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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산에 오르는 까닭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6]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한 이 대답은 고금의 어록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등산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이 다 좋아하고 다 올라가고 싶은 그런 운동, 혹은 취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는다.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산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잃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세상 동떨어진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한 후에 유산기(遊山記)를 많이 남겼지만 우리의 산이 못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 없는 관계로 전문적인 등산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산을 오르는 것을 심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보고 즐긴 분들은 많다. 일찌기 청량산에 들어가 산을 유람하고 거기서 공부를 한 퇴계 이황은 산을 오르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는 시를 남긴다;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함이 독서와 같구나.

온 힘을 쏟은 후에 스스로 내려옴이 그러하고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야 함이 그러하네.

讀書人說遊山似 今見遊山似讀書

工力盡時元自下 淺深得處摠由渠

가만히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묘함을 알게 되고

근원의 꼭대기에 이르니 비로소 원초를 깨닫겠네.

그대들 절정에 이르길 힘쓸지니

늙어 중도에 그친 내가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네.

座看雲起人知妙 行到源頭始覺初

絶頂高尋​勉公等 老衰中輟愧深余

...............​이황, 유산은 독서와 같으니 遊山如讀書


험한 산을 올라가기 위해 여러가지 가능한 궁리를 하고, 올라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하며, 힘들게 올라가서는 그 산의 산의 진면목을 보고 그 의미를 체득하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이유라면, 공부도 중도에 힘들다고 멈추지 말고 노력해서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어야 하며 산에서 그런 정신을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등산을 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다른 모임이 어려워 지자 산을 찾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그 분들에게 등산은 무엇일까? 등산이 심신연마의 방법이자 수단이겠지만 진정 산에 가는 것은 산이 좋기 때문일까? 다른 이유가 있을까? 우리들은 세계최고의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으로 오른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가 자서전 표지에서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thing Venture, Nothing Win)며 등산이라는 것이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통해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했음을 알고 있는데 과연 그것만일까?

 


여기에 대해 등산은 아름다움의 탐구라고 하는 명제를 제시한 사람이 있다. 에드먼드 힐러리에 앞서 일찌기 1930년대에 칸첸중가 원정대의 영국대표로 참여했고 에베레스트에도 1933년부터 세차례나 도전했던 영국의 산악인이자 언론인인 프랭크 스마이드(Frank S> Smythe, 1900~1949)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음악이나 미술이나 문학이나 종교, 그 어떤 형태일지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누리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우리가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그만큼 더 많은 아름다움을 파악할 수 있고 등산은 바로 이러한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은 창의력이 뛰어난 천재성의 응용을 통한 피상적인 안락의 확보와 천연자원의 개발에서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음미, 특히 대자연이 지닌 아름다움의 음미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굳은 확신이다. 산의 아름다움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을 발견하도록 해준다.

.....프랭크 스마이드 『산의 영혼』 308쪽. 안정효 역, 수문출판사 2019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산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산은 어떻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휴식과 오락을 위해 산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산을 단순히 자신들의 육체적인 에너지를 과시하는 터전이라고만 간주하고, 어떤 사람들은 산에 가는 것을 무조건 가야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산에 대한 접근방법이 무엇이든 산은 한 없이 많은 선물을 베풀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에 둘러싸인 공기의 순수함 속에서 육체적인 안녕과 이성적인 위안, 정신적 성장을 갈망한다. 그것이 우리가 산에 가는 이유이며 산의 영혼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방법이라고 스마이드는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평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건전한 마음과 건전한 육체에 따라 좌우된다. 인간의 비전을 확대시키는 건강을 수반하는 모든 것은 전쟁을 무덤으로 몰아넣는다. 정상적인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산에서 마을이 흩어진 평야를 둘러보고는, 첫째 우리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숭고하며, 둘째 그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내 앞에 펼쳐진 이 산들, 내 위로 펼쳐진 이 하늘, 내 시선이 그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는 이 거리감, 내가 동반한 이 산은 기억과 경험과 한 부분, 즉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내가 무한대를 응시하며 우주와 너무나 기분 좋게 결합할 수 있을 때는 시간도 공간도 죽음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영국인이 본 것이고 그것은 고려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산에서 느끼고 깨달은 그 매력이다;

산을 유람함은 참으로 소원이지만 / 遊山眞素願

붓 잡고 부질없이 읊기만 했는데 / 把筆謾高吟

흰 눈빛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요 / 雪色峯巒聳

향기론 바람은 깊은 송계 숲이로다 / 風香松桂深

험한 길은 위태로워 떨어질 듯하고 / 畏途危欲墜

복지는 아득하여 찾기가 어려운데 / 福地杳難尋

어슴푸레 선경을 들어온 양 / 髣髴在淸境

종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네 / 如聞鐘聲音

...................산을 유람하다. 목은시고 제19권 / 시(詩)


어쩌면 스마이드는 자연에 대해서 서양보다는 동양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는 산에 올랐다가 다시 돌아오면 몸과 이성과 영혼이 새로워진 상태가 된다고 했다. 그런 상태로 일상의 문제들과 다시 부딪히고 투쟁을 계속하지만 산에서 들은 대자연의 노래, 높고 야성적이며 고적한 곳에서 들은 노래가 귓전에 영원히 머물고, 우주의 아름다움과 리듬은 그의 인식 언저리에서 영원히 서성인다. 그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아있어서, 한 번 보고 한 번 알게 된 아름다움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혼이 얻은 하나의 경험으로서 영원히 변할 줄 모른다고 결론적으로 말한다. 그것이 아마도 산의 마음이며 그것이 산을 창조한 신의 마음일 것이라고 스마이드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대자연과의 접촉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기쁨과 이성적인 자극,신체적인 건강, 탁 트인 전망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투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힐러리가 한 다음 이 말이 그러한 여러 생각들을 종합한 것이 될 것인가?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It is not the mountain we conquer but ourselves.

-에드먼드 힐러리 경 Sir Edmund Hillary

 

 

 

이제 산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산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가을이 되면 더 많은 분들이 산을 찾을 것이다. 산에서 행복을 느끼고 거기서 자신의 욕심을 잊어버리고 이웃과 화목하게 사는 법, 전쟁을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것을 세상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이 가을의 산은 더욱 싱그럽고 멋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