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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디에이고서 풍물 씨앗 뿌리는 박호중 교장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의 나라 밖 공연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지 궁금해하는 아프리카 연주팀의 이야기와 우리의 장고가락을 흉내 내는 외국의 타악기 연주자 이야기, 그리고 기악의 경우에는 악기 편성이 음악의 성격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이번 주에는 미국의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의 풍물을 전파하고 있는 열성 교포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어느 날, 미국의 박호중 씨로부터 도움 요청이 담긴 다음의 문자를 받게 된다. “저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풍물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탓에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이 점을 한국 <잔치마당>의 인력으로 보완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하는 내용이었다. “낯선 문자를 받기는 했으나 내심 뿌듯했습니다. 머나먼 바다 건너, 그것도 우리의 정서와는 완전히 상반된 서구문화권에 사는 분이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풍물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차마 감동을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초청

윤동주 시 완역한 우에노 시인의 새 시집

10년만에 출간한 '후단자쿠라(不断桜)' 맛있는 일본이야기 663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꽃을 어디서 보았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작고 아담한 암자의 뜨락이었던 것 같다. 한 겨울에 눈송이처럼 마른 벚나무 가지에 피어있던 연분홍이라기보다 흰색에 가깝던 그 연약한 꽃을 나는 어쩌다 핀 ‘겨울벚꽃’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꽃에 이름이 있었다. 후단자쿠라(不断桜)! 얼마 전, 일본의 중견 시인이 보내온 시집 제목이《不断桜, 일본 발음은 후단자쿠라, 이하 ‘不断桜’》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겨울벚꽃’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5) 씨는 윤동주의《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도쿄 콜삭사에서 펴내(2015년 7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시인이다. “후단자쿠라(不断桜)는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 벚꽃입니다. 원래 벚꽃은 봄에 피는 것이지만 후단자쿠라는 늦가을부터 봄을 맞이하기까지 피는 꽃이라 더욱 마음이 끌려서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지요. 이번에 낸 시집은 약 10년 만에 낸 책입니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이도 있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시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둔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장영실,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으뜸 발명왕 -①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0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귀화인 아버지를 둔 동래현의 노비 장영실의 삶은 부정확한 것이 많다. 이는 그의 출생 배경에서 비롯되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장영실의 부친은 원(元)나라 사람으로 소주(蘇州)ㆍ항주(杭州) 출신이고, 모친은 기녀였다고 전한다. 실상 부친이 관노가 아니었음에도 장영실이 관노가 된 것은 모친의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 관기(官妓)들은 신분상 천민으로 조선 초기 엄격한 신분제도에 따라 관기의 딸은 관기가 되었고, 아들은 관노가 되었다. 다만, 부친이 원나라 출신의 귀화인이었다는 점은 좀 다른 점이다. 태조에서 세종대까지 조선 정부는 귀화인들의 정착을 위해 조선 여자와의 혼인을 주선하였는데 귀화인들과 혼인한 여성들은 대체로 관노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족(漢族) 혹은 족장과 같은 출신 배경이 좋은 귀화인들은 대체로 양인 여성과 혼인하였다. 따라서 장영실의 모친은 정실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장영실이 태종과 세종대에 살았던 인물이긴 하지만 정확히 태어나고 죽었을 때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산장씨세보》에 보면 장영실은 항주 출신인 장서(蔣壻)의 9세손이고, 부친은 장성휘(蔣成暉)로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한 이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가?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의 나라 밖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30여 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 30여 개 나라, 50여 도시에 초청되어 공연해 왔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방문국의 깊은 관심에 기뻤고, 책임감도 느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 드럼 페스티벌> 때, 각국의 난타 공연이 끝나고, 한국 <잔치마당> 연주자들이 악기와 의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아프리카 연주팀이 찾아와 잠시 머뭇거리더니 “상모에 모터가 달려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해당 연주자는 즉답 대신 웃으면서 상모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모터는 물론이고, 그 어떤 장치도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그 아프리카 연주자는 한국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아무런 도구 없이, 오직 몸으로만 상모를 돌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로 보면 우리의 가락, 우리의 전통문화는 저물어가는 시대의 잔상이 아니라 새롭게 여물어가는 미래의 씨앗이라는 표현이 더더욱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의 전통문화를 현대라는 틀에 접목해서 색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예술의

의식주, 놀이, 동식물의 일본문화, 독서로 접근하기

[맛있는 일본이야기 66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문화를 접근하는 길은 폭넓고 다양하다. 좋은 접근 방법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속속들이 일본문화를 알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간접체험이다. 간접체험 가운데는 강의나 강연 또는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는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손쉬운 것은 독서를 통해 얻는 방법일 것이다. 일본문화를 책을 통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고전독회(이하 고전독회)에서 펴낸 책이 그것이다. 고전독회에서 펴낸 일본문화 관련 책 가운데 《의식주로 읽는 일본문화》, 《놀이로 읽는 일본문화》, 《동식물로 읽는 일본문화》 세 시리즈는 그 내용에 있어 웬만한 ‘일본문화’를 포용하고 있어 이 분야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의식주로 읽는 일본문화》를 보면, 문학작품에 나타난 복장, 옷 선물, 속대, 향기, 머리, 머리카락, 빗 등을 다루고 있다. ‘옷에 물든 여인의 매력’ 편에서는 헤이안 시대 문학작품인 《겐지 이야기》에 나타난 새해맞이 옷을 선물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옷을 선물하는 사람과 받는 사

전통예술의 국제 교류사업을 펼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9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예술품의 순환과 유통에 관한 이야기로 폐품이 된 타악기들을 되살려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 유통과 지속적인 임대 사업 이야기, 그리고 인천에 있는 <라이브 치과병원>과의 상생 협력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였다. 특히 상생 협력은 예술가, 병원, <잔치마당>이 각기 상생의 길을 추구한 선례가 되었으며 이를 본보기로 삼아 다양한 방법의 전통문화 확산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창단 이래 30여 개 나라, 50여 도시에서 초청을 받고, 세계무대로 진출하여 한국을 빛낸 연희집단, <잔치마당>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부평 풍물축제》가 시작되었을 당시만 해도, 한국의 전통문화는 현대인들에게 도외시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행사를 주관하던 주최자들이나 전문가들도 ‘우리의 전통놀이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방법이나 방향을 논의할 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은 당시 축제 준비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의 말로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러나 정작 길놀이가 시작되었을 때,

실용주의적 경세 사상가 변계량(卞季良)

[‘세종의 길’ 함께 걷기 9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실용주의적 사상가 문인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본관은 밀양이고 이색(李穡)ㆍ권근(權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네 살에 고시의 대구(對句)를 외우고 여섯 살에 글을 지었다. 생애 ∙1382년(우왕 8)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는 생원시에도 합격하였다. ∙1385년 문과에 급제, 전교주부(典校注簿)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과 더불어 천우위중령중랑장 겸 전의감승(典醫監丞)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의학교수관을 거쳤다. ∙1396년(태조 4)에는 교서감승(校書監丞)에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태종 초에는 성균관학정, 사제감소감 겸 예문관응교와 직제학을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문과 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에 오르고 예조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이 되고, 그 뒤 예문관제학ㆍ춘추관동지사 겸 내섬시판사ㆍ경연동지사 등을 거쳐, ∙1415년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이 되었다. 이때 가뭄이 심해 상왕 태종이 크게 근심하자, 하늘에 제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