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인이 관리하는 송산(松山, 소나무가 많은 산)에서 소나무를 몰래 벌목하는 것은 비록 나라의 봉산(封山)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 뒤로는 각 감영과 각 관아에서 공적으로 쓰는 목재를 비변사(備邊司, 조선 시대의 최고 의결 기구)에 보고하면, 벌목을 허락하는 공문서를 일절 막아서 금지하고, 만일 공적으로 쓸 데가 있으면, 초기(草記, 《승정원일기》 기초자료)를 올리든지 혹은 경연(經筵)의 자리에서 아뢰어 임금이 결재한 다음에 공문서를 발송하게 하라는 뜻으로써 법식을 정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위는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년) 2월 1일 치 기록으로서 개인이 관리하는 산이라도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경복궁 등 조선시대 궁궐은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는데 이는 소나무가 나무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 폭이 좁으며 강도가 높고, 게다가 잘 뒤틀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또 벌레가 먹지 않으며, 송진이 있어 습기에도 잘 견뎠기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나무의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는 그때 가장 중요한 수송 수단이던 배를 만드는 조선재와 죽은 사람의 관을 짜는 데 썼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제학 변계량이 <화산별곡(華山別曲)>을 지어 바쳤으니, 그 가사[詞]는 이러하다. "화산 남 한수, 북은 조선의 명승지 백옥경(白玉京)이요 황금궐(黃金闕)이라. 평탄하고 통달한데 봉은 솟고 용은 날도다. 하늘이 지으신 형세이니 음양이 고를세라. 위, 도읍 경 긔 어떠하니잇고. 태조ㆍ태종이 창업하사 큰 경륜을 물려주시니, 위, 가져 지키는 경 긔 어떠하니잇고.“ 위는 《세종실록》 28권, 세종 7년(1425년) 4월 2일 기록으로 궁중에서 잔치음악으로 쓰이던 ‘송도가(頌禱歌)’로서 고려 이후 조선전기에 걸쳐 악장으로 쓰인 아악과 속악 가사를 모아 엮은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우리나라의 각종 제도와 문물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화산(華山)’은 삼각산의 다른 이름으로,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지요. 조선이 개국한 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나라의 기반이 안정되자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고, 세종이 나라를 힘써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맞이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고자 지은 것이 <화산별곡>으로 서울을 찬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전 어른들은 “사람들은 밥심으로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밥심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색해질 정도로 주식인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식습관의 변화와 대체 먹거리가 많아진 탓에 밥그릇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이는 농가와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25년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3.9kg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3.4% 줄어든 수치며,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30년 전인 1995년의 쌀 소비량과 견주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요. 과연 이렇게 쌀 소비량은 줄고 빵이나 간단한 대체 먹거리를 더 먹게 되는 현상이 바람직할까요? 한 한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밀가루는 서늘한 음식이기에 흡수가 잘 안되고, 장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장을 차게 해 좋지 않습니다. 또 밀가루가 기름과 만나면 장에 지방을 많이 끼게 합니다. 그래서 기름과 만난 밀가루는 더욱 피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식은 쌀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엔 쌀이 잘 맞는다는 말이며, 의학적으로 보면 성질이 따뜻하고, 흡수가 잘 되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