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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진향(眞香),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펴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에서 전통가곡의 명맥을 이어 온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최수보와 박효관에게 배웠고,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조선정악전습소>의 학감, 대정권번과 조선권번의 사범, 특히 1926년부터<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 가사, 시조를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제자들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등이며 이들은 가곡, 가사, 시조의 악보를 제작해서 학생과 일반인 전수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특히 조선권번에서 여창가곡을 배운 기녀 제자, 김진향(眞香)은 1993년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내서 악계에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10년대 이후, 하규일은 권번에서 기녀들에게 가곡을 지도해 왔다. 국권을 잃은 후부터는 관기제도가 폐지되었고, 일반 시중에서는 기생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평양의 기성권번이나, 서울의 광교조합(廣橋組合) 등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유명한 기생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교조합은 뒤에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곳 출신

우리가 다시 복원해야 할 시간을 만들자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5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일상의 회복과 자연과의 만남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지금 한 나라의 사회와 세계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코로나 19’와 연관 지어 세종 시절과 견주어 살펴보자. 지난 2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 19’는 한마디로 일상의 일탈로 평범하게 지내던 일상의 반란이라 칭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상의 마비’인 셈이다. 일상의 마비란 무엇인가. 줄여서 말하면 첫째는 자연과의 통로가 막힘이요 둘째는 일상생활의 파괴다. 먼저 자연과의 괴리를 보자. 인간의 발전이라 하는 것은 자연을 개척하며 이루어 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퓰리처상 수상작, 문학사상, 2013)를 보면 남미를 침공할 때 원주민 8만여 명 가운데 말과 총에 8천여 명이 죽고 나머지 95%의 사람들은 유럽사람들이 가지고 온 홍역, 천연두,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었다고 한다. 지금도 국지전과 세균에 의해 인간의 일상이 뒤틀리고 있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인간 생활에 대한 명제로 첫째는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는 매일 길

혈액형으로 본 일본 남자의 애인 찾기는?

일본인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짐작한다 [맛있는 일본 이야기 566]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야후제팬 뉴스 가운데 ”남자의 혈액형별로 본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이란 제목의 ’메루모(https://news.merumo.ne.jp)‘ 기사가 눈에 확 띈다. 일본도 요사이 태풍에, 코로나에, 아베 총리 후임의 입후보자 관련 기사들로 넘치는 가운데 ’혈액형 관련 연애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 있어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형 남자는 여자가 경제 감각이 뛰어나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상대와 혼인하고 싶어 한다. / B형 남자는 여자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포용력을 가졌다면 됐다고 한다. / O형 남자는 여자가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거나 정열을 느꼈을 때 혼인 상대로 삼고 싶어 한다. / AB형 남자는 여자의 유연한 대응력이나 지성에 접했을 때다. 뒤집으면 위에서 말한 혈액형의 남자를 만났을 때 그 점에 유의하여 접근하면 혼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다면 엑?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혈액형 따위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과 행동 양식, 직업의 적성과

전통가곡의 대(代)를 이어 준 하규일 사범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오늘날, 전통 가곡(歌曲)이 한국의 대표적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공헌해 온 인물은 하나둘이 아니다. 멀리 조선 전기, 세조 때의 음악을 싣고 있는 《대악후보》에도 가곡의 전신인 만대엽이 보이고, 그 뒤 《금합자보》를 지은 선조 때의 안상을 비롯하여 광해군 때에는 《양금신보》의 양덕수, 《현금동문류기》의 이득윤, 숙종 때에는 《현금신증가령》을 엮은 신성(申晟), 《청구영언》을 엮은 영조 때의 김천택, 《해동가요》의 김수장, 《가곡원류》를 엮은 고종 때의 박효관과 안민영 등등이 모두 가곡의 전승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라 하겠다. 특히, 일제치하에서 가곡의 명맥을 오늘에 이어 준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하규일의 아호는 금하(琴下), 그는 전문 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20세 무렵부터 삼촌인 하중권(河仲權)의 제자, 최수보와 가곡원류의 편자 박효관에게 가곡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6촌 형 역시 당대 가곡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던 하순일이었다. 금하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정가(正歌)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는데, <

