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의정 홍언필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 하인들이 "물렀거라! 영의정 대감 행차시다."를 외치자 이에 깜짝 놀란 홍언필이 손사래를 치면서 "조용히 하거라."라고 말합니다. 높은 벼슬아치가 초헌(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외바퀴 수레)이나 보교(조선시대에 벼슬아치들이 탄 사면으로 휘장을 두루고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타고 행차할 때는 으레 종들이 "썩 물렀거라(벽제소리)"를 외치는 것인데 홍언필은 이를 못 하게 한 것입니다. 홍언필(1476~154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사헌을 6번이나 지냈고, 우의정ㆍ좌의정ㆍ영의정을 했던 명신입니다. 이렇게 홍언필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지만 늘 겸손하고 조심하며, 처세에 허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런 홍언필을 두고 소심한 사람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것이 공직자의 표본이 아닐까요? 이 홍언필에게는 환갑잔치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의정에 올랐고, 그의 아들들도 판서에 오른 자랑스러운 집안이어서 집안사람들은 크게 잔치를 치릅니다. 기생을 불러 노래를 시키면서 걸판지게 잔치를 엽니다. 그러나 이에 홍언필은 “내가 외람되이 한 나라의 높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와 부여군은 지난 10월 1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소산성에 대한 17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추가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17차 발굴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소산성 내 가장 높고 넓은 평탄한 터를 조사하여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임을 알 수 있는 대지조성과 굴립주 건물터 곧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과 와적기단 건물터를 발견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 발굴조사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얼음을 넣어 두는 빙고(氷庫)가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부소산성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입니다. 빙고는 17차 조사구역 동쪽 끝부분에 있는데 평면은 네모 모양이며 내부 단면은 U자형이고, 규모는 동서 길이 약 7m, 남북 너비 약 8m, 깊이는 2.5m지요. 바닥 가운데에 길이 230cm, 너비 130cm, 깊이 50cm로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든 뒤 남쪽에 깬돌을 채운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빙고 안에서 생긴 물을 빼내기 위한 물 저장고(집수정)로 짐작됩니다. 이러한 빙고는 얼음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특수시설로 강력한 왕권과 국가 권력이 있어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문화신문>에는 한자말 ‘가치(價値)’ 대신 우리말 ‘값어치’란 말을 씁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가치’와 ‘값어치’는 같은 말이 아니라면서 바꿔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 진주에서 ‘토박이말바라기’ 상임이사(맡음빛)를 하고 있는 이창수 님께서는 오히려 ‘값’이나 ‘값어치’가 ‘가치를 껴안는 폭 넓은 말이라며 ‘값’이나 ‘값어치’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우리문화신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값어치’를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가치”라고 풀이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쓸모나 가치”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또 우리 말꽃지음몬(문학작품)에도 이 말을 부려 써서 사람의 소중함과 삶의 무게를 멋지게 나타냈는데 예를 들면 안정효 님의 《하얀 전쟁》에서는 “죽음의 값어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무게로 측정된다.”라고 표현했다면서 꼭 ‘가치’란 말을 쓸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값어치’의 뜻풀이 속에는 ‘가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물건값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성과 쓸모까지 아우르는 큰 그릇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