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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터키 유학 중 인도네시아 여성, 한국어 공부중

터키의 이슬람은 근본주의 이슬람에 견줘 세속주의 이슬람?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2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에르진잔에서는 하루만 자고 우리는 오늘 저녁 4시에 기차를 타고 카이세리까지 가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식사를 끝낸 뒤에 식당 입구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었다. 로자 씨는 에르주룸에서 우리와 합류하기 전 1주일 동안 터키를 여행하였는데 터키 사람들은 도무지 이슬람 사람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시에 처음 들어가면 곳곳에 모스크가 보이고 히잡을 쓴 여성도 보이고 때때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지므로 이슬람 국가인 것은 맞는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이슬람의 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터키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술도 마시고 길거리에서 담배도 피우고, 심지어는 히잡 쓴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 교제도 자유스러운 것 같고 남녀 간에 애정 표현도 유럽 국가 못지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엄숙한 이슬람교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얘기다.

 

에르진잔은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인데도 모스크의 첨탑이 곳곳에 보인다. 터키에는 등록된 모스크가 75,000여 곳에 달하고, 이스탄불에는 3,000여 곳의 모스크가 있다고 한다. 터키는 1923년에 공화국으로 출발하면서 헌법에 세속주의를 명시하고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터키의 이슬람은 중동 다른 나라들의 근본주의 이슬람에 견주면 세속주의 이슬람이라고 구별해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로자 씨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터키인에게 이슬람을 물어보는 것은 여자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과 같다.” 독자 여러분은 혹시 터키에 여행하거든 참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나왔다. 체크아웃하는데, 터키 사람에게 감동을 먹었다. 친절한 호텔 종업원은 잘 가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생수를 한 병씩 주는 것이 아닌가! 이제 더는 만날 손님도 아니고, 호텔비는 이미 받았는데도 생수를 주니 내가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산은 구글 지도로 확인하더니 가까이에 있는 에르진잔 박물관을 구경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 가방을 끌면서 걸어서 갔는데, 수리 중이어서 관람을 할 수가 없었다. 구글 지도에 수리 중이라는 정보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거리를 지나는데, 공동 수도가 보였다. 에르주룸 호텔 앞에서도 공동 수도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커다란 물통을 들고 와서 물을 받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터키에서 공동 수도는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최소한 마실 물은 무료로 공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병산이 그저께부터 어금니가 아프다고 말했는데, 오늘은 치통이 더 심해졌다.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병산이 다시 구글 지도를 확인하여 가까운 치과를 찾아갔다. 나중에 병산에게 물어보니 치과 의사는 X-레이 사진을 찍고 이빨을 조사하더니 5일 동안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은 뒤에 아픈 이빨을 뽑을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병산이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대기실에서 터키 미인을 만났다. (나는 여복이 많은가 보다. 어디를 가더라도 미인을 만난다.) 말을 걸어 보니 치과 의사의 부인인데 직업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라고 한다. 외국어 악센트가 전혀 없는 깨끗한 영어를 구사한다. 요즘이 방학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생명탈핵 전단지를 주면서 우리의 일정과 목적 등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그러더니 진료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조금 뒤에 병산이 나오는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병산의 설명을 듣고 나는 또 한 번 친절한 터키인에게 감동하였다. 진료실로 들어온 부인의 설명을 터키어로 들은 치과 의사는 치료비를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병산은 오늘 날자 순례일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병원에 와서 행복해지기는 처음이다.”

 

 

건물 2층에 있는 병원에서 나와 아래층에 있는 약국에서 처방전으로 5일분 약을 샀다. 병산은 앙카라에 가서 치과에 다시 가보겠다고 말했다. 약국을 나서자마자 히잡을 쓴 여인이 병산에게 “안뇽하쎄요”라고 말을 걸어온다. 병산이 물어보니 K-드라마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터키에서는 정말이지 한국의 인기가 최고다. 길을 조금 걷다 보면 우리가 두른 몸자보를 보고서 터키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밀짚모자를 쓰고 나보다 젊고 잘생긴 병산은 여인들에게서 끊임없이 셀피를 찍자는 제안을 받는다. 내가 옆에서 보니까 병산에게 순례길은 고생길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여행길인 것 같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한 후에 내려서 에르진잔 기차역까지 1km 정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어제 기차표를 미리 사두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카이세리까지 가는 기차표가 매진되었다고 한다. 기차는 하루에 한 번 운행한다고 하니 낭패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위기를 타파하는 것은 순례단장인 병산의 책임이다. 병산은 당황하지 않고 표를 파는 직원에게 뭐라고 하더니 중간인 시바스까지는 표가 있으니 일단 표를 사자고 말했다. 그러면 시바스에서는?

 

 

병산의 대답은 일단 시바스까지 가고 중간에 기차표를 연장하면 된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연장이 되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니, 병산은 태연하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여행에 대해서는 짬밥깨나 먹었어요.”라고 말한다. 병산 말은 사실로 증명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중간에 역무원이 지나가니 병산은 역무원을 붙들고 뭐라고 뭐라고 말하더니 돈을 더 내고, 역무원은 시바스에서 카이세리까지 가는 기차표를 가져왔다. 정말로 짬밥의 힘은 대단했다.

 

에르진잔에서 카이세리까지는 440km 거리인데 기차는 빠르지가 않아서 카이세리까지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은 사건이 발생했다. 병산이 낮에 시내에서 만났던 아가씨를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병산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인도네시아 출신으로서 터키에 유학 중인데 터키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능숙하다.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병산의 전공인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도깨비라는 드라마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Hilwa. 그녀는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힐와'라고 써서 보여주었다. 젊지만 국제적인 인재다. 나중에 큰일을 해낼 인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