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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한얼의 서예를 보며

서예에서 삶의 자세, 삶의 길을 배운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가을 인사동 거리, 못생긴 얼굴 같은 글씨로 서예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얼 이종선이란 분의 서예전인 모양인데, '七十而已'(칠십이이)라는 전시회 이름이 특이합니다.

 

 

 

개막식장에서 전시회의 주인공은 '칠십이이'라는 말은 "제 나이 칠십입니다" 혹은 "칠십이 되었군요"라는 뜻이랍니다.

 

고희를 맞아 그동안 작품활동 한 것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나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전시장 안의 글씨들은, 한자 한문도 있고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은데, 뭐 글씨가 삐뚤삐뚤, 들락날락, 흐느적 흐느적... 보통의 서예글씨가 아니라 마치 글자들이 춤을 추는 그런 작품이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말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우리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런 무시무시한 말이 뭉툭 뭉툭한 채로 눈에 들어옵니다. 흔히 세로로 쓰는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왼쪽에서부터 읽도록 했고, 작은 글씨도 우리가 언젠가는 인생이란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깔고 있는, 제법 의미가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글귀를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자유롭고 편하게 썼더라고요.

 

 

 

2014년에 쓴 옹달샘이란 작품, 물이 퐁퐁 솟아나는 옹달샘의 형상이 생각나는, 한글이면서도 상형문자의 느낌을 주는 작품이네요. 우리가 흔히 보는 단정하고 방정한 글씨체가 아니라서 서예를 이렇게 해도 될까 궁금할 정도로 형체가 부서지고 무너져 있는데 이에 대한 서예가의 설명이 길더라고요. 서예의 본원이랄까 뿌리랄까, 또 한국인으로서의 서예의 뿌리를 생각하다 보니, 한글의 뿌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한글자형, 흔히 판본체에 있다는 자각이 들어 2002년 첫 전시회부터 한글서예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데, 한글서체의 정형적인 구도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조형, 새로운 장법으로 계속 도전해 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종선 작가의 한글서예는 궁체와 한문서예의 행서가 결합한 민체흘림이 있고, 훈민정음 원래의 정격 고체를 자유로운 표현으로 다시 쓴 판본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궁체는 여성적인 곡선과 우아함이 특징인데, 여기에 꾸미지 않는 강직한 세로획을 첨가하여 강건함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민체흘림은 한문서예의 행서와 한글의 자모음이 갖는 특성을 대입시켜 만든 새로운 획과 조형이라고 말하네요. 한글서예를 하지만 한문서예의 대명사인 안진경의 해서와 행서를 한글서예에 녹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체라고 부르는 판본체의 글씨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엄격한 형태를 바탕으로 한글고체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호태왕비, 곧 광개토대왕비의 질박미(質朴美)와 호방함을 나름 구현했다고 설명합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설명에 수긍이 갑니다. 서예의 글씨만이 아니라 공간 구성도 다양해서 보고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서예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大巧若拙)', 곧 '훌륭한 기교는 도리어 졸렬한 듯이 보인다'라는 말이 이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천정까지 높이 걸린 작품 앞에 서니 광개토대왕비 앞에 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민족의 숨결을 담은 글귀의 뜻도 그렇고. 서예전에 가서 잘 모른다고 열심히 한자를 파악하려는 고생이 없이 보는 대로 바로 의미가 들어오는 것이 좋군요.

 

 

 

 

 

이종선 작가의 한글서예를 보면서 한글도 훌륭한 서예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종선 작가는 우리 한글은 죽은 글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글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자는 네모라는 틀에 맞추어 쓰고 있기에 가로세로 일정한 크기에 맞춰 쓰고, 그 영향으로 우리 한글도 가지런하게 흐트러지지 않게 쓰는 것을 많이 했지만, 이러한 틀을 부수면 자유롭고 편안한 예술세계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한글도 한자처럼 뜻을 나타낼 수 있고 그것은 필법이라던가 크기의 변화로 다양한 조형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우리 한글서예 작품이, 물론 그 안에 한자를 겸용하기도 하지만, 훨씬 우리들에게 친근하고 격조 있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뜻 보면 막 쓴 것 같지만 그 속에 다 개성과 율격과 리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의 재료도 시조, 시, 글귀, 경구, 한문 성어 등등 여러 방면에서 채택하고 있고요.

 

 

 

인사동에서 서예전을 구경하면서 드는 궁금증은 이 시대는 컴퓨터로 깨끗하고 정제된 글씨체를 모두 재현함으로써 컴퓨터 키보드가 붓을 대신하는 세상인데 여기에서 먹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인데, 여기에 대해서 이종선 작가가 이런 답을 하네요.​

 

서예는 매끈한 글자를 뽑아내는 기술이 아니고 정신적인 예술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나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곧게 뻗어 오르는 대나무,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홀로 심산유곡에서 잔잔하고 맑은 향기를 발산하는 난초처럼 서예에는 자기 삶을 반성하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려는 선인들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기에 서예야말로 첨단 전자 문명에 찌드는 우리들의 심성(心性)과 덕성(德性)을 개발해 능히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

 

이종선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교육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인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예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고 인격 수양을 하는 중요한 과정인 서예를 가르치지 않으니 최근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서예에서 삶의 자세, 삶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한글세대도 좋아할 이런 서예전이 많이 열리고, 서예 인구가 늘어나서 우리들의 정신이 맑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전시장을 나섰습니다.