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초겨울의 서정 - 구상 초설(初雪) 첫눈을 맞을 양이면 행복한 이에겐 행복이 내려지고 불행한 사람에게 시름이 안겨진다. 보얗게 드리운 밤하늘을 헤치고 가노라면 등불의 거리는 고성소처럼 그윽한데 멀리 어디선가 기항지(地) 없는 뱃고동 같은 게 쉰 소리로 울려온다. 우리 겨레는 24절기에 맞춰 믿고 싶은 염원이 있고, 그것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입춘 날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믿고 실천해 왔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따위를 실천하는 미풍양속이다. 그런가 하면 삼월 삼짇날 “제비맞이”라는 풍속도 있는데 봄에 제비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제비에게 절을 세 번 하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풀었다가 다시 여미면 여름에 더위가 들지 않는다고 믿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에서 “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 첫눈은 내린다”라고 속삭인다. 우리 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반보기 - - 이명수 손님이 멀리서 찾아오면 중간쯤 나가 마중한다 제주공항에서 수월헌(水月軒)의 중간은 애월(涯月), 자구내 포구에서 한림, 월령코지, 명월 지나 애월 곽지모물까지 낮달과 함께 네 개의 바다를 건너간다 한가위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역시 우리 겨레의 큰 명절답게 이때 즐겼던 시절놀이(세시풍속)은 참으로 많다. 우선 손에 손을 잡고 둥근 달 아래에서 밤을 새워 돌고 도는 한가위 놀이의 대표 '강강술래'가 있다. 또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이 원님을 뽑아서 백성이 낸 송사를 판결하는 놀이 '원놀이', 잘 익은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고, 다음 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비손하는 풍습 올게심니(올벼심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베어 철 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는 ‘풋바심’,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기는 풍속 '밭고랑 기기'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반보기‘ 곧 중로상봉(中路相逢)도 있는데 한가위가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때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으로 중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코스모스 - 이춘우 어머니 닮은 코스모스 삽짝에 서서 날 반겨주고 떠나올 때도 손짓으로 나를 보냈다 "잘 살아야 한데이" 어머니의 걱정에 눈시울 뜨거워지고 나는 어느새 코스모스 키를 훌쩍 넘어섰다 코스모스, 우리말로 ‘살사리꽃’이라 한다. 앞장서서 가을을 맞이하는 꽃으로 예부터 시인, 가객들이 즐겨 노래로 읊조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해살이풀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1910년 무렵 건너왔다고 하며,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하늘거리는 모양이 참 아름답게 보여 ‘살사리꽃’이라고 했으리라 짐작된다. 다만 이 아름다운 말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코스모스의 잘못된 이름” 또는 “코스모스의 비표준어”라고 깎아내려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 이틀 뒤면 24절기의 열다섯째 <백로(白露)>다.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순절>이라 했다.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在郊那似在家肥 교외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살찌는 것만 하겠냐고 人笑冥鴻作計非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 잘못됐다 비웃지만 莫把去留論得失 가고 머무름으로 얻고 잃음을 말하지 말라 江南水闊網羅稀 강남에는 물이 넓고 그물도 드물다네 홀아비나 홀어미의 외로운 신세를 “짝 잃은 기러기 같다.”라고 하며, 짝사랑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로 ‘외기러기 짝사랑’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의가 좋은 동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통혼례식 때 신랑은 목기러기를 상 위에 놓고 두 번 절하는 전안지례례(奠雁之禮)를 한다. 이는 신랑이 신부를 맞아 기러기와 같이 백년해로하고 살기를 맹세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자신의 한시(漢詩) ‘영정안(詠庭雁)’ 곧 “뜰의 기러기를 노래함”에서 이 기러기를 색다르게 표현한다. 벼슬에서 물러나 숨어 사는 것이 더 슬기롭다는 것을 기러기에 비유하고 노래하고 있다. 백사는 말한다. 들판에 있는 것이 어찌 집에서 뒹굴뒹굴 살찌는 것만 하겠느냐고 말이다. 또 사람들이 기러기 세운 계획이 잘못됐다고 비웃지만, 나오고 물러감만을 가지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더위 그 까짓것 - 임인규 지독한 땡볕 측정온도는 38도씨 온몸에 땀이 줄줄 더위 그까짓 것 공사 현장 철근 위를 걸어봤니? 운동화 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살이 익을 정도다. 그래도 공사는 해야 하고 그래야 돈을 번다. 섭씨 2000도 3000도를 오르내리는 용광로 앞에서 방열복 입고 쇳물을 퍼 날라 보았는가? 더위 그까짓 것 그래도 쇳물은 부어야 하고 그래야 수도꼭지는 생산이 된다. 우리 겨레는 더위가 극성인 때 혀끝에서는 당기는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보양했다. 바로 그것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슬기로움인데 여름철의 더운 음식은 몸 안의 장기를 보호해 준다고 한다. 이 이열치열의 먹거리로는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실제로는 잉어와 오골계)으로 끓인 “용봉탕”, 검정깨로 만든 깻국 탕인 “임자수탕” 그리고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따위가 있다 여름철이면 사람 몸은 외부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계절보다 20∼30% 많은 양의 피가 모이게 된다. 