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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됐던 안회남의 소설 《탄갱(炭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신지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일제 말기인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북규슈 사가현 탄광에 강제동원됐던 소설가 안회남(1909~?)이 징용 경험을 바탕으로 광복 직후 펴냈던 자전적 소설 《탄갱(炭坑)》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이 소설은 안회남이 잡지 《민성(民聲)》을 통해 14회에 걸쳐 연재했던 것으로 1945년 12월 25일 《민성》 창간호는 '탄갱' 첫 회를 연재하면서 작가의 징용 체험에서 비롯한 작품이라고 소개했지요. 또 잡지는 "우리 문단의 중진 안회남씨가 작년 여름에 포악한 일본의 학정으로 규슈(九州) 탄광에 징용당해 갔던 사실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울 것이다. 수많은 동포와 함께 괭이를 들고 탄갱 속에서 굶주림과 헐벗음과 한숨으로 날을 보내었으니 여기 실리는 '탄갱'이야말로 그가 친히 체험한 생지옥의 적나라한 기록"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소설 《탄갱》에 소개된 강제징용은 일제가 1938년 4월 공포한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에서 비롯되었지요. 특히 일제는 노동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는데,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113만 혹은 146만 명에 달하는 것으

고종은 심장마비로 죽은 게 아니라 독살됐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왕 전하가 덕수궁(德壽宮) 함녕전(咸寧殿)에서 승하하였다.” 이는 《순종실록부록》 순종 12년(1919년) 1월 21일 기록입니다. 101년 전 오늘 고종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로는 뇌일혈 또는 심장마비로 인한 자연사였지만, 건강하던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로 번졌습니다.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갔으며, 고종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는 데서 고종의 독살설이 일었다고 하지요. 또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가, 황제의 이가 모두 입속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30센티미터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는 것도 독살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고종의 장례는 국장이 아닌 대행태왕의 장례로 격하되었으며, 조선의 전통 장례가 아닌 일본 황족의 장례였고 행렬에만 조선 관례대로 하는 왜곡된 장례였습니다. 국장 절차를 기록한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와 국장에서 의장 행렬을 담당

오늘은 대한, 호박죽 먹고 생강차 마시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넷째로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입니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꼭 소한보다 더 춥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끼 밥 먹기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거나 걸렀지요. 또 죽을 먹는 다른 까닭은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의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을 일컬어 겨울을 매듭짓는 절기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지요. 그 절분의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됩니다. 이즈음에 해 먹는 음식은 호박죽인데 겨울철 호박죽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어 손발이 찬 사람이 먹으면 매우 좋습니다. 또한, 호박 속 풍부한 비타민A가 감기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 준다고 하지요. 또 추위를 이기는 데에는 생강차만 한 마실거리도

세월호 참사 다큐 ‘부재의 기억’ 아카데미 후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내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습니다. ‘부재의 기억‘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그날의 현장에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지요.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모두 구조되었다.’라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시간이 채 안 된 오후 1시 30분 무렵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생사 불명이라고 발표하면서 ’전원구조‘ 뉴스가 오보임이 밝혀졌지요. 그 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세월호 이야기 좀 그만하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제대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부재의 기억‘ 영화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은 "정말 기쁘다. <부재의 기억>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

편강렬 의사, ‘동경에 조선인 총독을 두겠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1년 전인 1929년 오늘(1월 16일)은 독립운동가 편강렬(片康烈)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편강렬 의사는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당하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16살의 어린 나이에 직접 의병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때 이강년(李康年) 의병장을 찾아가 군사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발탁되었지요. 1908년 3월 각도 의병대장들은 이인영(李麟榮)을 13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이때 이강년 의병진의 선봉장으로 발탁되어 100여 명의 선발대를 인솔하여 양주에서 일전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하였습니다. 그 뒤 구월산주비단사건(九月山籌備團事件)에 관련되어 해주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를 수차례 드나들었으며, 1923년 7월 산해관(山海關)에서 김이대(金履大), 백남준(白南俊) 등과 함께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습니다. 의성단은 장춘(長春), 길림(吉林) 등 대도시를 활동무대로 삼아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파괴, 조선총독과 관동장관 암살, 조선 내 관공서 파괴, 군자금 모집을 주된 활동목표로 삼았지요. 그러다 1924년 7월 24일 의성단에 잠입하여 밀정 활

영화 ‘기생충’의 '소주 한잔'과 소주 이야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마른하늘에 비구름 / 조금씩 밀려와 /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빨간 내 오른쪽 뺨에 / 이제야 / 비가 오네” 이 노래는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 ‘기생충’의 주제가 '소주 한잔' 가사입니다. 배우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잔'은 오스카 주제가상 예비후보로 지명됐는데, 봉준호 감독은 "그 노래를 듣는 것과 안 듣는 것의 여운이 살짝 다르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뚜벅뚜벅 간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주는 영화 ‘기생충’에 주제가가 될 정도로 우리 겨레에겐 친근한 술입니다. 우리나라 문헌으로 술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후기 문신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帝王韻紀) 》의 동명성왕 건국담에 나오는 술에 얽힌 설화가 처음입니다. 그러나 증류주인 안동소주는 신라시대 때부터 그 기원을 잡지요.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였고,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주는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증류법이 원(元)

남쪽의 신라ㆍ북쪽의 발해, ‘남북국시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여 씨(백제 왕족)가 망하고 고 씨(고구려 왕족)가 망하자 김 씨(신라 왕족)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 했는데, 이것이 남북국이다. 그래서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 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은 어떤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이다. 끝끝내 발해사를 쓰지 않아서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이 누구의 땅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여진을 꾸짖고자 했지만 할 수 없었고, 거란을 혼내려 했지만, 그 근거가 없었다.“ 이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그의 책 《발해고(渤海考)》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학교 국사시간에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시대’가 있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가 있던 시기에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에 분명히 고구려 사람 대조영(大祚榮)이 698년에 ‘발해(渤海)’라는 나라를 세워 228년 동안 번성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라고 해서는 안 되고 유득공의 말처럼 ‘남북국시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신비스런 성덕대왕신종 소리 들어보셨나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지만, 그 가운데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듣고는 다른 종소리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는 장중하면서도 맑은소리와 유난히 길면서도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려주어 듣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고고학자 켄멜은 이 종을 일컬어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으뜸 종”이라고 평했습니다.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윗부분에 있는 음관(音管)과 종구(鐘口) 바로 밑에 파인 명동(鳴洞)이라고 합니다. 음통(音筒) 또는 용통(甬筒)이라고도 하는 음관은 종의 음질(音質)과 음색(音色)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 명동 곧 울림통은 종을 때렸을 때 정상음이 끝난 뒤 센소리가 사라지고 긴 여운이 남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한국종 가운데서도 성덕대왕신종은 방사선으로 투시해서 본 결과 종신 안에는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주조되었으며, 종신(鐘身)의 모든 부분이 균일한 두께를 하고 있었다고 하지요. 또 어린아이 우는 소리와 비슷한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