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은 황희와 하연을 영의정 부사로 삼았다. 황희는 재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 너그럽고 후덕했으며 백성들의 여론을 귀담아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명재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연은 까다롭게 살피길 좋아하고 노쇠한 탓에 일을 할 때 실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벽에다 한글로 ‘하 정승아, 또 공사를 망령되게 하지 마라.’라고 써 놓았다. 이 벽서를 쓴 사람은 하급 관리일 것이다. 세종이 가장 먼저 한글 교육을 시킨 대상이 하급 관리였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도 하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 벽서 사건은 백성 누구나 생각을 적어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백성과 관료, 백성과 백성 사이에 자기 생각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Lower Officials Write a Notice in Hangeul In 1449 (the 31st year of Sejong’s reign), King Sejong appointed Hwang Hui and Ha Yeon as the Prime Minister and Vic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참 마음이 설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어느 아파트 현관문에 정갈하게 붙은 종이 위에 쓴 글귀였습니다. 흔히 보던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한자가 아니라, “봄이 오니, 기쁨이 피네”라는 쉬운 우리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귀를 읽는 순간,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제 마음에는 이미 따뜻한 봄기운이 스르르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풍경을 보며 떠올린 말이 있습니다. 바로 ‘들봄’입니다. '들봄'은 저희 모임에서 다듬은 말로 말집(사전)에 아직 오르지 않은 말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에서 말하는 '들봄' 들봄 [이름씨(명사)] 스물네 철마디(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立春)’을 갈음하여 부르는 토박이말. 봄이 우리 삶의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 이를 오늘 우리가 맞이한 '입춘'과 엮어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억지로 세우는 봄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살갑게 찾아 드는 첫 번째 봄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월은 '들봄'이 드는 달이니 '들봄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입춘(立春)’이라고 쓰고, 이때 문에 붙이는 글을 ‘입춘축(立春祝)’이라 부릅니다. 저희 모임에서는 이를 ‘들봄글’ 혹은 ‘들봄빎’이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산타령>과 같은 합창 음악은 다른 일반 민요와는 달리, 가사의 내용이 매우 건전할 뿐 아니라, 국내 곳곳에 있는 명산(名山)이나 강(江)의 이름, 기타 인물 등등이 소개되고 있어서, 상식이 풍부해진다는 내용과 함께 어린 학생들의 음악교육을 위한 교재로도 매우 적절한 분야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서도 산타령의 첫곡, <놀량>이란 악곡은 경기지방의 <놀량>에 견주면,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호흡의 조절이 쉽고, 또한 의미가 특별히 없는 구음(口音), 곧 입타령이 현저하게 적은 편이어서 초보자들이 부르기엔 다소 쉬운 편이다. 그러면서 고음역(高音域)을 통성으로 질러대는 부분들이 많아서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남성 취향의 노래다. 이번 주에는 서도의 산타령 가운데 <사거리-앞산타령>와 중거리<뒷산타령>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유지숙의 음반을 들어 보면, 과거 서도지방 곳곳에서 불러온 산타령도 일부 소개하고 있어서 당시 북쪽지역에서도 <산타령> 음악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서도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은 <사거리>라 부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