이에 따라 체내의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부족하게 되고 몸 안의 온도가 떨어지는데, 이렇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금새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난하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이 시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지은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사청사우)>란 제목의 한시다. 최근 우리나라의 날씨는 한 언론에 “사흘째 전국 비…내일까지 최대 300㎜ 물벼락”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온 나라가 큰물로 난리를 치르고 있다. 오죽하면 ‘극한호우’란 어려운 한자말까지 쓸까? 이번 큰물로 온 나라엔 많은 재산 피해가 났음은 물론 안타깝게 인명 피해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곳에 따라 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환상적 탁족 - 복효근 한여름 염천을 피해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갔다 물에 잠긴 발을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쯤으로 보셨을까 이동순 시인께서 '환상적 탁족'이라 댓글을 달았다 기쁨의 상한선을 탁족에 두셨다니 시인이 누릴 수 있는 환상이 거기까지라는 듯 거기를 벗어나면 환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거나 그 어름까지가 시인이라는 뜻이었을까 지난 7월 7일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한다는 소서(小暑)였으며, 오는 7월 20일은 초복(初伏), 7월 30일 중복이 다가온다. 삼복 때는 한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로 이를 '삼복더위'라 하는데 찬바람틀(에어컨)도 없고,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도 없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가마솥더위를 견뎠을까? 우선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또한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하고 복날에 고기 따위로 국을 끓여 먹는 복달임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 내기도 하였다. 한편, 여인들은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하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긴 겨울 싸늘한 냉골에 누워 새우잠 주무시던 우리 어머니 파릇파릇 4월이 새순 돋으면 산나물 캐다 장에 내다 팔아 보리쌀 몇 됫박 사서이고 오시어 가파튼 보릿고개 헐떡헐떡 넘기셨지 저녁 밥상에 풋나물 뜯어 끓인 멀건 보리죽 철부지 5남매 삥 둘러앉아 걸신들린 듯 퍼먹는 모습 보시고 어머니 눈은 촉촉이 젖으셨지 ...이학주 시인의 <보릿고개 넘던 시절> 가운데 그제는 24절기 가운데 아홉째 망종(芒種)이었다. 망종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으로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알맞을 때다. 그러므로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절기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무렵은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때여서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한해 가운데 가장 바쁜 철이다. 그러나 예전엔 보리 베기 전에 늘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보릿고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단오 - 윤보영 음력 5월 5일 오늘은 단오! 내 그리움에 그네를 메고 그대에게 가면 어떻게 할 건데? 걱정마 왜 왔냐고 물으면 돌아오면 되니까 앞으로 간 만큼 뒤로 돌아오는게 그네니까...... 오늘은 우리 겨레가 예부터 설날ㆍ한식ㆍ한가위와 함께 4대 명절로 즐겼던 ‘단오’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 : 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으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절(重午節)은 오(五)의 수가 겹치는 음력 5월 5일을 말하는데, 우리 겨레는 이날을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생각했다. 음양철학에 따르면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여 좋은 수로 여겼다. 따라서 이 양의 수가 중복된 날은 단오와 함께 설(1월 1일), 삼짇날(3월 3일), 칠석(7월 7일), 중양절(9월 9일) 따위로 모두 명절이다. 단오에는 명절음식으로 수리떡ㆍ앵두화채ㆍ제호탕 등을 해 먹으며, 단옷날 아낙네들이 특별히 하는 화장 ‘단오장’ 풍속이 있고, 동지에 달력을 나눠주는 것과 함께, 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잡서」 오십수 신위(雜書 五十首 申緯) 士本四民之一也(사본사민지일야) 선비도 본래 사민 가운데 하나일 뿐 初非貴賤相懸者(초비귀천상현자) 처음부터 귀천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네 眼無丁字有虗名(안무정자유허명)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헛된 이름의 선비 있어 眞賈農工役於假(진가농공역어가) 참된 농공상(農工商)이 가짜에게 부림을 받네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민)은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습니다. 선비[士]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農]는 농사에 힘쓰며, 공장(工匠)은 공예(工藝)를 맡고, 상인(商人)은 물품과 재화를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종실록》 140권, 성종 13년 4월 15일 자에 나오는 기록이다. 조선시대 직업으로 인해 나뉘는 신분 제도 사농공상은 노비를 뺀 전체 사회구성원을 넷으로 나뉘었다. 직업은 신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자들은 신분을 상하ㆍ귀천으로 나눌 뿐만이 아니라 직업 또는 상하ㆍ귀천으로 구별했다. 19세기 전반에 시(詩)ㆍ서(書)ㆍ화(畵)의 3절로 유명했던 문인 신위(申緯)는 그의 한시 「잡서(雜書)」 오십수(五十首)에서 ”참된 농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