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MBC 연예뉴스에는 <"난 친일파 이인직 후손"…가수 전범선 고백 재주목>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뉴스에서 “최근 전범선은 유튜브 채널 뮤지엄피의 영상에 출연해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가 이인직이라고 밝혔다. 이인직은 '혈의 누' 등을 집필한 일제강점기 신소설 작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된 친일파다. 해당 영상에서 전범선은 ‘저희 할아버지가 엄청난 친일파셨다.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 옆에서 일본어 통역을 했던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우리나라를 넘기겠다'는 이완용의 말을 일본어로 통역한 사람이 이인직’이라고 설명했다.”라고 이어졌습니다. 전범선은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최근 한국의 200년 근현대사를 정리한 책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펴내기도 한 인재인데, 조상의 친일 해적을 고백한 대단히 용기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창시절 이인직이 《혈(血)의 누(淚, 1906)》, 《귀(鬼)의 성(聲, 1908)》, 《치악산(雉岳山, 1908)》, 《은세계(銀世界, 1913)》 따위 신소설을 쓴 작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특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냈다. 이보다 앞서 상이 《무원록》이란 책은 사형에 관한 옥사를 판결하기 위한 것인데 본문이 까다로워 누구나 쉽게 알기 어렵다고 하여, 능은군(綾恩君) 구윤명(具允明)에게 언해를 짓도록 명하였다. 이때 와서 책이 완성되자 형조에 명해 간행하여 안팎에 널리 퍼뜨리도록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1791년) 3월 15일 내용으로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내도록 했다는 기록입니다. 원래 《무원록(無冤錄)》은 '죽은 사람에게 원통함(冤)이 남지 않도록 하라'는 뜻을 담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 수사 및 법의학 지침서입니다. 본래 중국 원나라의 왕여가 1308년에 펴낸 책이었습니다. 먼저 세종은 최치운 등에게 명하여 원나라의 원본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하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펴냈는데 1442년부터 조선의 모든 법률적 검시는 이 책의 규정을 따르도록 법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보하여 영조 24년 (1748년)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을 펴냈고, 정조 때에 한문을 모르는 지방의 하급 관리도 쉽게 읽고 수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 토를 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1442년) 8월 12일에는 “신개ㆍ권제 등이 지은 《고려사》를 올렸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고려사》는 조선 전기에 왕명으로 편찬된 고려 왕조의 공식 역사서입니다. 《고려사》는 세종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하여 1451년(문종 원년)에 완성되었고, 김종서와 정인지 등이 주도하여 완성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총망라하여 오늘날 고려사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사료입니다. 임금의 연대기인 '세가', 제도와 문화를 기록한 '지', 인물 개인의 일대기인 '열전', '연표' 등으로 구성된 인물ㆍ제도 중심의 역사서입니다. 역사를 두려워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려고 했던 세종은 사적 사실과 지식을 백성들과 더불어 삶의 등대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세종은 임금이 되자마자 잘못된 《고려사》를 바로 잡게 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통치 내내 매달려도 못 끝냈을 정도로 역사 기술을 철저히 하고자 했지요.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문종 1년(1451)에야 인물과 제도 중심의 종합 역사서 곧 기전체 《고려사》 펴냄을 끝내고 그다음 해 시간 흐름 중심으로 한 편년체 《고려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