 사는 용이 땅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풀어놓고 가는데 이 우물물을 가장 먼저 길어다가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이 좋아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부녀자들은 이날 남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오기에 바빴지요. 《동국세시기》에는 이러한 풍습을 ‘용알뜨기’라 했습니다. 용의 알을 먼저 떠간 사람이 그 표시로 지푸라기를 잘라 우물에 띄워두면 다음에 온 사람은 용의 알이 있을 딴 우물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전라남도 어떤 지방에서는 첫용날에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지 않는데 만일 물을 길어오면 농사철 바쁜 때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난다고 믿었으며, 어촌에서는 어장(漁場)에 해를 입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지방에서는 첫 진일 전날에 집집이 물을 넉넉히 길어다 두었습니다. 또 첫용날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털이 용의 머리털처럼 길어진다고 해서 이날 여인들은 머리를 감았으며, 농가 아이들은 콩을 볶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해 곡식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믿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이 드는 날(立春) - 박목철 봄이 든다는데 버들강아지 움이나 틔웠는지 아지랑이 일 듯 나비도 날고, 꽃도 피고 그리움도 나른한 하품 하네 겨울이 눈 흘기니 봄은 살며시 가슴에 숨었다. 오늘은 갑진년 '봄이 드는 날 곧' 입춘(入春)입니다.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버들강아지도 겨울 눈 고깔을 벗고 고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려나요? 예전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어 산과 들에서 구한 재료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를 만들어 썼었습니다. 그래서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비틀어 쏙 빼면 나무와 껍질이 나누어집니다. 이것의 양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한쪽에 칼로 살짝 깎아내고 불면 봄을 부르는 멋진 버들피리가 되었지요. 버들피리뿐이 아니었습니다. 풀피리, 파피리, 보리피리처럼 소리 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악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속에 파묻혀 삽니다. 심지어 전철에서 어른들도 책을 손에 든 사람은 없고, 손말틀(모바일) 게임 삼매경입니다. 버들피리 불기도 순박한 놀이 곧 추억의 말뚝박기 등도 이젠 지나간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지요. 어쩌면 이제 세상은 순박한 버들피리를 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두째이며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동지(冬至)’입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해’의 부활이라는 큰 뜻을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첨치(冬至添齒)’ 곧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동지의 특별한 풍속을 보면 다가오는 새해를 잘 계획하라는 뜻으로 달력을 선물하는데 더위를 잘 견디라는 뜻으로 부채를 선물하는 단오 풍속과 함께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지의 또 다른 풍속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나 시할머니에게 버선을 지어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란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날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도 믿었지요. 그런데 이날 가장 보편적으로 지내는 풍속은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일 것입니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광균 시인은 “설야(雪夜)”라는 시에서 눈이 오는 정경을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라고 읊조립니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12월 그것도 대설도 지났지만, 눈이 올 기미는 없고 오히려 어제는 곳곳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심지어 스키장에는 호우특보가 내리기도 해 편의점 앞에 비옷이 깔렸고, 스키장 운영자와 스키를 타러 갔던 사람들이 울상을 지었다고 합니다. “조강에 나아갔다. 임금이 이르기를, ‘요사이 보건대, 일기가 점점 온화해지고 또한 눈이 내리지 않는다. 기도하는 것을 꼭 숭상하여 믿을 수는 없지만, 기설제(祈雪祭)를 또한 지내야 하겠다. 겨울철에 비와 눈이 많이 와야 땅이 흠뻑 젖어, 내년 봄농사가 가망이 있는 법이다.’ 하였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1516) 10월 17일 기록으로 중종 임금이 눈이 내리지 않으니, 기설제를 지내야겠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헌종 2년(1836) 12월 12일에는 기설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설제란 말이 모두 41번이나 나오는데 눈이 와야 할 시기에 눈이 오지 않는 것도 천재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인 입동(立冬)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드는 때지요.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놓고 한숨 돌리고 싶지만, 곧바로 닥쳐올 겨울 채비 때문에 또 바빠집니다. 입동 앞뒤로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인데 예전 겨울 반찬은 김치가 전부일 정도여서 ‘김장하기’는 우리 겨레의 주요 행사였습니다. 이때쯤 시골에서는 아낙들 여럿이 우물가에서 김장용 배추를 씻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지요. 잘 담근 김치는 항아리를 땅에 묻어두고 위에는 얼지 않게 볏짚으로 작은 집을 만들어 보관했는데 여기서 꺼낸 김치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동 때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나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등 집 안팎으로 겨울 채비로 바빴습니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듯이 집집마다 겨울 채비로 바쁜 가운데도 날짐승들의 먹거리를 생각할 줄 아는 더불어 살려는 마음도 잊지 않았습니다. 농촌에서는 입동 전에 보리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땅속에서 추위를 견딘 보리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입니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수증기가 땅 위에서 엉겨서 서리가 내리는 때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지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옛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라는 뜻입니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지요.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요긴하고,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