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문화일보에는 “강풍타고 번지는 ‘괴물산불’ … 안동 거쳐 청송까지 덮친다.”란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불이 나면 속수무책입니다만 예전에는 건물이 거의 나무로 된 주택이어서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辟邪)시설을 곳곳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 월대 모서리와 창덕궁 대조전, 창경궁 명전전, 덕수궁 중화전, 경희궁 숭정전 등 각 궁궐의 정전(正殿) 앞에 가면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대체로 청동 빛깔을 띤 넓적한 독이 놓여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무엇일까요? 이름하여 ‘‘드므입니다. 이를 어떤 이들은 향로나 쓰레기통으로 잘못 알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辟邪)시설이지요. 옛날엔 ‘불’을 관장하고 불을 일으키는 재앙 화마(火魔)가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화마는 아주 험상궂게 생겼지만, 정작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었지요. 이 화마가 어느 날 한 집에 불을 내려고 내려왔다가 드므의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너무나 험상궂게 생긴 것에 기겁하여 도망쳤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중요한 건축물들에는 이 드므를 설치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2022년 10월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정조대왕(1752~1800) 탄신 270돌을 기려 ‘독서대왕 정조의 글과 글씨’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세종대왕, 영조 임금과 더불어 조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쌓고 신도시 수원을 건설해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군주였는데 이 전시회로 우리는 정조대왕의 삶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전시회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정조의 대표 유물인 《홍재전서(弘齋全書)》 100책이었지요. 독서로 글짓기의 기초를 다진 정조는 나라 경영에 대한 자기 생각과 마음을 담은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가족과 신하를 위해 지은 글도 많은데 이를 모두 모아 만든 문집이 《홍재전서》입니다. 유난히 책을 사랑하며 학문정치를 추구했던 정조의 삶과 철학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모두 184권 100책으로 이루어진 《홍재전서》는 조선 역대 임금이 쓴 책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며, 펴낼 때 쓴 금속활자는 정조 때에 만든 정리자(整理字)입니다. 내용은 시문뿐만 아니라 신하들과의 응답, 해당관서의 기록에 대한 최종 판결, 재위 기간에 펴낸 서적의 해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이 다수 포함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7 1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5 5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4 100원까지 1개월이자 원금의 백분의 2.5(아래 줄임) 1원 이내의 것이면 한 달 이자가 원금의 백분의 7이라고 하엿스니까 7전(錢)임니다그려. 한달에 7전이니까 기한까지 넉달이면 28전이요 연리로 계산한다 하면 1년에 84전. 즉 연리 8할4푼의 이자임니다. 연리 8할4품의 이자! 아! 얼마나 무서운 폭리냐!“ 이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33호(1930년10월01일)에 나온 “지상공개(誌上公開) 폭리대취체(暴利大取締-단속, 제2회), 젼당포ㆍ셋집ㆍ양복점(洋服店)”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금이야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엔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 따위를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는 조건에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금융업 ‘전당포(典當舖)’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급하게 돈이 쓸 데가 생기면 집안에 있던 온갖 물건을 전당포에 가서 전당을 잡히면서 한 푼이라고 더 받으려고 전당포 주인에게 사정을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별건곤》은 연리 84%나 되는 이자에 폭리라며 고발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