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이는 산 모습이 점점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는 기러기가 놀라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하지만 근심이 되는 것은 늙은 농부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맞으며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위는 조선 중기 문신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상강 기록으로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이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물기가 땅 위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뀐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40년 4월 20일 동아일보를 보면 “내일이 곡우, 씨나락은 당것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내일이 곡우이니 농가에는 씨나락을 당글 때이다. 누른 개나리와 붉은 진달래에 봄빛이 무르녹을 대로 무르녹았는데...”라고 곡우 즈음의 정경을 묘사한다. 오늘은 2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곡우(穀雨)다. 곡우란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 하여 붙여진 말인데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같은 속담이 전한다. 예전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둔다.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잡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또 이날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데 땅의 신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곡우 때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곡우 물이 많은 나무로는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이다. 원래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가장 추운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한해 가운데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에 맞춰졌기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때 전해지는 속담을 보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같은 것들이 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는다. 그러면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게 된다. 이때 일어나 보면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있고 윗목에 있던 걸레는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 지금이야 난방이 잘돼 어려움이 적지만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동지가 되면 <구구소한도>를 그린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서 구구(九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이다.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이 복날을 '서기제복'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곧,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써서 복날은 더위를 피하는 피서가 아니라 정복한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때를 '개의 날(dog's day)'라고 부른다.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인데, 이 별은 삼복 기간이 되면 해와 함께 떠서 함께 진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삼복 때 태양의 열기에 가장 밝은 시리우스의 열기가 보태졌기 때문에 한해 가운데 가장 덥다고 생각했다. 복날 즐겨 먹었던 먹거리는? 말복(末伏)은 입추가 지난 뒤지만 아직 조금만 움직이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때다. 이렇게 더위가 한창일 때 우리 겨레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을까? 먼저 여름철에는 지나친 체열의 손실과 땀의 많은 분비 탓에 체액과 나트륨 손실이 있게 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수박화채에다 소금을 뿌려 먹었으며, 복숭아에 소금을 쳐서 끓여 받친 즙으로 지은 밥인 “반도반(蟠桃飯)”을 먹었다. 또 여름엔 땀으로 몸 안의 질소가 많이 나오므로 단백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금년도 어느듯 벌서 상반기의 최후명절인 유두가 되었다. 6월 15일을 유두라고 하야 연중명절의 하나로서 치니 이것은 달은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의 독특한 것이다. 조선의 독특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랑할 것은 아니지마는 이 유두절의 기원과 행사에 대하야 잠깐 고구(考究, 자세히 살펴 연구함)해보면 이것이 실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동시에 또한 민중적흥미를 갖고 잇는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두절에 대하야”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1936년 7월 2일 치 기사 일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동아일보 1924년 7월 16일 기사에도 “금일은 유월유두일”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또 같은 동아일보 1960년 7월 8일에는 “오늘 유두절, 생과일 잔칫날” 기사도 있어 60년대까지도 유두절을 명절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그러나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와 백중을 잊은 지 오래다.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 옥담 유고집 ‘부채선물에 화답’ 가운데- 무더위가 쇠를 녹인다는 말은 한여름 더위를 잘 표현한 말이다. 선비가 체신을 잊고 가슴을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을 정도로 무더위 속의 요즈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중복(中伏)이요 내일은 24절기의 열두 번째 대서(大暑)인 까닭이다. 이렇게 중복과 더위가 하루 사이로 드는 것은 드문 일로 1929년과 2011년에도 있었을 뿐이다. 각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금년은 가뭄으로 인하여 더위가 매우 심한데, 이제 유(流) 이하의 죄수는 모두 다 사면하여 놓아주었으나, 석방되지 아니한 죄수는 옥(獄)에서 더위로 인하여 혹시 죽게 될까 두려워, 내 마음에 몹시 근심된다. 경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 곡진(曲盡)하게 조처하여, 각 고을 수령들로 하여금 옥에 있는 죄수들을 무휼(撫恤, 어루만져 구호함)하여 병이 나지 않게 하라."하였다. 이는 《세종실록》 세종 25년(1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단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했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이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수릿날은 조선 후기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 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이름이 붙었다. 또 수리란 옛말에서 으뜸, 신(神)의 뜻으로 쓰여 '신의 날', '으뜸 날'이란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불렀다. 이날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단오날의 화장)'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다.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남자들은 단옷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을 가졌다. 단옷날은 양수 “5”가 겹친 원기 왕성한 날인데 그 가운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으로 이즈음 정경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4월은 맹하(孟夏) 곧 초여름으로 입하와 소만이 들어 있다고 노래한다. 오늘은 24절기 여덟째 “소만(小滿)”으로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온 세상에 가득 찬[滿]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데 들판에는 밀과 보리가 익고, 슬슬 모내기 준비를 한다. 또 이 무렵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대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우리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온 천지가 푸른데 대나무는 누레져 그런데 소만 때는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절기(節氣)로 경칩(驚蟄)이다. “경칩”이란 말은 겨울잠 자는 벌레가 놀라서 뛰어 나온다는 의미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돼지날(亥日, 해일)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하였으며, 경칩 뒤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하였듯이,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반겨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되는데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 두꺼비) 알을 건져다 먹는다. 또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하며,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한다. 또 이때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어름넝쿨)에서 나무물[水液]을 받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특히 경칩에 처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7년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지난 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해 온 국민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밝아온 새해는 지난해의 시름을 떨쳐 버리고, 힘찬 한해가 도기를 소망해 본다. 설날,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세배를 하고 성묘를 하며, 정을 다진다. 또 온 겨레는 “온보기”를 하기 위해 민족대이동을 하느라 길은 북새통이다. “온보기”라 한 것은 예전엔 만나기가 어렵던 친정어머니와 시집 간 딸이 명절 뒤에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보기”에 견주어 지금은 중간이 아니라 친정 또는 고향에 가서 만나기에 온보기인 것이다. 설날의 말밑들 그러면 “설날”이란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먼저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 ~ 1628년)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 했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리다',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는 설을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본다. 또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