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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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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잘못한 사람을 벌하는 ‘조리돌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이야 잘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개인이 별도로 벌을 줄 수가 없고, 법에 따라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간통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일 때는 관아를 통해서 벌을 받도록 했지만,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마을 어른들이 발의한 뒤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벌을 주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조리돌림’과 ‘덕석말이’가 있지요. 먼저 ‘조리돌림’은 주로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서 있었는데, 전라남도 지방의 ‘화지게’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벌을 주기로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을 모은 뒤에 죄를 지은 사람의 등에 북을 달아매고 죄상을 적어 붙인 다음, 풍물꾼을 앞세워 마을을 몇 바퀴 돌아서 그 죄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이것은 죄지은 사람을 마을에서 쫓아내지는 않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창피를 주어 심리적 압박을 줌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도록 했던 풍속입니다. 그리고 ‘멍석말이’ 또는 ‘덕석말이’는 역시 마을에서 못된 짓을 한 이에게 벌을 주는 방식인데 ‘덕석몰이’라고도 합니다. 벌을 주는 방식은 죄지은 사람을 마을 사람들

견주기 등 우리말을 쓰는 고유무술 ‘택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2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이자 민속놀이에는 독특한 움직임으로 다리걸기, 발차기, 던지기 등의 기술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택견’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택견’이라고 나오지만, 대한체육회에는 ’태껸‘으로 올라 있으며, 탁견, 택기연(擇其緣), 착견, 각희(脚戱), 비각술(飛脚術)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 이 ’택견‘은 1983년 6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에 따라 택견’을 수련하는 체육관을 도장으로 부르지 않고 ’전수관(傳修館)’이라고 부릅니다. 택견이 문헌상 처음 나타난 시기는 18세기 초반으로 당시는 ‘탁견(托肩)’이라고 했는데 영조 4년(1728)에 김민순(金敏淳)이 쓴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사설시조에서 처음 보이지요. 이후 정조 22년(1798)에 이만영이 펴낸 《재물보(才物譜)》와 최영년이 1921년에 쓴 《해동죽지(海東竹枝)》에도 탁견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우리 문헌뿐만 아니라 1895년에 스튜어트 쿨린이 쓴 《코리언 게임스》에도 ‘HTAIK-KYEN-HA_KI(택견하기)’ 기록이 등장하지요. 택견의 수련과정은 크게 혼자 익히기(개인 수련), 마주메기기(상대 수련) 등이

애틋한 심경을 읊은 서도민요 ‘수심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생일장은 춘몽이 되고 세상공명은 꿈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가는 것 등달아 나어이 할까요 이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으로서 남도의 ‘육자배기’와 함께 우리 민요의 쌍벽을 이루는 소리로 꼽지요. ‘수심가’는 섬세한 감정과 호흡을 담은 소리인데 지난 1월 26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 음악회>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인 유지숙 명창의 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대개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애틋한 심경을 읊은 것인데, 열자 안팎으로 된 '가'와 '나' 두 부분과 "생각을 하니…나 어이 할까요"로 된 '다' 부분이 1절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가ㆍ나ㆍ다로 나누어진 짜임새는 초장과 중장과 종장으로 된 시조나 남도민요 육자배기의 구성과 같아서 전통 음악의 노래에 나타나는 형식의 공통점을 보여 줍니다. 〈수심가〉를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공명가’와 ‘초한가’와 같은 잡가나 ‘엮음 수심가’의 끝에서는 수심가 한 절로 끝맺음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든지, 서도소리의 특징을 '수심가조'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소리의 형

