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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지켜주세요

광화문의 사헌부터를 보존해야 하는 까닭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0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2대 정종 2년인 1400년 3월 15일, 임금은 권근(權近)을 정당 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으로 발령을 내었다. 나흘 후인 3월 19일 대사헌 권근(權近·1352∼1409)은 경연(經筵)에서 임금에게 “신이 본래 혼미하고 우직하며, 젊었을 때 일을 경험하지 못하여 관리들의 이치(吏治)에 서투릅니다. 전하께서 신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하게 사번부(憲司)의 장이 되게 하시니, 진실로 황공하고 진실로 기쁘나, 중외에 웃음을 남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도 한 가지 얻는 것이 있으니, 어찌 올릴 사항(事項)이 없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 관대히 굽어 실피셔서, 혹시 올리는 말이 이치에 해롭지 않거든 특별히 유윤(兪允)을 내려 주소서.”라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보름 후인 4월 5일에 봄 가뭄이 심해지자 임슴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봄이 가무니, 벼나 곡식들이 풍성하지 못할 징조인가 두렵습니다. 신이 언관(言官)으로서 감히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근심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다시 금주령을 내려 나라의 비용을 절약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라 금주령을 내렸다.​

 

권근은 고려 말에 벼슬길에 올랐다가 친원파와 친명파의 갈등 속에서 한때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곧 인품과 덕망으로 조선조에 들어 대사헌으로 오른 것인데, 대사헌으로 출근하면서 직장인 사헌부의 위용과 자신의 포부를 담아 ‘상대별곡(霜臺別曲)’이란 가사를 짓는다.​

 

“화산 남쪽 한강 북쪽 예전부터 경치 좋던 이 땅에서

광통교를 건너가서 운종가로 들어서면,

휘 늘어진 큰 소나무, 우뚝 솟은 잣나무에 추상같은 사헌부라.

아, 긴 세월 청렴한 바람 부니 그 모습이 어떻습니까?

영웅호걸 이 시대의 인재들이 아, 나까지 몇 분입니까? “​

 

이 상대별곡이란 노래는 경기체가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사헌부 관리들이 가끔 술자리에서 같이 부르면서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관리로서의 자부심을 공유했다고 한다.

 

 

검찰과 감사원을 겸하고, 언론기능까지 있어서 임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사정없이 탄핵했던 부서인 사헌부는 서리 상(霜)자를 써서 상대(霜臺)라 불리었다. 또 그렇기에 추관(秋官), 곧 가을관청이라고도 했다.​

 

사헌부의 임무는 시정(時政)을 논의하고, 백관(百官)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억울한 일을 없애주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서릿발처럼 엄해야 하는 관계로 사헌부 관리들의 몸가짐은 어느 관원보다 엄해서 가을 서리[秋霜] 같다고 했다. 사헌부는 관원의 인사에도 관여해 임금이 결정 임명한 관원의 자격을 심사하여 이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서경(署經)기관이기도 했다.

 

이렇듯 시정ㆍ풍속ㆍ관원에 대한 감찰, 인사 행정에서 엄정함을 추구하는 사헌부이기에 직원 간에도 상하의 구별이 엄해 하위자는 반드시 상위자를 예로서 맞이하고, 최상위자인 대사헌(大司憲)이 대청에 앉은 다음 도리(都吏)가 ‘모두 앉으시오’를 네 번 부른 다음에 자리에 앉는 등 자체 내의 규율부터 엄격했다고 전해진다. 《용재총화》 권1에 전하는 내용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감사원과 검찰의 최고 책임자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그들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그 몸가짐이 올바른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정치 현실이 복잡하고, 순탄하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사헌부라는 것이 시정(時政)을 논의하고, 백관(百官)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권력자들과 결탁해 반대파를 핍박하고 몰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른바 삼사(三司)라고 해서 사헌부가 사간원, 홍문관과 하나가 되어 자주 임금에게 압박을 가한 것인데, 당대의 권력자들은 이들을 부추겨서 조정의 여론을 뒤바꾸고 정적(政敵)을 쫓아내곤 했다.

 

퇴계의 형인 이해(李瀣 1496~1550)도 대사헌으로 있을 때 이기(李芑 1476~1552)를 우의정에 임명하려는 것을 반대해 임명철회를 관철시켰는데, 이기는 이에 앙심을 품고 나중에 영의정으로 올라간 뒤 삼사를 동원해 이해의 죄상을 날조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 역사가 있다.

 

감사원이건 검찰이건 권력의 편에 서면 편안하지만, 권력과 맞서면 언제든 개인적으로 피곤할 수 있다는 사례는 우리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숱하게 나온다. 그만큼 소신을 가지고 일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소신을 가지고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 막중한 자리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와 행정이 어그러져도 바르게 잡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우리는 그 폐해를 많이 겪어왔다.

 

사헌부는 광화문 앞 어디쯤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최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일대를 다시 정비한다고 대규모 발굴조사를 하다가 조선시대 사헌부 터에서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남쪽, 광화문주차장 일대에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정비하면서 사헌부 터는 그대로 보존해서 시민들의 역사교육장이 되도록 노출 전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발굴된 유적 가운데 다른 곳에 견줘 유적이 다양한 형태로 비교적 잘 남아있었기 때문이란다.

 

 

권근의 상대별곡은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맨 마지막 5장은 이렇다.​

 

“뭇 사람이 흐렸어도 홀로 깨어남이 그대는 좋은가.

절의를 지킨다고 산속에 숨어 삶이 그대는 좋은가.

현명한 임금 신하 서로 만나 황하 물이 맑아진 태평성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이곳에 모였으니 난 좋습니다.“​

 

"감찰(監察)은 백관을 규찰하고 단속하는 자리이다. 반드시 자신의 몸가짐부터 소박하게 가진 연후에 사람들의 부정과 불법을 꾸짖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역사를 실물자료로 재정리한 이긍익 (李肯翊, 1736~1806)이 불후의 명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사헌부를 정의하면서 한 말이다.​

 

감사원이건 검찰이건 사정기관 속에서 일하는 분들은 거기서 큰돈을 벌자고 하기보다는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열의가 다른 부서 사람들보다도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나라의 좋은 지도자를 만나 서로 웃어가면서 태평성대를 열어가는 꿈을 같이 꾸고 있다면 최고 책임자의 사임으로 흐트러진 두 기관이 제자리로 이른 시일 안에 돌아와야 할 것이다.

 

최근 사정 권력의 분산으로 업무가 매우 혼란스러워졌는데 여러 기관이 협의를 잘하고 임무를 잘 새겨 정말로 국민을 위해 권력의 뒤에 숨어서 개인의 영달과 치부를 노리는 잘못은 바로잡고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조금도 태만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 몸가짐을 추상같이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야 나라가 온전히 설 것이고, 앞으로 후대에 보전 전시한다는 사헌부 유적도 국민에게 자부심의 현장이 될 수 있다. 그 자부심은 남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 올려야만 한다. 사헌부 유적이 자칫 손가락질을 당할 역사 유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