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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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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선 ‘명태’ 이름은 수십 가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이야기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그대 너무 맛이 있어요 감사합니데이 위 노래는 2002년 발표한 강산에의 7집 음반에 있는 노래로 함경도 사투리가 맛깔나는 ‘명태’입니다. 국민 생선 명태는 지방, 크기, 어획 방법 등등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가장 흔하게 불리는 별명은 북어(北魚)지요. 명태는 북어말고도 이름이 참 많은데 우선 생태(生太), 동태(凍太), 노가리가 있고, 알을 막 낳고 잡힌 명태는 꺽태, 알을 밴 채로 잡힌 명태는 난태, 눈과 바람을 맞으며 낮에 녹았다가 밤에 얼기를 너덧 달 반복하면 해장국의 으뜸 재료인 황태가 됩니다. 재미난 것은 황태를 만들 때 바람이 많이 불면 육질이 흐물흐물해진 찐태가 되고, 너무 추우면 꽁꽁 얼어붙은 백태가 되며, 너무 따뜻해지면 검게 변해서 먹태가 돼 상품 값어치가 떨어지고 서자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명태를 잡을 때 따라 봄에 잡은 것은 춘태, 늦봄 마지막에 잡은 것은 막물태,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라고 부르며, 어획시기에 따라 일태, 이태, 삼태

작지만 당찬, 합주를 이끄는 악기 피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 국악기 가운데 관악기로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가 있습니다. 피리는 관악기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향피리의 길이가 보통 30cm 정도고 세피리는 더 작아서 지름이 1cm도 안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악기 편성에서 중심이 되었고, 작지만 다른 큰 악기들을 압도할 만큼 큰 소리가 나는 당찬 악기입니다. 피리 가운데 향피리는 향악 연주에서 주선율을 맡습니다. 특히 많이 연주되는 여민락, 영산회상(靈山會相), 수제천 따위에서 핵심 관악기로 연주되고 있지요. 향피리는 당피리(唐)와 함께 고려 때 중요한 관악기의 하나로 연주됐다고 《고려사》 권71 “악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리의 그림이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실록》 권132 “오례의(五禮儀)”의 악기도설인데 좀 더 자세한 향피리의 그림과 설명은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7에 나오지요. 당피리는 성종 때 당비파 등과 함께 종묘제례악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 등에서 연주됐다고 《악학궤범》 권2에 나오는데 지금도 낙양춘(洛陽春), 보허자(步虛子), 본령(本令) 따위 연주에서 합주를 이끌어 가는 주선율 악기입니다. 또 세피리는 몸통이 향피리

조선말기 과거에 대리시험 본 거벽ㆍ사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시소(試所, 과거를 치르던 곳)의 말을 듣건대 책을 들고 따라왔다가 금란소(禁亂所)에 잡힌 된 사람이 퍽 많았다고 했다. (가운데 줄임) 또다시 범할 적에는 결단코 덮어줄 수가 없을 것이니, 성균관(成均館)이 여러 유생을 타일러서, 다음에는 과장 안에 책을 들고 따라 들어오는 난잡한 폐단들을 다시 더 거듭 못 하게 하라." 하였다. 위는 《정조실록》 정조 7년(1783년) 9월 9일 치 기록입니다. 조선 말기 과거시험은 심각한 부패로 물들었습니다. 특히 부유한 사대부들은 즐기며 한가롭게 노느라 평소 붓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선비를 집에 데리고 있다가 과거시험이 있으면 시험장에 데리고 들어가 대신 글을 짓거나 쓰게 했습니다. 요즘의 대리시험과 같은 것이지요. 이때 글을 짓는 사람은 거벽(巨擘, 학식이나 어떤 전문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글씨를 쓰는 사람은 베껴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사수(寫手)라 했습니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허경진 옮김, 서해문집)》에 보면 그들은 드러누워 조보(朝報) 곧 승정원의 발표사항을 필사해서 배포하는 관보를 들춰보다가 과거를 연다는 기사를 보면 “거벽과 사수는 어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4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 문헌으로 술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제왕운기》의 동명성왕 건국담에 나오는 술에 얽힌 설화입니다. 그러나 증류주인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지요.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였고,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밑술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고 하여 노주(露酒), 불을 이용한다고 하여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 기주(氣酒) 따위로도 불립니다. 의서(醫書)에는 소주가 약용으로 쓰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특히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를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안동 지역에서는 상처에 소주를 바르고 배앓이, 식용증진, 소화불량에 소주를 썼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소주는 이처럼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기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고 작은 잔에 마셨고 따라서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전통 소주는 소줏고리라는 증류기로 증류해서 만드는데 감홍로, 문배술, 안동소주, 옥로주

종묘제례악 연주할 때 쓰는 ‘축’과 ‘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4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종묘제례악을 연주할 때 쓰이는 독특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축(祝)’이란 악기는 종묘제례악에서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종묘제례악을 끝낼 때 쓰는 ‘어(敔)’라는 악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축과 어 두 악기는 짝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악기는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와 축은 ‘방대’라는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므로 서서 연주하지요. ‘축’은 네모진 나무 상자 위판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무 방망이를 세워 상자 밑바닥을 내려쳐서 소리를 냅니다. 축은 양의 상징으로 동쪽에 자리 잡고, 겉면은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으로 칠하며 사면에는 산수화를 그립니다. 축을 치는 수직적인 동작은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어’는 나무를 엎드린 호랑이의 모습으로 깎아 만든 악기지요. 호랑이의 등에는 등줄기를 따라 꼬리 부분까지 27개 톱니를 길게 박아 놓았습니다. 둥근 대나무 끝을 아홉 가닥으로 쪼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는 꼬리 쪽으로 한번 훑어 내립니다. 이러기를 세 번 한 다음 박을 세 번 울려 음악을 끝내는 것이지요. 어는 서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개 흰 칠을 하고

오늘은 처서, 젖은 마음을 땡볕에 포쇄해볼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4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넷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처서(處署)’입니다. 보름 전에 있었던 열셋째 절기 ‘입추(立秋)’가 가을에 드는 날이라는 뜻이었지만, 이후 말복이 오고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제 처서가 되어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들게 됩니다. "처서가 지나면 참외맛이 없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는 본격적으로 선선해집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벼가 여무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처서에 비가 내리는데 내일은 다시 활짝 개서 여물어가는 벼 이삭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되면 선비들은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립니다.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 포쇄(曝)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음건(陰乾) 곧 그늘에 말리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에 포쇄별관을 보내 실록을 포쇄하는 일이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