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성창순 명창이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신의(信義)있게 살거라”라는 말이었다는 이야기, 2016년 말,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응급적인 조치로 폐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하는 조치를 했는데, 그 상황에서 소리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성창순 명창이야말로 진정으로 판소리를 사랑했고, 제자들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전해준 어연경은 현재 단국대 국악과와 이화여대에서 후진들을 지도해 오고 있는 한편,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데, 논문의 방향은 성창순 명창의 소리세계, 다시 말해 선생의 소리에 나타나 있는 특징적인 창법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들을 만한 대목, 곧 눈 대목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거니와 현재 전해오는 소리 가운데 판소리 <심청가>는 순조 때의 김제철이나, 철종 때의 박유전이 잘 불렀다고 하는데, 그 박유전의 소리는 이날치와 정재근 등을 거쳐 오늘에 이어오고 있다. 그 한 축은 이날치를 통해 김채만-박동실-한애순에게 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값’은 남이 가진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가 내놓는 값어치를 뜻한다. 그것은 곧 내가 가진 무엇을 남에게 건네주고 대신 받는 값어치를 뜻하기도 한다. 이때 건네주는 쪽은 값어치를 ‘내놓아야’ 하지만, 값어치를 건네받는 쪽은 값을 ‘치러야’ 한다. 값어치를 내놓고 값을 받는 노릇을 ‘판다’ 하고, 값을 치르고 값어치를 갖는 노릇을 ‘산다’ 한다. 팔고 사는 노릇이 잦아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많은 사람이 모여 종일토록 서로 팔고 샀다. 그때를 ‘장날’이라 하고, 그곳을 ‘장터’라 한다. 본디는 파는 쪽에서 내놓는 것도 ‘무엇’이었고, 사는 쪽에서 값으로 치르는 것도 ‘무엇’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슬기가 깨어나면서 ‘돈’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는 쪽에서는 돈으로 값을 치르는 세상이 열렸다. 그러자 돈을 받고 무엇을 파는 노릇을 일로 삼는 사람도 생겼는데, 그런 일을 ‘장사’라 하고, 장사를 일로 삼은 사람을 ‘장수’라 부른다. 장사에는 언제나 ‘값’으로 골치를 앓는다. 값을 올리고 싶은 장수와 값을 낮추고 싶은 손님 사이에 밀고 당기는 ‘흥정’이 불꽃을 튀기지만, 언제나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세종 즉위년 10/3)” ‘민본(民本)’의 뜻을 지닌 원문 모두 37건 가운데 세종 8건이다. (‘민위방본(民爲邦本)’은 원문 모두 16건 가운데 세종 3건으로 가장 많다) 세종이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많다. 성종 1건, 중종 2건, 영조, 정조 각 1건이다. 민본과 관련한 ‘민유방본(民惟邦本)’은 《세종실록》에만 14회 나오고 그 밖에 민(民)이라는 연관어도 백성을 위한 것으로 수십 건이 더 보인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세종 즉위년 10/3) “백성이란 것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세종 1/2/12) ‘민본’은 조선 초기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민본’ 모두 37건 가운데 세종 8건, 성종 7건으로 다른 임금의 경우 미약한데 이는 민본(民本)이 중시되지 않았다기보다 다른 대체되거나 일반화했다고 보인다. 민(民)을 일컫는 ‘백성(百姓)’의 경우 세종은 166건, 성종 220건으로 조선 초에 높고 이후 후기인 영조 때 74건으로 차츰 낮아진다. 반면에 ‘서민(庶民)’은 세종 26건인데 후기 영조 때는 72건으로 많아진다. 시대가 지나며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