《흑산》 통해 일본인들 19세기 한국사회 이해했으면

도다 이쿠코 작가, 김훈의 《흑산》 일본어로 번역 펴내 [맛있는 일본이야기 56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8년 전 처음으로 《흑산》을 읽었을 때의 떨림은 번역(일본어)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절해고도에 유배된 유학자, 섬에서 자란 맑은 눈동자의 청년, 옹기장이 남자, 도망치는 노예, 거친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등등 이들은 당시 책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인물들이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김훈 작가 나름의 문체에 빨려들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헤매다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길고 긴 번역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이는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60)씨가 김훈 작가의 《흑산(黒山)》 번역을 마치고 ‘역자 후기’에 쓴 소감이다. 번역 작업이란 필자도 해봐서 알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책 한 권 속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가 역사적 사실, 풍습과 같은 언어 외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다 이쿠코 씨의 번역은 언제나 명쾌하다. 도다 이쿠코 씨가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투 한자를 쓰지 않고 (종래) 한자어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김훈 작가에게 물었다. 김훈 작가가 답했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죽은 말을 살려 활용하면 문장에 힘이

세종의 만민공락, 지금도 변하지 않아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53]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지금 한 나라의 사회와 세계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코로나 19’와 연관 지어 세종의 정신과 비교하여 살펴보자. 인간의 역사는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다가 자연을 개변시키며 살아오고 있다. 석탄과 기름을 에너지로 쓰기 시작하며 발전소와 공장이 돌고 자동차로 공기는 오염되기 시작한다. 지구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 바닷물고기들의 내장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일본 용선화물선 '와카시오호'가 중국에서 브라질로 향하던 중 모리셔스 남동쪽 산호초 바다에서 좌초했다. 사고 이후 약 1천 톤의 원유가 새어 나오며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모리셔스 바다를 오염시켰다. 그러다가 8월 17일 드디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아프리카 관광의 나라 모리셔스의 관광 산업은 이중고를 겪게 됐다. 전체 관광객은 2017년 134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관광객도 6천 9백여 명이 된다고 한다. 지구 위 인간은 75억여 명인데 지구 위에서 기르는 소도 20억여 마리로 그들이 내뿜는 가스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양극의 빙하가 녹고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장마도 많아지고 우

성종의 후궁 숙용심씨 묘비석 고향으로 귀환

[맛있는 일본이야기 56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숙용심씨(淑容沈氏)”, 우연한 기회에 숙용심씨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숙용(淑容)은 조선시대 임금이 후궁에게 내린 작호(爵號)로 종2품이 숙의(淑儀)이고 종3품이 숙용(淑容)이다. 숙용심씨(1465 ~ 1515)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8번째 후궁이다. 여기서 후궁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숙용심씨가 죽고 그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던 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숙용심씨 묘비는 높이 150센티, 폭 43센티의 무거운 돌비석으로 이 비석이 일본땅에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가마쿠라 뒷골목 작은 미술관이나 까페 앞에 서 있던 조선의 문인석과 망주석이 떠올랐다. 누군가 조선인 무덤 앞을 지키던 석물(石物)을 일본땅에 가지고 가서 함부로 장식품으로 쓰고 있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때마다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면 숙용심씨 묘비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언제였을까? 왜 숙용심씨 묘비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조사해보는 과정에서 일본 도쿄도 미나토쿠 아카사카 7정목 3번 39호(東京都港区赤坂七丁目3番39号)에 있는 타카하시고레쿄옹 기념공원(高橋是清翁記念公園, 이하 다카하시 공원)에 있는 숙용심씨 묘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