옥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옥장(玉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가무형문화재에는 옥 종류의 돌을 이용하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는 장인 ‘옥장(玉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 등에서는 옥공예가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그 까닭은 중국에서 돌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옥’을 ‘오덕(五德)’에 견줬기 때문입니다. 곧 옥에서 온화한 광택이 나는데 이를 ‘인(仁)’으로, 또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보이는데 이는 ‘의(義)’로, 두드리면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지(智)’로, 깨져도 굽히지 않는 성질을 ‘용(勇)’으로,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내지만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엄(嚴)’을 상징한다고 하여 이를 오덕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옥으로는 옥피리ㆍ옥경(玉磬) 등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 연극에 썼고, 의례에 쓰이는 도구로서는 대규(大圭)ㆍ규장(圭璋), 꾸미개(장신구)로는 옥비녀ㆍ옥가락지ㆍ옥구슬ㆍ패옥(임금ㆍ왕비의 법복이나 문무백관의 조복(朝服) 좌우에 늘여 차던 옥)ㆍ옥새(임금의 도장) 등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연회에 사용했던 그릇이 모두 백옥(白玉)으로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으며, 조선 중종 때에는 옥장들이 몰래 옥을 캐어 옥기(玉器)를

용의 해, 근정전 칠조룡 보러갈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입니다. 그 용을 바라보는 눈이 동양과 서양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드래곤(dragon)이라 하여 날개가 달리고 다리가 있으며, 입에서는 뜨거운 불을 내뿜는데 파괴를 의미하는 악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물을 관장하는 신성한 영물로 대접받습니다. 그러면 동양에서 구체적인 용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중국의 오랜 문헌인 《광아(廣雅)》 익조(翼條)에 나온 용의 모습을 보면 머리는 낙타[駝]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 소리와 같으며,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용이 임금이나 황제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며, 황제는 발톱이 7개인 칠조룡(七爪龍)으로 표현하고, 제후들은 발톱이 5개인 5조룡(五爪龍)이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제후국임을 자처한 조선은 5조룡(五爪龍)을 썼습니다,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했던 고종은 제후가

명나라 황제가 달라고 한 닥종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1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조사(正朝使) 유수강(柳守剛)이 먼저 통사(通事)를 보내와서 말하기를, ‘황제가 희고 두꺼운 닥지[白厚楮紙]를 구합니다.’ 하니, 조지소(造紙所, 조선 시대, 종이 뜨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보내어 준비하게 하였다.” 이는 세조실록 30권, 《세조실록》 9년(1463년) 2월 19일 치에 보이는 것으로 명나라 황제가 희고 두꺼운 닥지를 요청했다는 기록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중국인들은 신라시대 때부터 우리 종이를 ‘계림지(鷄林紙)’라 불렀고, 이후 ‘고려지(高麗紙)’, ‘조선지(朝鮮紙)’라고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고려나 조선 사신들이 들고 가는 선물에 ‘종이’가 있었다는 데서 우리 종이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때 중국 사람들은 우리 종이를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착각하기까지 했는데, 명나라 《일통지(一統志)》 때 와서야 비로소 닥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확인한 기록이 보인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서명웅이 지은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 보면 “송나라 사람들이 여러 나라 종이를 견줄 때 반드시 고려지를 으뜸으로 쳤다. 우리나라의 종이는 방망이로 두드리는

‘척사대회’ 대신 ‘윷놀이한마당’으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1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해 정월대보름을 앞둔 25일 머니S라는 언론에는 “평택시는 '척사대회'라는 용어 대신 '윷놀이대회'를 사용할 것을 민간에 권고하는 한편, 시에서 진행하는 관련 행사에서도 '윷놀이대회'를 공식 명칭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가운데 줄임) 각 마을에서 펼쳐진 윷놀이대회는 '던질 척(擲)'의 '윷 사(柶)'를 사용해 '척사대회'로 불려 왔다. 하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척사'의 뜻이 쉽게 해석되지 않고, 쉬운 우리말인 '윷놀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택시는 용어 순화를 민간에 당부했다.”라는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평택시는 우리말 앞장서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 걸려 있는 펼침막을 보면 윷놀이대회가 아닌 여전히 ‘척사대회’라고 쓴 데가 많습니다. 한 작가의 글에 보면 문해력 곧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강조하면서 ‘금일(今日)에 만나요.’를 금요일에 만나자고 잘못 인식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 우리말 ‘오늘’이라고 하지 한자말을 써서 ’금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쉬운 우리말(토박이말)을 쓴다면 한자를 몰라서 문해력이 떨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